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1453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ㅡ 라이너 마리아릴케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에 대해 인내함을 가져라. 고민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답을 얻으려 말라.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그대로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고민들과 더불어 살라. 그리하면 언젠가 미래에 너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그 시간에 삶이 너에게 답을 가져다줄 것이라니.

모리아/시 2021.03.11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ㅡ 시인 김 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

모리아/시 2021.03.10

유예된 시간

유예된 시간 잉게보르크 바하만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보이게 되리라. 이제 곧 그대는 구두끈을 조여매고 개들을 늪지로 쫓아버려야 한다. 물고기의 내장들은 바람에 맞아 차갑게 식어버렸으니. 초라하게 루핀의 빛이 타오르고 있다. 그대의 시선이 안개 속에 궤적을 남기니, 판결의 파리하고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보이게 되리라. 저편에서 그대의 연인이 모래에 묻혀 가라앉고 있다. 모래는 그녀의 나부끼는 머리칼까지 솟아오르고, 모래는 그녀의 말을 가로 막아 침묵하라고 명령한다. 모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을, 모든 포옹 뒤 기꺼이 이별을 감수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뒤돌아보지 말라. 그대의 구두끈을 조여 매라. 개들을 쫓아 보내라. 물고기를 바닷속에 던져 버려라. ..

모리아/시 2021.03.10

봄의 말

봄의 말 헤르만 헤세 봄이 속삭인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소년 소녀들은 모두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 노인들도 모두 봄의 속삭임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 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모리아/시 202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