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설교 자료

누가복음 20:19~40 <세금 논쟁, 부활 논쟁> 찬송 32장 만유의 주재 Ⅲ.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문제 (눅 20:20-26)

ree610 2025. 4. 7. 23:47

누가복음 20:19~40
<세금 논쟁, 부활 논쟁>
찬송 32장 만유의 주재

Ⅲ.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문제 (눅 20:20-26)

1. 그리스도를 해치려는 흉계(20)
그 흉계는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는 것이었다(20절). 그들의 힘으로는 예수를 법에 따라 처형할 수 없었으며 "폭동"을 일으키는 것 외에는 달리 그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총독이 예수에 대해서 분노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틀림 없이 이루어진다.

2.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20)
그들은 정탐이었으며 스스로 의인인 체 해야했다. 스스로 의인인 체 하는 일이 악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정탐은 틀림없이 변장을 한다. 이 정탐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판단을 존경하는 것처럼 가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3. 그들이 제시한 질문(21,22)
그들은 매우 정중하게 말을 시작한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21절). 이렇게 말함으로써 예수를 부추겨 자기들에게 허물 없이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려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렇게 겸손하신 예수를 속이려는 생각을 한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21절).

4. 올무에서 빠져나가시는 예수님(23)
예수께서는 그 간계를 아셨다(23절).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자기를 속이려 한 그들을 꾸짖으셨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24절). 그리스도는 그것이 누구의 돈이며, 거기에 누구의 도장이 새겨졌으며, 그것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를 그들에게 물으셨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그들은 인정했다. 그러자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는 먼저 가이사의 돈이 너희 가운데 통용되는 것이나 가이사의 돈을 너희 화폐로 인정하는 것이 가한가를 물어봐야 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러나 거룩한 것에 있어서는 하나님 한 분만이 너희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5. 어리둥절해진 그들(26)
올무는 벗어졌다. 그들은 백성 앞에서 예수의 말을 책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의 대답을 듣고 놀랐다. 그 대답은 아주 완벽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잠잠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계속 질문했다면 예수는 분명히 그들에게 망신을 주며 그들의 죄를 폭로했을 것이다.

Ⅳ. 죽은 자의 부활과 그 이후의 상태에 대한 설명 (눅 20:27-38)

  (1) 어느 세대건 계시 종교의 근본원리를 뒤집어 놓으려고 하는 타락한 사람들이 있어 왔다.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그 이후의 상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들은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육신에서 행한 데 따라 보상과 형벌이 있는 상태를 믿지 않는다 이 원리를 제거해 버리면 종교는 다 실패하고 만다.

  (2) 하나님의 진리를 흔들리게 하려는 자들이 그 진리를 혼란케 만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 사두개인들은 부활교리에 대한 백성들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싶어서 그리 했던 것이다. 이 경우는 아마도 일곱 남편을 가진 여자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3)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자녀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자녀의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한 상태가 어떠할는지 우리는 표현할 수도 알 수도 없다( 2:9 고전 2:9). 그리스도가 여기서 그것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참조하도록 하라. 첫째, 그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 주님과의 기쁨을 한번 경험한 자들은 거기에만 전념하게 된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럽힐 만한 것이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 둘째, 그들은 다시 죽을 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시 죽는 일이 없는 곳에는 혼인의 필요가 없다. 다시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은 저 세상이 주는 안락함의 극치를 이룬다는 것은 저 세상이 주는 안락함의 극치를 이룬다. 이 세상에는 죽음이 지배하지만 저 세상에서는 죽음은 영원히 추방된다. 셋째, 그들은 천사와 동등하다. 다른 복음서에는 `천사들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사와 동등`이라고 한다. 다른 복음서에는 `천사들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사와 동등`이라고 한다. 천사와 동등한 자 그들에게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전혀 못지 않는 영광과 행복이 있다. 성도들은 천국에 가게 되면 "시민권"을 받게 될 것이다. 사생아였던 그들은 모든 면에서 천국의 원주민인 천사들과 동등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4) 이 세상 이후에 또 하나의 삶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다(37,38절).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은 그때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들은 수년 전에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났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I was)"고 말하지 않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I am)"고 말씀하시는가 그러므로 그 당시 그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누가복음 20:25)

** 세상과 구별하여

* 유대 지도자들의 오류(20:19-26)
구약 경전 일부를 유대인 입장에서만 곡해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건을 오해했으며, 위선과 외식을 유발시켜 형식주의적 신앙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또한 참사랑이 결여된 채 무조건 진리를 배척하는 배타주의에 빠져 있었고, 내세의 영원한 구원보다는 현세의 안정을 더 갈망한 세속 지향주의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이때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5절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란 말씀에서 배울 점은 신앙인은 무조건적인 반정부를 지향해서는 안되고, 신앙인도 국민으로서 합당한 세금을 내야 하며(롬13; 눅23:2), 화평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행10:36).

주님! 산자의 하나님,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