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사색 형수님께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추수라도 하듯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봅니다. 금년 가을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공허한 마음은 뼈만 데리고 돌아온 '바다의 노인'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언제 한번 온몸으로 떠맡은 일 없이 그저 앉아서 생각만 달.. 모리아/삶 2004.11.25
나는 걷고 싶다 계수님께 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인지 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번 찐하게 안 오나, 젊은 친구들 기다려쌓더니 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 모리아/삶 2004.11.18
완산칠봉 바라볼 때마다 형수님께 완산칠봉 바라볼 때마다 전주성 밀고 들어가던 농군(農軍)들의 함성들이 땅을 울리며 가슴 한복판으로 달려왔었는데 금년 세모의 완산칠봉에는 '전주화약'(全州和約) 믿고 뿔뿔이 돌아가는 농꾼들의 여물지 못한 뒷모습 보입니다. 곰나루, 우금치의 처절한 패배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 모리아/삶 2004.11.09
고마움 김숙희 칼럼 - 고마움 택배배달원이 무거운 소포하나를 배달해왔다. 받아서 열어보니까 제주도에 사는 제자에게서 온 감귤이었다. 어제 저녁 그 제자에게서 “택배로 작은 것 하나 보냈으니까 받으세요” 하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났다. 소포를 뜯어서 감귤을 하나 까 먹어보니까 과일의 즙이 많고 아.. 모리아/삶 2004.08.31
문신을 한 사람 형수님께 월간지 {자연}(自然)에는 특집으로 [벌레들의 속임수](あざむく土たち)가 계속 연재되고 있는데 지난 달에는 애벌레[幼蟲]와 나방들의 문양과 색깔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애벌레를 먹이로 하는 소조(小鳥)들은 애벌레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재빨리 쪼아먹습니다. 그러나 소조가 애벌.. 모리아/삶 2004.08.16
겨울 새벽의 기상 나팔 기상 30분 전이 되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든 친구를 깨워줍니다. 부드러운 손찌검으로 조용히 깨워줍니다. 그는 새벽마다 기상 나팔을 불러 나가는 교도소의 나팔수입니다. 옷, 양말, 모자 등을 챙겨서 갖춘 다음 한 손에는 '마우스피스'를 감싸쥐어 손바닥의 온기로 데우며 다른 손에는 나팔과, 기상 .. 모리아/삶 2004.07.30
벗이 하나 있었으면 벗이 하나 있었으면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 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 모리아/삶 200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