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마움
이때만 되면 어김없이 제주도 자기 집에서 정성들여 키운 하우스 감귤이라면서 보내 주곤 하는 제자의 나이가 벌써 50을 넘기었다. 19살 단발머리로 대학에 입학하였던 어린 제자가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가 되어서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이제 중년을 넘기려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내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리는 제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뿌듯하면서도 한편 고마움을 느낀다.
딸이 대학에 입학 되었다고 흥분한 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역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끝낸 옛날의 제자인데 엄마가 되어서 딸을 대학에 입학을 시켰건만 자기 자신은 아직까지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시간 강사로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다. 어떤 대학에서 신임 교수를 모신다는 광고를 보고 소정의 서류를 갖추어 가지고 찾아와서 하는 말이 추천서를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직도 나는 네 지도교수이냐?” 하면서 옛 제자의 추천서를 쓰면서 그 당시의 옛 생각과 그때 일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 당시 학생들의 패기 발랄한 모습을 떠 올렸다. 추천서를 내어 주면서 노파심에 “만일에 면접을 보러가게 되거든 지금과 같은 차림새는 좋지 않으니까 아래 위가 같은 곤색이나 검정색이나 또는 회색의 단정한 양복을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고 가거라” 하는 당부를 하였다.
그때에 그 제자는 표정이 야릇해지면서 “선생님! 제가 나이가 몇 살인데 지금껏 그런 염려 하십니까” 하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순간 표정과 마음을 다스리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는 소리를 할 때에 마음에 와 닫는 ‘찡~’ 하는 감정을 억지로 숨기는 내 모습을 제자가 다시 보고 와서 꼭 껴 안아주고 뒤로 돌아서서 나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고마웠다.
“선생님! 이제 제 나이도 60을 바라다 보내요”
교수 초년에 가르쳤던 제자의 전화이었다.
“선생님께서도 저도 모두 건강에 유의하여야 하는 연령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이번 토요일부터 매주 북한산 등산을 시작하시지요” 2년 전의 전화 통화 내용이었다.
지난 2년 내내 금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내일이 토요일인데 가실 수 있지요?” 하는 전화가 걸려 온다. 도시락과 과일과 물을 등에 지고 산 밑에서 만나 북한산 비봉 밑까지 등산을 하고서 도시락을 제자와 함께 먹는 그 맛은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제자가 타온 커피 한잔을 마시고 넓은 바위에 등을 대고 누워서 산바람을 맞으면서 산의 신록을 즐기면서 자연히 학교에서 실험하던 이야기부터 시험 때 골탕 먹은 이야기 까지 옛이야기에 한 동안 도취되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서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머리, 폐, 오장 육부가 다 깨끗해진 느낌을 느끼면서 하산을 한다. 속옷서부터 땀에 젖은 그대로 생맥주 집에 가서 반잔정도 들이키는 그 맛 또한 상쾌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토요일 산행을 위한 전화를 걸어 주는 제자의 전화 소리에서 37년의 대학 교수 생활을 고마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데살로니가 전서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무거운 짐을 집에 까지 배달해주는 택배원, 갖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제자들에게서 범사를 배우면서 감사를 실천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고마움으로 변화 되도록 그리고 고맙지 않은 것도 고맙게 느낄 때에 주변이 편안해지는 이치를 날마다 깨달아 가고 있는 자신에게 또한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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