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좋은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가정 (느 8:1-18) 갈등 1.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ree610 2025. 1. 30. 09:44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가정(느8:1-18)

갈등
1.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요즘은 사람들이 종종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죠. 귀를 열고 마음을 집중하여 듣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어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수문 앞 광장은 완전히 다른 장면입니다. 아침 햇살에 먼지가 흩날리는 가운데, 에스라가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간, 강렬한 고요함이 광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남녀노소가 저마다 점심 바구니와 자리를 챙겨 들고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린아이 손을 잡은 부모도 보이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천천히 발을 떼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먼지가 광장을 감싸고, 저 멀리 에스라가 강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강단에 선 에스라가 두루마리를 펼칩니다. 바스락거리는 두루마리의 소리와 함께 광장은 조용해졌어요. 누군가 웅성거리는 소리도 없고, 아이들이 칭얼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에스라에게 집중됩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잠시 침묵한 후 낮고 깊은 목소리로 성경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의 목소리가 퍼질 때, 어떤 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떤 이는 눈물을 훔치며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씀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오늘 이 시간 우리도 그렇습니다.

2. 설날 명절 연휴에 맞이하는 주일 아침에 우리는 그 광장의 백성들처럼 말씀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수많은 정보와 소음에 둘러싸여 귀를 열고 마음을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수문 앞 광장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갈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 말씀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마음은 광장처럼 열린 상태입니까? 말씀의 소리가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회복시키는 여정을 지금 함께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먼저 지었고(주전 536년),

이후 느헤미야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완성되었습니다.(주전 516년)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세요.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는 확실하게 하셨고, 그들을 회복시키는 일에도 약속하신 말씀과 같이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성벽 재건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셨던 약속이 그대로 이뤄졌어요.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너무 쉽게 이뤄집니다. 느헤미야를 통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6:15,“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끝났습니다.”

3. 느헤미야가 잘 준비된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벽 재건 후에 3절,“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수문 앞 광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후 처음으로 한 것이 부흥회였을까요?

갈등 심화
4. 수문 앞 광장 부흥회가 질서 있고 규모 있게 이뤄졌습니다. 이날 강사는 학사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정치인이었고, 자신이 강사로 서지 않고 목회 전문인을 강사로 세웠어요. 참 멋있는 느헤미야 이야기입니다. 에스라는 성경-율법 책을 읽고 해석했을 뿐입니다. 5-6절,“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부흥회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본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부흥은 이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성경을 읽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다 일어섰어요. 감히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일 스리랑카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성경 봉독 시간에 제가 설교하는 본문을 두 사람이 반씩 읽었습니다. 스리랑카어로 절반, 영어로 절반을 읽는 동안 성도들이 모두 일어서서 듣는 모습을 보고 인상적인 자세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가 선포하는 성경 말씀을 들을 때 9-10절,“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5.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를 기울였고(3절), 말씀이 그들의 귀에 들릴 때에 그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린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포로기를 겪고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이어 성벽 재건까지 하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몸으로 경험한 것을 깨닫고 또 회개의 눈물, 또 공동체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들으며 백성 전체가 하나 되어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울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우는 그들을 향하여

10절,“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시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회개와 기쁨의 균형을 가르쳤어요. 우리는 울며 죄를 깨닫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기뻐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수문 앞 광장 부흥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며 끝났습니다. 이 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실마리
6. 이스라엘 역사에서 꽤 놀랄만한 일들 가운데 하나가, 바벨론 포로 후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이전에 에스라 등이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고,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총독으로 부임하며 단지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이루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사용하셔서 이루신 일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와 함께 하시며, 황제로부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참 기적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계획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성벽은 단순히 도시를 보호하는 물리적 방어막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백성을 외부의 침략에서 지켜내고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상징적 역할을 했습니다. 성벽이 무너진 상태는 하나님의 백성이 조롱당하고, 주변 민족들에게 영향력을 잃었음을 나타냈습니다.(1:3) 성벽이 재건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그 땅에서 높임을 받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이 단순한 도시 복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2:17-18)

7. 느헤미야는 감격스러운 이 일을 이루고, 다른 무엇보다 먼저 수문 앞 광장에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예루살렘 시민들이-온 공동체가 수문 앞 광장에서 모였어요. 그들이 모인 것은 성벽 재건 후 공동체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예배의 내용은 주로 에스라가 성경을 읽고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스라가 성경을 봉독하고, 또 레위인들이 청중들 사이를 다니며 성경 이야기를 설명할 때에 그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듣고 깨닫자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단순한 일시적 감정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70년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극난한 노예 생활을 경험하며 그들이 몸으로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이스라엘 공동체-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갈망했어요. 이것이 부흥입니다. 오늘 우리 심령 가운데 부흥이 있다면, 이런 변화가 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나타납니다. 느헤미야의 수문 앞 광장 부흥회의 특징은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들에게 영적 각성과 회개가 임했습니다.

8. 수문 앞 집회 후,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새롭게 했습니다(8:13-17). 이는 단순히 한 번의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어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속적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13-14절,“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을 읽을 때에 초막절을 발견하고,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부흥회는 초막절을 지키며 성회가 이어졌습니다.

17-18절,“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작은 초막들이 예루살렘 성 안과 밖에 가득히 세워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초막 안에서 웃고, 부모들은 감격에 찬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온 도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 놀라운 부흥회가 이뤄지도록 느헤미야는 총체적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이렇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준비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어우러져서요.

복음 제시
9.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만 복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에도 복음이 흘러넘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발견했어요.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구약성경을 다시 읽으니 복음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편지-바울서신-에서 그가 발견한 복음 이야기를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밝혀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은혜이고 복음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깨닫고 회개할 때 복음을 알고 누릴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수문 앞 광장 부흥회는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잘 전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는 빛과 같습니다. 말씀 앞에 마음의 문을 열 때, 우리의 어두운 곳이 밝혀지고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느헤미야의 백성들에게도 그 빛이 임했습니다. 오늘 우리 가정에도 그 빛이 들어오기를 소망합니다.

기대
9. 설날 명절 연휴입니다.
명절 아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성경 한 장을 읽는 모습은 어떨까요? 우리가 한 해 동안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수문 앞 광장이 될 것입니다.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들이 예배를 드릴 때,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누리는 시작이에요.
어떤 분은 성경을 읽으나 10-20%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도 성경을 읽고 앱으로 들으라고 권합니다. 80-90% 또는 100%가 들리는 것은 그만큼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최근에 한 달 20일 정도 이내로 성경 통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통독만 하지 않고 묵상과 순종을 위해 엄청 노력합니다.

그때 이번에 스리랑카 선교지에서 신학강의와 부흥회를 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이 깨닫게 하시고 마음을 열고 강의와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고, 각종 질병이 낫고, 무릎과 다리에 고통이 있는 분이 나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예고해주셨는데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귀신에 시달리는 자매들이 부흥회 후 따로 기도하여 축사가 이뤄졌고, 그 자매들의 어머니는 다음 날 부흥회 후 딸들과 함께 따로 기도하는데 자기는 팔이 뒤틀렸는데 기도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할 때 하나님께서 즉석에서 고쳐주셨습니다. 참된 부흥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시작됩니다.
이번 명절 예배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들리도록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게 하소서. 이 시간 기도합니다.

- 목사 신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