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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제16차 포럼
일 시: 2025. 2. 15.(토) 11:00 ~ 13:00
장 소: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113호 세미나실
강연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주 제: 한국교회 출발에 대한 검토
참석자: 이만열, 김영, 박충구, 정종훈 ,이명재, 조성민, 이태행, 홍덕진, 유정현, 김규돈, 조헌정, 이명재(김천)+사모님, 이삼열, 권진관, 황경선, 정애란, 이근수, 최자웅, 채수일, 진의범, 김상균, 이흥용, 윤재선
<강연 요약> - 정종훈 교수
1. 올해가 한국교회 140주년이라고 한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입국한 것을 기점으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1884년 9월 20일 의료선교사 알렌이 미국 공사관 공의로 부임한 것을 소급하면 141주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는 한국교회가 선교사 중심으로 자신의 역사를 정리한 결과이다. 참고로 가톨릭은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받은 해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2. 스코틀란드 장로회 소속 중국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842-1915)가 1872년 선교사로 상해에 도착한 후 만주 영구 우장에서 활동했고, 그는 중국어를 배운지 100여 일 만에 설교를 할 만큼 언어의 천재였다. 그는 1874년과 1876년 고려문을 두 차례 방문해서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자기가 입은 옷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한글 성경번역을 위해서 한글을 공부했고, 1877년 Korean Primer와 ‘한국사’ 편찬을 필두로 1879년 신약성경 몇 권을 번역했다. 1879년 그의 매제요 동역자인 John Macintyre가 4인의 한국인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름을 알 수는 없다. 로스는 1979-81년 영국을 방문한 후 1881년 심양으로 귀환해서 ‘예수성교문답’과 ‘예수성교요령’을 시험으로 인쇄했고, 1882년 3월에 ‘예수성교누가복음전서’, 5월에 ‘예수성교요안내복음전서’ 3천 부씩 간행했으며, 드디어 1887년 ‘예수셩교젼셔’를 간행했다.
3. 매약상, 식자공, 좀 굼뜬 사람으로 알려진 김청송은 ‘植字’ 과정에서 복음을 마음 판에 새기게 되었고, 성경 간행 후 자기 친척 등에게 전파할 것을 결심했다. 고구려 고도 국내성 등 28개의 한인 부락에 수백 권의 ‘누가복음’과 ‘예수성교요령’ ‘예수성교문답’을 보급했던 그는 1882년에 세례받았다. 임오군란 후 국경 지역에 좌천, 망명한 군인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가 김청송의 전도를 받아 1883년 심양의 로스를 찾아가 2개월간 로스를 도우며 한문 기독교 서적을 독파했고, 수세 후 한인촌으로 귀환해서 전도 활동을 했다. 김청송의 전도를 받은 한인촌의 한 학자는 개종한 후 1884년 가을 심양에 있는 로스를 찾아가 한 달만에 세례를 받았고, 한인촌에 학교가 세워지자 전도와 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4. 1882-83년 한인촌 전도로 수많은 개종자가 생겨났고, 그들은 회집해서 예배를 드렸다. 중국인 지주가 이상히 여기고 이들을 핍박하자, 많은 이들이 가재도구를 버리고 압록강 남쪽으로 피신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위트모어 선교사 등이 증언했다. 1884년 11월 중순, 로스는 동료 Webster와 함께 영하 20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600마일을 순방하면서 세례를 주었다. 12월 6일 오후에 세례 문답을 거쳐 20명, 저녁에는 5마일 떨어진 마을에서 온 10명, 12월 7일에는 얼어붙은 압록강 위를 걸어 10마일 떨어진 마을에서 25명에게, 셋째 마을에서는 12월 10일 10명에게 문답을 거쳐 세례를 베풀었는데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영적 지도자와 장로가 세워져 있었다. 12월 12일에는 넷째 마을에서도 10명이 수세, 그중 1인은 학교 교사였다. 이렇게 75명이 세례를 받았는데, 이들의 연령은 16-75세, 대부분 남자였다. 1885년 여름에도 25명 수세, 총 100명에게 수세했고, 600여 명이 대기 상태였다. 나중에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1887년 1월 27일자)를 보면, 당시 수세인들의 각오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3명(서경조 최명오 정공빈)을 문답했는데(1887.1.23일 주일), 그들은 훌륭하게 문답에 통과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들과 구원교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대답은 명쾌하고 정확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임금님이 우리를 처형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으며, 다른 한 명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임금님이 내 목을 자른다 해도 상관치 않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5. 서상륜은 만주의 영구 우장에서 로스를 만나 큰 병을 고친 뒤 심양에서 로스의 번역사업에 조력했다. 1882년 누가 요한복음 간행 뒤, 김청송에 이어서 세례를 받은 6번째 수세자가 되었다. 1882년 10월 8일 로스 목사 부부와 함께 기도한 후, 성경을 가지고 고려문을 통과하는 동안 많은 고초를 겪었다. 서상륜은 1883-85년 초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전도에 주력하고, 85년 초 沈陽으로 귀환한 후, 서울에서의 활동을 보고했고, 로스는 그 내용을 1885년 3월 26일자 편지로 영국성서공회에 알렸다. <... 그가 2년 동안 노력한 결과 현재 70명이 넘는 세례청원자가 있으며 그 가운데 몇 명은 주목할 만한 사람들입니다. 그가 개종시킨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세례받기 위해 함께 이곳으로 왔는데,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서울의 서쪽에 있는 한 도시에 ‘설교당’을 개설하였고, 그곳에 18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서울 남쪽의 한 도시에 있는 다른 한 개종자는 ‘20명 이상’의 세례 청원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의 서쪽에 있는 한 도시는 황해도 소래인 듯하고, 서울의 남쪽의 한 도시는 ‘안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할 때, 1885년 4월 5일을 한국 개신교의 출발일로 보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것이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한국교회의 출발의 전형이자 요람으로 불리는 소래 신앙공동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들 구도자 중 3명은 서상륜의 인도로 1887년 서울의 선교사들을 찾아가서 세례문답을 하고 1월 23일 언더우드로부터 세례를 받게 되며, 나머지 사람들은 이후 언더우드를 소래로 불러서 세례를 받게 된다. 선교사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고, 그들을 불러와서 세례를 베풀게 했던 한인촌과 의주, 그리고 소래의 신자들, 이들에 의해서 자생적인 한국교회는 세워져 나갔던 것이다.”(<한국기독교의역사 I>,p.156,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질의응답과 코멘트>
1. 한국 최고의 원로 사학자이신 이만열 선생님께서 초창기 한국 개신교 역사를 소상하게 말씀해 주셨다.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올해를 한국교회 역사 140주년으로 삼고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140주년이라고 할 때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에 입국한 1885년 4월 5일을 기점으로 하는데, 한국인들은 187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던 존 로스나 맥킨타이어와 같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미 기독교에 접촉했고, 심지어 세례를 받았으며, 그들과 함께 우리말 성경번역을 했다. 이런 것들이 출발이 되어서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개신교 신앙공동체가 자생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 로스를 비롯한 영국 선교사들의 치열하고 숭고한 선교 열정이 있었던 것에 병행해서 영국의 식민지 제국주의로서의 침략의 다른 측면이 있지는 않았는지 의문이다. 한편으로는 1864년 수운이 동학을 창시한 후 순교했고, 해월 최시형 선생이 지하 포교로 30년 포교하던 시기였다. 그 후에 김구 선생도 동학에 참여했다. 이때가 동학의 포교활동과 기독교의 선교활동이 함께 가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3. 성결교회의 경우, 외국 선교사가 와서 선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정빈 김상준 두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서 성경을 배우고 와서 개척했다. 그래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자생론을 이야기한다. 선교 자생론은 우리 자신에게서 기독교의 뿌리 찾는 것인데, 우리가 선교 선진국, 기독교 선진국 운운하며 선교사 중심으로만 접근하고자 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4. 한국개신교의 선교 기점을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이전으로 하려면, 한국인 선교와 성경 번역 등으로 한국 개신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로스 선교사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나중에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등의 노력으로 다시 성경이 번역되었는데, 그때 로스가 번역한 성경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가 한국교회의 역사를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로스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1887년 언더우드가 세운 정동교회(지금의 새문안교회)를 방문한 바 있다. 하지만,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등 선교사들이 성경을 다시 번역할 때 로스의 성경번역을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5. 지금 대한민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태어나게 된 것은, 전광훈이나 이만희 같은 사이비 종교집단 지도자의 기여가 컸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회유, 착취, 노예화하는 반기독교적, 반사회적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인들의 반기독교적이고 반사회적인 행태에 대해서 민사네의 기독교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그동안 수없이 비난해왔다. 이만열 교수님은 종교계의 지도자로서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에 대해 깨우쳐 주고 계시는데, 이제 우리 민사네 젊은 회원들이 대를 이어 기독교 정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펼쳐나감으로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한다.
6. 우리나라 역사의 두 가지 충격은 첫째는 한자 문화의 전례이고, 둘째는 기독교 문명이다. 기독교 문명의 충격을 이야기할 때, 가톨릭이 먼저 들어왔고, 개신교가 나중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 둘의 역사를 별개로 다루기보다는 통합해서 다룰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의 문명사, 문화사, 사상사 등의 측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합해서 크게 다루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신교 초창기 서북지방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갈등이 있었지만, 독재정권 시절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통해 내왕하며 협력한 역사가 있다. 사실 가톨릭과 개신교는 형제자매의 관계인데, 서로 이단이라 폄하하며 적대하는 갈등 관계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7. 중국에 이미 가톨릭이 일찌감치 들어와서 관계 서적들이 적지 않게 번역되고 출판되었다. 로스나 한국의 선교사들이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된 한자 문헌을 얼마나 참고했는지, 로스 성경 번역본이 일본의 이수정이 성경을 번역할 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살필 필요가 있다.
8. 지금은 우리 기독교가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역사적인 현실을 어떻게 해결하고, 무엇을 지향하며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노상원의 수거 대상에 일부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이 반갑다. 기독교의 소위 기득권 세력이 온갖 짓을 자행하고 있는역사의 격변기에 우리 진보적인 기독교 세력이 할 일이 많다.
9. 한국교회는 토착화 신학과 민중 신학이라는 신학의 양대 전통이 나름 있지만, 현실 교회 속에서의 영향력은 미비하다. 복음에 대한 내용이 과도하게 미국화, 자본주의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오늘 우리의 논의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선교사의 등에 업혀서 한국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 역사 속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섭리하며 역사하고 계셨다. 이제 우리의 목회 현장과 신학교육 현장에서 미국에 대한 감사와 숭배로, 미국이 우리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한 유일한 메신저처럼 일방적으로 해석되는 건 수정해야 할 때이다. 한국개신교 선교의 과도한 미국 의존과 사대주의적 속성을 반성하고, 전광훈, 손현보로 대표되는 극우편향적인 한국교회를 반성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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