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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15~23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Ⅲ. 엘리사를 잡으러 온 군대를 물리침

ree610 2024. 9. 12. 17:03

열왕기하 6:15~23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Ⅲ. 엘리사를 잡으러 온 군대를 물리침 (왕하 6:13-23)

1.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고자 큰 군대를 보냄(13,14)
아람 왕은 엘리사가 사마리아에서 멀지 않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3절). 그리하여 많은 군사를 그곳으로 보내어 밤에 그를 공격하여 죽이든지 사로잡아 오라고 하였다(14절). 즉 그를 급습하여 잡고자 하였던 것이다.

2. 사환을 안심케 함(15-17)
  (1) 그 사환은 대경 실색하였다. 그는 곧바로 엘리사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말해 주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15절). "우리는 이제 망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싸울 수도 달아날 수도 없이 꼼짝없이 저들의 손에 죽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주인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면, 즉 그 주인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큰 일들을 행하셨으며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손에 죽게 하지는 않으시라는 것을 생각했다면 이와 같이 어찌 할 바를 몰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선지자는 그의 사환을 어떻게 진정시켰는가

   1)말로써 조정시켰다. 엘리사가 그에게 말한 것은 밖으로는 놀람, 안으로는 두려움을 지닌 모든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에게 말한 것이다(16절).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고통과 혼란을 수반하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희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즉 우리를 보호하는 자가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는 자보다 많다. 천사들은 무수히 많으며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분이시다. 두려움의 원인을 과대 평가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명확하고 위대하고 고귀한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않다(롬8:31).

   2)환상을 보여 줌으로 진정시켰다(17절).
  사환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는 그의 눈을 열게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기도했으며 응답을 얻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17절). 그의 육신의 눈은 열려 있었으나 그것으로는 위험을 볼뿐이었다. `여호와여, 그의 믿음의 눈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보호를 받고 있는지 알게 하소서.`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될 때 우리의 두려움은 잠잠케 될 것이다.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 가장 놀라기가 쉬운 법이다. 우리가 하늘의 권능과 주권을 명확하게 보면 볼수록 우리는 이 땅의 재난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3. 아람 군대의 치욕스런 패배(18-23)
  (1)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즉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전에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과 지형을 알 수 없도록 시력이 약화되어 버린 것이었다(18절). 그들은 혼미한 상태에서 자기들을 안내해 주는 이 사람이 엘리사인지, 그리고 이곳이 도단인지 알지 못하였다.

  (2) 그들이 이와 같이 방황하고 혼동 중에 있을 때에 엘리사는 그들에게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게 해준다며 사마리아로 데리고 갔다(19절). 이는 그 길이 아니요 그 성도 아니니. 이것은 엘리사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3)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데리고 와서는 하나님께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는 자기들의 있는 곳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20절). 그들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아마도 그곳에는 그들 모두를 죽이기에 충분한, 혹은 모두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군대가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4) 엘리사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권능으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도 감화받은 자임을 드러내었다.

   1)엘리사는 자신이 가져다 준 위험에서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즉 자신의 능력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21절). 이스라엘 왕은 마치 그들을 죽이기를 원한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내가 치리이까.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에게 손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확실히 깨닫게 하고 수치를 당케 하기 위한 것이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22절). 그들은 왕의 포로들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포로이며 선지자의 포로인 것이다. 그러므로 왕은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2) 엘리사는 그들에게 음식을 주도록 하였다. 즉 그는 왕에게 그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평안히 돌아가게 해주라고 명하였으며 그대로 행해졌다(23절).  왕이 선지자에게 그와 같이 순종했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이는 그의 의도와는 반대였으며 이익이 되는 것을 포기한 것이었다(삼상 24:19). 그는 엘리사에게 복종하여 그들을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었다. 이는 그의 왕궁과 나라 그리고 엘리사의 위신을 생각해서였다.

4. 이 일의 선한 결과(23)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적에 대한 가장 영광스런 승리는 적을 친구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열왕기하 6장17절 / 개역개정)

** 내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 엘리사와 수종드는 자(6:14-19)
엘리사는 기도하는 자로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봅니다. 반면 수종드는 자는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여 인간적인 생각으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초월하는 영적인 세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치를 두지 말라는 의미입니다(요일2:15).

* 불말과 불병거(6:17)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현현과 직접적인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늘 성도와 함께하시며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산성이요, 요새요, 방패이십니다(시18:2). 그러기에 성도의 삶은 주님 안에서 안전한 삶입니다.

* 엘리사와 이스라엘 왕(6:20-23)
엘리사는 포로들을 살려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모두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는 개인적인 감정은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눈이 어두워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 내 눈을 열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