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좋은 설교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롬9:9-33) 갈등 1. 한 토기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된 작업장에서 진흙을 빚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ree610 2025. 1. 6. 11:31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롬9:9-33)

갈등
1. 한 토기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된 작업장에서 진흙을 빚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의 손은 거칠고 작업장은 흙먼지로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은 항상 따뜻했어요. 그는 흙덩어리를 손에 들고 말했습니다.‘이 진흙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빚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내가 이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기대가 된다.’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흙은 새로운 형태로 빚어졌습니다. 어떤 흙은 화려한 그릇이 되었고, 어떤 흙은 평범한 물 항아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그릇이든 특별했습니다.‘내가 만든 모든 작품은 나의 의도와 계획으로 만들어졌어. 누구를 위한 그릇이든, 그 쓰임은 내가 정하는 거야.’ 한 손님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왜 어떤 그릇은 화려하고, 어떤 것은 그저 물을 담는 항아리죠? 공평하지 않은 것 같군요.’토기장이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이 진흙은 내 손 안에 있습니다. 나는 흙을 빚는 자이고, 흙은 내 손에 맡겨진 도구일 뿐이오.
하지만 모든 그릇은 나의 계획 안에서 중요한 쓰임을 받도록 만들어진다오. 그릇이 화려하든, 평범하든, 나는 내 손으로 만든 모든 작품을 사랑하오.’이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흙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안에서 빚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르게 일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야곱으로, 또 어떤 사람은 에서로 쓰십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계획안에 사랑과 긍휼을 담고 계십니다.

2. 로마서 9-11장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요. 3절,“나의 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아무나 말할 수 없는 참사랑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원조상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아브라함-이삭-야곱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약속이라는 말로 오늘 본문을 시작합니다. 9절,“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앞에 8절에서 바울은 육신이 자녀와 약속의 자녀를 구분했습니다.

육신(혈통)의 자녀는 하가를 통해서 낳은 이스마엘이고, 약속의 자녀는 사라를 통해 낳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별빛은 희미해졌고, 마음속 불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그들의 불신은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이라는 문제로 이어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특이한 면이 있어요. 에서와 야곱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12-13절,“리브가에게 이르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창25:23, 말1:2-3)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처럼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갈등 심화
3. 답하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14-15절,“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바울이 출33:19을 인용해서 답했어요.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 이야기입니다. 이해하기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나아가 18절,“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출애굽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긍휼히 여기셨고, 애굽의 바로왕은 완악하게 하셨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이 불의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비유를 한 가지 소개했습니다. 20-21절,“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으냐 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에 피조물인 우리가 반문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고 바울이 답했어요.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귀히 쓰는 그릇처럼, 어떤 이는 천히 쓰는 그릇처럼 사용하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호세아와 이사야 말씀을 인용했어요. 먼저 호1:10을 인용하며 25-26절,“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배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향한 사랑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방인들을 사랑하시고 내 백성이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게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1:9과 28:16을 인용해서 27-29절,“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모두 구원받지 못한다. 혈통을 통한 구원은 없다. 이스라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오직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 남은 자는 씨를 남겨두신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은 결국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실마리
5.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십니다. 그는 모든 것에서 완전하세요. 능력도, 지식도, 인격까지요. 사람들은 약속하고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부터 이삭-야곱-요셉 등 4대에 걸쳐-족장 시대-약속을 주셨어요. 사라를 통해서 자녀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 부부는 그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질 때 무엇을 보십니까? 사라처럼 상황을 보시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믿으시나요?

이삭에게는 둘째 아들 야곱이 첫째 아들, 에서 대신에 장자-상속자 될 것이다. 그러면 이삭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불러서 장차 축복을 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원조상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했다가 엄청난 화를 자초했습니다. 쓸데없이 이스마엘을 낳았고, 에서에게 장자축복을 하겠다고 했다가 리브가가 야곱을 변장시켜 에서처럼 이삭에게 장차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리브가 때문에 20년 동안 두 아들이 원수가 되게 만들었어요. 야곱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정신을 차리고 요셉의 두 아들 가운데 둘째 에브라임을 오른손으로, 첫째 므낫세를 왼손으로 어긋맞게 축복했습니다. 요셉이 항의했지만, 나도 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처럼 그의 주권을 의미했습니다.

6.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 왕정 시대 황제의 권위와 비슷합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권한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에 대해서, 야곱과 에서 이야기, 이스라엘과 애굽의 바로왕 이야기를 소개했어요. 하나님은 야곱과 이스라엘은 선택하시고 사랑하셨지만, 에서와 바로왕은 미워하시고 버리셨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는 토기장이 비유를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토기장이가 귀히 쓸 것과 천히 쓸 것을 만드는데 저작권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창조주로서 그럴 권한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세상 황제의 권한-선택과 주권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16절, 오직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구약 성경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이나 반복해서 읽으며 복음을 정리했습니다. 바울의 탁월한 복음 이해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그가 직접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서-성령님의 조명이 함께 하면서요.ㅈ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에는 긍휼하심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호세아와 이사야를 통해서요.

7. 호세아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들도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셨습니다. 한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버려진 집과 같았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은 문을 열고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내 집에 와라. 이제 너희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라는 메시지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가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신약 시대에 그대로 성취되었고, 오늘 우리도 누리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말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역사에 없어져야 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들을 두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존하고 믿음을 지키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바다의 모래처럼 많았던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은 남은 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남은 자들은 마치 황폐한 땅 위에서 새싹이 자라는 것처럼, 소망의 씨앗이 되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역사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는 것이 중요함을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의 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 제시
8. 사도 바울은 30-33절에서 복음을 정리해주었습니다.
먼저 이방인들은 30절,“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이방인들은 본래 의를 얻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그들이 의를 얻은 것은 믿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31-32절,“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의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의를 얻었는데, 유대인들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다가 의를 얻지 못했다고 바울이 지적했어요.

33절,“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이 말씀은 바울이 사8:14, 28:16을 인용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이사야를 인용하며 복음이 무엇인지 바울이 확실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길 가운데 놓인 바위와 같으셨습니다. 그 바위를 믿고 발을 딛는 자들은 새로운 길로 나아갔지만, 그 바위를 거부한 자들은 걸려 넘어졌습니다.
걸림돌과 반석은 똑같은 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걸림돌입니까, 아니면 구원의 반석입니까?

기대
9. 신년 주일입니다. 새해 우리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시작을 잘 해야 합니다. 새해는 마치 지도 한 장과 같습니다. 지도는 길을 알려주지만, 믿고 따라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도이며, 그 지도 위에 하나님은 '긍휼'이라는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다리를 믿음으로 건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갔습니다. 한 사람은 길이 잘 포장된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가다가 목적지를 잃었어요. 그의 친구는 길이 좋지 않아도 지도를 따라가며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새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안내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그의 말씀을 따라 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이 그의 뜻대로 일하시지만,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언제나 잊지 맙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길 아래 빚어진 그릇이라고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내 방식대로 흙처럼 흩어지고 있진 않으신가요? 이 한 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그분이 빚으시는 삶을 신뢰하며 걸어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거친 표면이 있습니까? 균열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빚어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한 해를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해주시도록 다같이 기도합니다.

- 신수일 목사 (포항 빛내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