메시지 177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롬9:9-33) 갈등 1. 한 토기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된 작업장에서 진흙을 빚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롬9:9-33)갈등1. 한 토기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된 작업장에서 진흙을 빚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의 손은 거칠고 작업장은 흙먼지로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은 항상 따뜻했어요. 그는 흙덩어리를 손에 들고 말했습니다.‘이 진흙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빚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내가 이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기대가 된다.’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흙은 새로운 형태로 빚어졌습니다. 어떤 흙은 화려한 그릇이 되었고, 어떤 흙은 평범한 물 항아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그릇이든 특별했습니다.‘내가 만든 모든 작품은 나의 의도와 계획으로 만들어졌어. 누구를 위한 그릇이든, 그 쓰임은 내가 정하는 거야.’ 한 손님이 찾아와 물었습니다.‘왜 어떤 그릇은 화려하..

1월 6~11일 가정예배

하나님 손에 붙들린 왕관본문 : 사 61:10~62:3찬송 : 120장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그 뒤에 반드시 구원의 과정 속에서 변화가 뒤따라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구원받은 신도라면서 반드시 따라와야 할 변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에서 구원받아 예루살렘을 돌아온 백성들의 경우 그들이 맛본 구원의 기쁨은 잠시였고 변화없는 좌절과 낙심에 빠질 위험에 있었다. 본문은 바벨론 포로민에서 귀환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바벨론 포로 이후 B.C. 520년 경이며, 예언의 말씀이 들리는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그 백성들의 입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삶 (사도행전 28:16~31) 갈등 1. 한 작은 마을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강은 마을의 한쪽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삶 (사도행전 28:16~31)갈등1. 한 작은 마을에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강은 마을의 한쪽과 다른 쪽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있었어요. 이 다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선과도 같았습니다. 농부들은 이 다리를 통해 시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로 건너갔으며, 가족들은 강을 넘어 서로를 만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수가 나서 강물이 넘쳐 흐르고 마을을 덮쳤습니다. 오래된 다리는 강한 물살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강은 더 이상 사람들을 연결하지 못하고, 마을은 단절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지만, 두려움과 외로움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때, 한 농부가 무거운 나무 기둥을 들고 강가로 나아갔습니다. 그는,‘우리의 다리는 사라졌지..

12월 30일~1월 4일 가정 예배

처음처럼본문 : 계 2:1~7찬송 : 463장 내년에 교회 비전이 '처음처럼'이라 했더니 많은 성도들이 "와~"하고 웃는다.목사지만 그들이 무엇을 연상하는지 그쯤은 잘 안다. 그러나 나의 뜻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처음 받은 은혜, 구원의 감동과 감격과 기쁨을, 그리고 그때의 결심과 헌신과 열심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초등학교 첫 입학, 새내기 대학생, 첫 직장의 출근, 첫사랑, 결혼식장의 서약, 첫 아이의 출생 등을 기억해 보자.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렘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그 처음 마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까?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과 영성과 열심이 처음처럼 주욱 이어갔으면, 혹여 잃었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돌이켜 보면, 예수님을 ..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사 52:7-10, 히 1:1-4, 요 1:1-5, 9-1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사 52:7-10, 히 1:1-4, 요 1:1-5, 9-13)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참 반갑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성탄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여러분의 일터와 교회 위에 가득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죄의 어둠 가운데 사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의 어둠은 참 빛 되신 예수를 감당할 수 없었고, 참 빛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세상은 어둠을 감추기 위해서 참 빛 되신 예수를 외면했고, 참 빛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린아이들이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서 하늘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

12월 23일~28일 가정 예배

성탄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본문 : 눅 2:8~14찬송 : 117장"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그러기에 늘 새로운 뉴스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듣는 많은 소식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10절). 시공을 초월한, 인종도 남녀 노유도 빈부귀천의 차이도 없이 온 백성, 곧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다.왜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소식일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되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천..

12월 16일~21일 가정 예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본문 : 롬 1:16~17찬송 : 542장하나님의 자녀들은 복음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복음을 자랑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종교인일 뿐 그 삶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자.첫째,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구원은 여호와로부터이다.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주셨다. 구원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이자 사랑이고, 하나님 말씀으로, 하..

12월 9일~14일 가정 예배

믿음으로 살며, 사랑하며 사는본문 : 요 21:15~19찬송 : 435장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이렇게 세 번씩이나 물으셨을까?주님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거듭해서 지었던 죄를 회복시키기 전에 새로운 믿음의 고백을 이끌어 내시고자 하셨다. "네가 나를 믿느냐? 베드로 회개했느냐? 나를 고백할 준비가 되었느냐? 이제 나에게 순종하겠느냐"라고 물으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저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물음은 베드로에게도 오늘 나에게도 가장 날카롭고 의미심장한 물음이다.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단순히 세례받은 남자나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주일이면 형식적으로 교회..

12월 2~7일 가정 예배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본문 : 사 11:1~10찬송 : 488장성탄절을 앞두고 4주간의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대강절은 교회력의 시작인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기다리는 일로부터 시작됨을 암시한다.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또 그를 통해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모든 사람은 희망을 갖고 산다. 그들이 희망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약속되어진 것들이 아니다. 기대 혹은 막연한 요구, 요행들이다. 반면에 이미 약속되어진 것들은 믿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기다리지도 않는 경우를 본다. 약속이란 매우 중요한..

11월 25일~30일 가정 예배

데라와 나본문: 창 12:1~9찬송가: 150장장대영 목사/안강영락교회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있는 명령은 몇 개인가? 우리말 번역은 '떠나라'와 '가라'의 두 개 명령처럼 읽히고 있지만, 원문에서 명령어(동사)는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정황을 고려하면 '떠나라'보다는 '가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것이 이 명령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거기(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그곳)로 가려면 여기(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를 떠나야 하지만, 여기를 떠난다고 해서 다 거기로 '가는'것은 아니다. 여기를 떠난다 하더라도 거기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