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설교 자료

누가복음 2:41~5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찬송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Ⅴ.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소년 예수 (눅 2:41-

ree610 2025. 2. 12. 17:20

누가복음 2:41~5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찬송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Ⅴ.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소년 예수 (눅 2:41-52)

  (1)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절기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41,42절). 예루살렘까지는 긴 여행이었으며, 또한 그들은 가난하였지만, 항상 율법에 따라 유월절 행사에 참여했다. 공적인 의식은 종종 거행되어야 하며, 우리는 모이는 일을 폐해서는 안 된다. 어린 예수는 열두살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유대 학자들은, 열두살된 아이들은 때때로 금식을 시작해야 하며, 열세살이 되면, 아이는 율법의 아들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유아기 때부터 할례에 의하여 계약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앞선 아이들은 신앙적인 면에서도 당연히 앞서게 된다. 어려서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들은, 자라서는 복음의 유월절에 즉 주의 만찬에 청하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을 그들 자신이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2) 그리스도께서는 부모가 돌아간 뒤에도 계속 머물러 계셨으며 그 부모들은 알지 못하였다.

   1)그분의 부모는 그 날들을 마치기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비록 그 첫 이틀이 지난 후에까지 그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은 유월절 연회기간인 7일동안 내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답게 의식이 끝날 때까지 서둘러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2)이 때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집에 가기가 싫었거나 부모와 동행하기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거기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며, 또한 부모로 하여금 자신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계시며 자신은 그들에게보다 그분에게 더욱 복종하여야 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분이 부모들에게 보다 더욱 복종해야 될 분이셨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부모에 대한 불경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기꺼이 주의 집에 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주의 집에 거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3)그의 부모는 그가 뒤에 남아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하룻길을 갔다. 그들은 그가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였던 것이다(44절). 이 절기에는 많은 무리들이 몰려왔으므로, 그의 부모는 그가 그들의 이웃들과 함께 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그를 찾았다. 혹시 "우리 아들을 보셨습니까"하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45절). 어쩔 수 없이 교제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곤 거의 혹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친족과 이웃들이 많이 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 날 밤 그들이 묵었던 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4)그들은 지난 밤 묵었던 곳에서 그를 찾지 못하자, 다음 날 아침 다시 그를 찾아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을 만나게 될 때까지 찾아야 한다. 그분을 찾는 자들은 반드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안을 상실한 자는, 그들이 어디서 언제 어떻게 그것을 상실하였는지를 숙고하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누렸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5)사흘 후에 성전에서 그를 만났다. 거기서 그들은, 그가 선생들 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46절). 즉 그는 그 선생들에게서 훈련받거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배우는 사람으로서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지혜가 충족했을 뿐만 아니라(40절), 그 지혜를 더하며 그것을 주고 받고자 하셨음을 보이는 한 예이다. 여기서 그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질문도 하였다. 그가 선생으로서(그는 물을 권위도 가지고 계셨다) 질문했는지, 아니면 배우는 자로서(물어볼 만큼 겸손하셨다) 질문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는 선생들에게 대답하기도 했는데, 그 대답은 매우 놀랍고 만족스러운 것이었다(47절).

   6)그의 어머니는 이일에 대해 그와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가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그리고 그가 선생들 중에 앉아 있도록 허락받을 만큼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의 어머니 자기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를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48절).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놀라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는 자기에 대한 그들의 지나친 근심을 조용히 책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 그러나 그 당시 그의 부모는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50절).

   7)그들은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그는 양친에게 예루살렘에 와서 정착해 살 것을 권하지 않고 기꺼이 나사렛에 은둔해 계셨다. 말하자면 그는 수년동안 세상에서 잊혀진 채 그곳에서 지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그의 양친에게 순종하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목수 일에 종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둘째, 그의 모친은 아들이 하는 말들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이 모든 말들을 마음에 두었다`

셋째, 그는 점점 자라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52절).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누가복음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 아버지 집

* 예수님의 성장 과정(2:40-52)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육은 균형 있는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성장 과정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는 예수님을 잠시 잃어버리는 일을 당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을 모르고 동행 중이라 생각하며 하룻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늘 동행해야 하는 우리가 주님의 뜻보다는 자기 생각을 앞세울 때,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잃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문제는 예수님이 움직이고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움직이며 변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주님! 아버지 집인 성전에 머물면서 말씀을 배우며 듣기도 하고 물으면서 주님과 같은 지혜와 총명을 얻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