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1442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듯 -홍관희-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듯 그대가 내게로 다가온다면 무엇이 우리를 더 가로막겠느냐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듯] -홍관희-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듯 그대가 내게로 다가온다면 무엇이 우리를 더 가로막겠느냐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우리의 소망이 길을 가듯 보이지 않는 그대가 보이는 내게로 달려온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가 아니겠느냐 어둠속에서도 길이 제 길을 가듯 우리가 얼지 않는 물이 되어 서로를 향해 뜨겁게 흐른다면 사랑이 어찌 아득한 메아리로 놀고 우리가 어찌 수평선으로 만나지 않겠느냐 내가 그대에게로 다가가듯 그대가 내게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마침내 하나의 길이 되어 더욱 빛나는 그리움을 걸을텐데 끝모를 새벽길 밝힐 수 있을텐데

모리아/시 2024.08.06

나는 기쁘다 -천양희-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나는 기쁘다] -천양희-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의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 기다리듯 시 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

모리아/시 2024.08.05

어느 날 길 위에 멈춰서서 -양광모- 어느 날 길 위에 멈춰서서 이미 지나온 길을 바라볼 때 가슴에 꽃 한 송이 피어나기를..

[어느 날 길 위에 멈춰서서] -양광모- 어느 날 길 위에 멈춰서서 이미 지나온 길을 바라볼 때 가슴에 꽃 한 송이 피어나기를 어느 날 길 위에 멈춰서서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볼 때 가슴에 태양 하나 떠오르기를 그러나 그 어느 날도 아닌 바로 오늘 길 위에 멈춰서서 먼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가슴에 사랑 가득 샘처럼 솟아오르기를 함께 손 잡고 그 길을 걸어가기를

모리아/시 2024.08.04

사라진 동화마을 -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사라진 동화마을] -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해도 지게꾼에게 옷을 물어다 줄 사슴은 없느니라 아무도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갈 일이 없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오른들 더 이상 삭은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느니라 흥부전 이후, 또다시 빈민가에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있을 것이며 소녀 가장이 밑 없는 독에 물을 부은들 어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더냐 이 땅엔 더 이상 여의주 없음을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이 삼급수에서 비닐봉다리 뒤집어쓴 용이 승천하길 바라느냐 자아, 더 이상 철부지 유아들을 어지럽히는 모든 동화책의 출판을 금한다 아울러, 덧없이 붉은 네온을 깜박이는 자들이여 쓸데없는 기도를 금한다 하느님은 현세의 간..

모리아/시 2024.08.03

8월처럼 살고 싶다네 -고은영- 친구여, 메마른 인생에 우울한 사랑도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는 길목 화염 같은 더위 속에 약동하는..

[8월처럼 살고 싶다네] -고은영- 친구여, 메마른 인생에 우울한 사랑도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는 길목 화염 같은 더위 속에 약동하는 푸른 생명체들 나는 초록의 숲을 응시한다네 세상은 온통 초록 이름도 없는 모든 것들이 한껏 푸른 수풀을 이루고 환희에 젖어 떨리는 가슴으로 8월의 정수리에 여름은 생명의 파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네 무성한 초록의 파고, 백일홍 줄지어 피었다 친구여, 나의 운명이 거지발싸개 같아도 지금은 살고 싶다네 허무를 지향하는 시간도 8월엔 사심 없는 꿈으로 피어 행복하나니 저 하늘과 땡볕에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나의 명패는 8월의 초록에서 한없이 펄럭인다네 사랑이 내게 상처가 되어 견고하게 닫아 간 가슴이 절로 풀리고 8월의 신록에 나는 값없이 누리는 순수와 더..

모리아/시 2024.08.02

民家 -장석남-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 과연 이 말이 맞을까 저녁 햇빛 한줌을 쥐었다 놓는다 초록을 이제는 심심해하는 8월의 가로수

[民家] -장석남-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 과연 이 말이 맞을까 저녁 햇빛 한줌을 쥐었다 놓는다 초록을 이제는 심심해하는 8월의 가로수 나뭇잎들 아래 그 나뭇잎의 그늘로 앉아서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는 말을 나무와 나와는 지금 점치고 있는 것인가 종일 착하게 살아야 보이는 별들도 있으리 안 보이는 별이 가득한 하늘 바라보며 골목에서 아득히 어둡고 있었다 첫 나뭇잎이 하나 지고 있었다

모리아/시 2024.08.01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복효근 -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복효근-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대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 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모리아/시 2024.07.31

길 위에 서면 -박해선- 길 위에 서면 세상이 나와 상관있다가 이내 상관없어진다 모든 길들은 너를 향한 길이나 너를 향한 길이 없고..

[길 위에 서면] -박해선- 길 위에 서면 세상이 나와 상관있다가 이내 상관없어진다 모든 길들은 너를 향한 길이나 너를 향한 길이 없고 모든 길은 너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나 멀어지는 길이 없다 안타깝지 않은 길이 없고 그립지 않은 추억이 없다 길 위에 서면 내가 길이 될 때까지 걸어야만 한다 너에게로 가는 길이 될 때까지

모리아/시 2024.07.30

사랑하는 마음이면 - 오광수 - 사랑하는 마음들로 산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작은 흠이라도 트집 잡는 사람보다는 헤아리고 격려하며

[사랑하는 마음이면] -오광수- 사랑하는 마음들로 산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작은 흠이라도 트집 잡는 사람보다는 헤아리고 격려하며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모두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걸음걸이가 이상해도 어쩜 개성일 수 있고 목소리가 이상해도 어쩜 매력일 수 있어 좋게만 좋게만 보일 테니까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미움과 시기보다는 이해가 앞서고 내 것으로 챙기기보다는 배려하고 나눔이 있어 소외된 곳, 외로운 곳, 어려운 곳에는 내 손이 내 발이 먼저 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답니다 이제까지 보기 싫었던 모습도 어느새 좋아 보이고 이제까지 하기 싫었던 일도 흥..

모리아/시 2024.07.29

상처 -정연복- 이 세상의 수 많은 꽃들 중에 상처없는 꽃은 단 한 송이도 없으리 이 땅위의 수 많은 사람 중에 상처없는 사람..

[상처] -정연복- 이 세상의 수 많은 꽃들 중에 상처없는 꽃은 단 한 송이도 없으리 이 땅위의 수 많은 사람 중에 상처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리 상처를 입은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상처있는 꽃이여 사람의 영혼이여 아름다워라

모리아/시 20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