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사람을 만나러 간다

ree610 2021. 3. 10. 21:23

사람을 만나러 간다

ㅡ 시인 김 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들먹이는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너 또한 내일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하려고 네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람.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
우리의 만남이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억울할 정도로
길고 오래간다. 꺼지지 않는 이 불씨가
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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