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글 174

꽃 피우는 아이 ㅡ 김민기 무궁화 꽃을 피우는 아이 이른 아침 꽃밭에 물도 주었네 날이 갈수록 꽃은 시들어 꽃밭에 울먹인 아이 있었네

꽃 피우는 아이 ㅡ 김민기 무궁화 꽃을 피우는 아이 이른 아침 꽃밭에 물도 주었네 날이 갈수록 꽃은 시들어 꽃밭에 울먹인 아이 있었네 무궁화 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꽃은 시들어 땅에 떨어져 꽃 피우던 아이도 앓아 누웠네 누가 망쳤을까 아가의 꽃밭 누가 다시 또 꽃 피우겠느냐 무궁화 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모리아/글 2024.05.08

교훈

교훈 ㅡ 헤르만 헤세 사랑하는 아들아, 사람들의 말에는 많든 적든 결국은 조금씩 거짓말이 섞여 있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기저귀에 싸였을 때와 후에 무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정직한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조상 옆에 누워 드디어 현명해지고 서늘한 청명에 싸여 백골로 진리를 깨우친다. 그러한 많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며 다시 살아나고 싶어한다.

모리아/글 2024.03.17

산수유

산수유 ㅡ 이 병창 어느 별에선가 웃었던 너의 노란 웃음이 오늘은 여기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있구나 눈 뜨고 꽃 피고 열매 맺고 거울 밖의 산천은 모두다 제 할 일 하고 있었구나 꽃샘바람 불어오는 인연의 끝자락에서 너를 기다려온 개구리들이 너의 환생을 기운차게 웃고 있다 덕분에 나도 너처럼 나를 웃는다 숨 가쁜 세상의 바람이 불어오는 고갯마루에서 이 아침을 웃는다.

모리아/글 2024.03.09

밤 ㅡ 가르리엘라 미스트랄 아가야, 이제는 잠을 자거라 이제는 석양이 타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이슬밖에는 더 반짝이는 것이 없구나 나의 얼굴보다 더 하얀 이슬이 아가야, 이제는 잠을 자거라 이제는 길도 말이 없단다 이제 개울밖에 더 웅얼거리지 않는구나 나만 홀로 남아 있단다 평원은 안개로 잠겨 있는데 벌써 파란 한숨은 움츠러들었구나 이제 세상을 쓰다듬는 건 부드러운 평온의 손길이란다 아기는 자장가 소리에 맞추어 잠이 들었다 대지도 요람의 미동에 잠이 들었다

모리아/글 2024.02.18

아끼지 마세요

아끼지 마세요 ㅡ 나태주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

모리아/글 2024.02.08

2월

2월 ㅡ 성 백균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러나 아직은 서투른 미동들뿐입니다 좀 모자라는 일 년 중 가장 날수가 적은 허약한 달, 그래서 하찮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러기에 설이 있고, 정월 대보름이 있고 사람들이 힘을 보태는 내공이 쌓인 달이지요 대지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느라 기지개를 켜는 걸까요 뜰앞 나목이 빈 가지에 싹을 틔우느라 붓질을 하는 걸까요 바람[望]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자꾸 귀를 후비게 되고 살갗이 터지는 것처럼 가려워 몸 구석구석을 긁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변화가 시작되나 봅니다 봄이 어떻게 올지, 무엇을 해야 할지, 2월은 소망을 품고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놀라게 하려고 몰래 생명을 잉태하는 영양가 있는 달이지요

모리아/글 2024.02.01

나무 1 - 지리산에서

나무1 - 지리산에서 ㅡ 신 경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모리아/글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