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설교 자료

누가복음 19:28~48 <예루살렘 입성과 탄식> 찬송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Ⅲ. 예루살렘 입성 (눅 19:28-40)

ree610 2025. 4. 6. 18:56

누가복음 19:28~48
<예루살렘 입성과 탄식>
찬송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Ⅲ. 예루살렘 입성 (눅 19:28-40)

우리는 여기서 전에 마태 복음과 마가 복음에서 보았던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일종의 승리의 입성을 하신 것에 대한 동일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기 위해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셨다. 그는 거기서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다. 그것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 가셨다(28절). 그는 무리 중에서 제일 앞서 가셨다. 그는 이와 같이 우리를 위해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나아가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어떤 봉사를 함에 있어 주저하는 것인가

  (2) 그가 죽으시기 바로 전에 예루살렘에 공개적으로 들어가신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이나 현재의 비하의 상태 모두에 합치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로써 그의 죽으심의 굴욕이 더욱 크게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나귀와 그 새끼를 그 필요하신 때에 그 임자들로부터 가져오도록 하셨다.

  (4)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신다. 그는 나귀와 그 새끼의 임자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가져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주께서 그것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듣자마자 가져가기를 허락하였다.

  (5) 그리스도의 명을 수행하는 자들은 확신하고서 나아갔다(32절). 만일 참으로 주께서 필요로 하신다면 그들이 찾는 것을 반드시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전파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6) 그를 위해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져온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자기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으로 그를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그 제자들은 그를 위해서 나귀 새끼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올려 놓았다.`

  (7) 그리스도의 개선은 그의 제자들의 찬송의 제목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열 두 제자 뿐 아니라 전 제자들의 무리의 마음 가운데 갑자기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마음을 넣어 주셨다(37절). 그들은 또한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는데`(36절) 이는 평상적인 기쁨의 표현이다. 그들의 기쁨과 찬양의 이유 혹은 제목이 무엇이었는가를 주목하여 보라. 그들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특별히 `나사로를 살리심`에 대해서 찬양했다(이것은 특별히 요 12:17,18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들이 자기들의 기쁨과 찬양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라.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시다. 그는 또한 찬송받으실 분이시다. 그를 찬양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하늘에는 평화요.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행하심에 평화와 성과를 주실 것이다. 그러면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의 이 성도들의 찬양을 천사들의 찬양과 비교해 보라(눅 2:14). 이 둘은 모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일치하고 있다. 천사들은ㅈ `땅에서는 평화`라고 했다. 우리가 `하늘에 있는 평화`를 기뻐함같이 그들 또한 땅에 있는 평화를 기뻐하는 이러한 것은 우리가 거룩한 천사들과 교제를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8) 그리스도의 개선과 그것을 찬양하는 제자들의 기쁜 찬양은 교만한 바리새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들에 대해 격분한 무리 가운데 바리새인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환호를 허락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그가 `자기 제자들을 책망하시리라고` 기대하였다(39절). 그는 교만한 자의 경멸을 멸시하시듯이 겸손한 자의 찬양을 받으신다.

  (9) 사람들의 그리스도를 찬양하든 안하든 그는 찬양을 받으실 것이며 받게 될 것이고 또 받으셔야만 한다. 만일 이 사람들의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40절). 즉 이 사람들의 잠잠하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찬양을 못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돌들이 소리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을 잠잠케 하려 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돌들로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듯이 그 자손의 입으로 능히 온전히 찬양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누가복음 19:38)

** 마땅히 돌려야할 찬송

* 예루살렘 입성(19:28-4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목적은 영원한 희생 사역을 성취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죽음을 가져오는 사탄을 치시며, 영광과 승리의 왕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재림 때 심판의 자격을 가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시 타신 짐승은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였습니다. 이는 슥 9:9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지만 바리새인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 입성을 기뻐한 무리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의미의 메시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인정치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우리는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눈물과 성전 정화 (19:41-46)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까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물리적인 파괴를 내다보신 것뿐만 아니라 현재 지도자들 사이에 팽배한 영적 형식주의로 인한 정신적, 종교적 황폐를 보시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시자마자 먼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다고 화를 내신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은혜로운 곳이 착취와 폭리의 소굴로 전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는 말씀은 회개하라는 말씀이요(막1:4; 고후7:10), 경고의 말씀이요(잠1:23; 고전14:24), 확실한 예언의 말씀입니다(민11:26; 벧후1:19).

주님!
우리의 메시야 그리도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며 영원히 찬송을 돌려드리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