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1450

겨울꽃 피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

[겨울꽃 피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 나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외로울 때가 좋은 것이다 물론 외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충분히 견뎌내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아파하고 방황한다 이점 사랑이 찾아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랑이 찾아올 때 그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사랑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호젓이 기뻐하며 자신에게 찾아온 삶의 시간들을 충분히 의미 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ㅡ 시인 곽 재구

모리아/시 2021.03.11

가르마

가르마 시인 김 수정 가르마를 바꿔탔다 머리를 감으면 이 작은 머리통에 분활선이 무어냐고 쓰러진 벼처럼 드러눕는 머리카락 파마 약을 몇 번이나 바르고 드라이어로 눌러 붙여도 굵은 머리칼 몇은 기어이 돌아 가르마 한 줄 지우는 일이 못 줄 옮겨 잡는 일보다 쉽지 않다 경원선 철길 옆, 벼들이 누렇다 윗마을, 아랫마을 가르며 기차가 달리고 화약 연기처럼 흩어지는 기적 소리 날파람이 새줄을 흔들자 놀란 새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신탄리역 끊어진 철길, 철조망이 그어놓은 가르마 위를 훨훨 날아가는 새 떼....

모리아/시 2021.03.11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일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이다. 때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ㅡ 작자 미상

모리아/시 2021.03.11

우리들의 행진 곡

우리들의 행진 곡 ㅡ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폭동의 발걸음 소리를 광장에 울려라! 산맥을 이룬 당당한 머리 위로 높이 솟아라! 우리는 두 번째 노아의 홍수로 세상의 온 도시를 씻어버리리라. 일상의 소는 얼룩소 세월의 마차는 느리다. 우리의 신이 달린다. 우리의 심장은 드럼이다. 우리의 황금보다 매혹적은 것이 있을까? 탄환의 땅벌은 우리가 쏠까? 우리의 무기-우리의 노래. 우리의 황금-울려퍼지는 목소리. 초원아, 푸르러라, 세월을 위해 바닥을 깔아라. 쏜살같이 달리는 세월의 말에 무지개여, 멍에를 씌워라. 보아라, 별들이 빛나는 하늘이 지루하기만 하다! 하늘의 도움 없이 우리 노래를 엮어보자. 예이, 큰곰자리여! 요구하라, 우리를 산 채로 하늘로 모시도록 기쁨을 마셔라! 노래하라! 혈관에 봄이 넘쳐흐른다...

모리아/시 2021.03.11

뒤늦게서야

뒤늦게서야 가까이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떠나고 난 뒤에야 난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같은 꿈을 뒤풀이해서 꿀 수 없는 것처럼 사랑도 되풀이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대가 멀리 떠난 뒤였습니다. 나는 왜 항상 늦게 느끼는지요. 언제나 지난 뒤에 후회해 보지만 뒤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대가 먼저 길을 떠났고, 뒤늦게 내가 부지런히 따라가 보았지만 이미 그대의 모습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ㅡ 시인 이정하

모리아/시 2021.03.11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ㅡ 라이너 마리아릴케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에 대해 인내함을 가져라. 고민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답을 얻으려 말라.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그대로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고민들과 더불어 살라. 그리하면 언젠가 미래에 너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그 시간에 삶이 너에게 답을 가져다줄 것이라니.

모리아/시 2021.03.11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ㅡ 시인 김 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

모리아/시 2021.03.10

유예된 시간

유예된 시간 잉게보르크 바하만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보이게 되리라. 이제 곧 그대는 구두끈을 조여매고 개들을 늪지로 쫓아버려야 한다. 물고기의 내장들은 바람에 맞아 차갑게 식어버렸으니. 초라하게 루핀의 빛이 타오르고 있다. 그대의 시선이 안개 속에 궤적을 남기니, 판결의 파리하고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보이게 되리라. 저편에서 그대의 연인이 모래에 묻혀 가라앉고 있다. 모래는 그녀의 나부끼는 머리칼까지 솟아오르고, 모래는 그녀의 말을 가로 막아 침묵하라고 명령한다. 모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을, 모든 포옹 뒤 기꺼이 이별을 감수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뒤돌아보지 말라. 그대의 구두끈을 조여 매라. 개들을 쫓아 보내라. 물고기를 바닷속에 던져 버려라. ..

모리아/시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