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4:16-23 블레셋 진영의 소동
당나라의 재상 위정은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할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나단과 같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
11/2(목) 삼상 14:24-30 사울의 서약과 요나단의 실수
자신의 욕망이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는 ‘갑질’이 그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인성의 어두운 면이 표출된 것으로 사회악의 근원이 됩니다.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명령한 신앙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사울의 명령처럼 하나님이 일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행한 일에 자기의 명예나 능력을 드러내려는 그릇된 동기가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11/3(금) 삼상 14:31-37 사울이 처음 단을 쌓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장자> 추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 남의 말을 멀리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말만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인 이들입니다. 식견이 좁은 사람 또한 짧은 식견으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더 나은 학문을 쌓을 수 없습니다. 사울처럼 백성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단을 쌓는 외면적인 형식과 남의 죄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가 우선입니다.
11/4(토) 삼상 14:38-46 요나단의 죄와 백성들의 변호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각자의 타고난 개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점으로 취급하는 순간 상처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최일도 목사)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내 의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모든 문제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대방과 나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것이지 틀린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님을 기억하세요.
11/5(일) 삼상 14:47-52 사울의 업적과 가계
도덕경에 도를 깨친 성인은 스스로를 잘 알지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만 귀하다고 내세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중심에 놓고 고려합니다. 자신이 문제를 앞두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보다는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왕과 같은 사람인지,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과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인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1/6(월) 삼상 15:1-9 사울이 아말렉을 치다
웃음은 평생 먹는 약이고, 사랑은 상비약이며, 믿음은 수시로 들이마시는 산소라고 합니다. 아무 공로 없이 댓가 없이 주어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순간 순간 믿음을 확증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승리하신 주님을 따라갑시다. 나에게 능력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도 꼭 기억하면서요.
11/7(화) 삼상 15:10-19 사무엘의 책망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만 명, 그 일을 시작하는 사람 백 명, 그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사람 한 명, 나카타니 아키히로<행복어 사전>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매우 많으나 시작하는 사람은 극히 적고 계속 꾸준히 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게 됩니다.
11/8(수) 삼상 15:20-27 사울의 변명과 후회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 즉 청종 그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청종’하는 습관은 중요합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아주 무섭게 그 행동에 익어서 굳어진 행동으로, 한번 길들여진 것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청종하는 습관을 들여서 어떤 말씀이라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합니다.
11/9(목) 삼상 15:28-35 사무엘의 예언 후 사울과 헤어짐
부모님께 순종하고 효도하고자 하는 우리 아이들. 어떻게 하면 엄마, 아빠에게 좀 더 잘 할까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내 마음에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나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살게 됩니다.
11/10(금) 삼상 16:1-10 이새의 아들들
사람들은 보기에 좋은 것을 항상 바라보고 쫓으며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소유하고 또 소유해도 계속해서 부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들이 보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 마음, 중심을 보시지만 우리들은 겉의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보시는 속, 마음, 중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1/11(토) 삼상 16:11-13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
리더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리더가 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오늘 다윗은 모두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주의 영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리더로서 다른 누구도 아닌 성령님이 준비시키실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직분과 일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11/12(주일) 삼상 16:14-23 사울의 부름을 받은 다윗
우리와 주님이 함께하시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면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주님의 자녀로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11/13(월) 삼상 17:1-11 골리앗의 도전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는, 세상이 아무리 높고 웅장하며, 두렵고 무섭다하여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벗어나 혼자 있을 때, 이전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세상의 작은 일에서도 공포와 불안이 엄습합니다. 이제껏 자신의 귀를 쟁쟁하게 울리던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방패시라” 는 성경구절은 그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벗어나 혼자 있을 때..
11/14(화) 삼상 17:12-19 전쟁에 나간 이새의 아들들
고역스런 상황은 40일이 아니라 4달, 4달이 아니라 4년, 4년이 아니라 40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고통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조석으로 찾아오는 그 고통스런 상황. 우리도 타개할 수 있습니다.
11/15(수) 삼상 17:20-30 전쟁터에 나타난 다윗
현실의 급박하고 무서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나요? 그 생각은 심사숙고한 후 내리는 결론은 아니며, 상식과 지성을 총동원하고 의지력을 발휘하여 내리는 결단은 아닌가요? 외로운 초원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어두운 빈 들에서 짐승을 쫓아내며 하나님과 동행하던 자, 그분을 완전히 신뢰하던 자. 그런 자라면 현실의 급박하고 무서운 상황 앞에서도 심사숙고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선포할 뿐입니다.
11/16(목) 삼상 17:31-40 다윗의 신앙고백과 출전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과 신뢰. 그런 자에게 갑옷과 투구 같은 인간의 방식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데 있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참된 구원은 병력의 많고 적음이나 방백을 의지함이 아닌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겹겹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갑옷과 투구는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11/17(금) 삼상 17:41-47 다윗과 골리앗의 논쟁 하나님께 속한 전쟁 선언
두 명의 아이들이 장터에서 서로 마주보고 싸움을 합니다. 애들끼리 싸움을 하던 중, 한 아이가 자기 뒤에 서있던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이 대신 아버지가 서는 순간,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싸움이 성립조차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이 상대해야 했던 실체.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해내고 있는 싸움의 본질입니다.
11/18(토) 삼상 17:48-58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은 선하시다“ 는 진리입니다. 비록 우리에겐 골리앗을 물리치는 것 같은 즉각적이고 스펙터클한 기적은 없을지 몰라도 선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비록 그것이 때로는 기나긴 침묵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있거든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그 침묵을 견뎌낼 수 있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견뎌낼 수 없다면 이미 손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11/19(일) 삼상 18:1-5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
‘가장 좋은 거울은 오랜 벗이다.’ 영국의 시인이며 목사인 조지 허버트의 말입니다. 우리들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이야말로 나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일입니다. 오래 사귄 친구는 내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내 속마음을 알아챕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내 참모습을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11/20(월) 삼상 18:6-16 다윗을 시기하고 두려워하는 사울
시기와 질투가 한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면 모든 것이 불건전하게 됩니다. 그의 말이 불건전하게 되고 그의 표정이 불건전하게 되고 그의 생각과 행동이 불건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 볼 때 일단 말을 곱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 저변에는 이 시기와 질투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말을 하는데서부터 비롯됩니다.
11/21(화) 삼상 18:17-25 사울의 악한 계략
시기와 질투의 원인은 바르지 못한 자아개념을 가지고 건전치 못한 비교의식에서 생기게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조금 나은 것이 발견되면 금방 교만해져서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되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조금모자라는 것이 발견되면 열등의식에 빠지고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험담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질투로 인해서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험담을 하고 깎아 내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11/22(수) 삼상 18:26-30 다윗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에 지배당하여 다윗을 살인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어리석음과 악한 생각에 빠져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악이 자신을 이끌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고 늘 성령의 돌보심을 구하는 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깨닫게 합니다.
11/23(목) 삼상 19:1-7 다윗을 비호하는 요나단
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과 관계와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정상적일 때는 우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나가게 되면 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 때 보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잘 나갈 때 더 하나님에게 집중하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11/24(금) 삼상 19:8-17 다윗을 죽이려하는 사울
다윗은 하나님을 알고 배우기 위해서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연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사업에 실패를 하고, 또는 병들어 신앙이 회복이 되었다면, 그가 지불한 수업료는 결코 비싼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순간의 것을 잃고 영원한 것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11/25(토) 삼상 19:18-24 다윗의 피신과 사울의 예언
미워해야 할 이유도 없이 괜히 악한 마음을 가지고 괴롭게 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과 맞서지 말고 도망쳐야 합니다.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도망을 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이기심을 볼 것입니다. 또한 이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11/26(일) 삼상 20:1-11 다윗의 소원
나와 함께하는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서로 한 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한 몸으로 맺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 자기 몸과 같이 여기며 사랑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어려운 지체를 외면하고 돕지 않는다면 진정한 한 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자기 몸과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11/27(월) 삼상 20:12-23 다윗과 요나단의 밀약
우리는 나에게 잘하는 사람, 사랑 받을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대가없이 받은 자는 그 사랑 안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11/28(화) 삼상 20:24-34 다윗에 대한 사울의 살해의지 확인
불의를 볼 때 어떠한 태도를 보이십니까? 못 본 척 지나가십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룩함을 얻은 성도는 불의와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불의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하며 죄와 싸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불의로부터 지켜야합니다. 하지만 관행이나 명목이라는 이유로 불법 또는 불의와 손을 붙잡게 하는 세상의 유혹들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쉽게 범할 수 있는 불의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버리도록 오늘도 말씀으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11/29(수) 삼상 20:35-42 요나단과 작별하는 다윗
공동체 안에서 지체들을 서로 돌아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지체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로 세우신 영원한 새 언약 안에 들어와 그 안에 한 몸이 되었음을 알고 믿고 있습니까? 만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지체들과 영원히 한 몸이 되었음을 믿는다면 그들을 향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자신이 다른 지체들을 향해 사랑과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나를 살펴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11/30(목) 삼상 21:1-9 진성병과 골리앗의 검을 취하는 다윗
이 나라의 새 지도자는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갈까요? 누군가의 한줄 기도에서 그 답을 찾고 싶습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이 나라와 국민들을 사랑하고 불안한 이 나라를 든든히 세워갈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우리 아이가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길 소망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먼저 기도하기보다 골리앗의 칼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믿음을 먼저 구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시다.
12/1(금) 삼상 21:10-15 거짓 광기를 부리는 다윗
마음은 우리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만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비결은 먼저 마음을 주어야만 합니다.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최대한 낮추고 최대한 섬기는 자세로 겸손히 다가가야 합니다.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할 때 다윗의 방황도 끝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 주권에서 하나님 주권으로 바뀌는 영적인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12/2(토) 삼상 22:1-5 피신하는 다윗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올바른 관계가 있어야 그 열려진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자 이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다윗의 순종처럼 내 생각과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다짐합시다.
12/3(일) 삼상 22:6-10 신하들을 책망하는 사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격려는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아내의 격려 한 마디가 ‘자살’을 결심한 남편에게 ‘살자’는 용기를 심어주듯이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은 끊임없는 격려입니다. 오늘도 당신은 만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와 격려를 해 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2/4(월) 삼상 22:11-23 수난을 당한 제사장의 성읍
감사는 계절도 시간도 없습니다. 감사는 어느 곳에서든 캐낼 수 있는 마음의 따뜻한 생각의 선물입니다.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감사를 캐어내면 감사가 되고 불평을 캐어내면 불평이 나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고난이 있어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봅시다. 감사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해석입니다. 부족하여도 감사를 잉태하는 자는 감사를 낳고 풍족하여도 불평을 잉태한 자는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크기이며 믿음의 크기입니다.
12/5(화) 삼상 23:1-5 그일라 거민을 구원하는 다윗
은혜란 하나님이 필요함을 어린아이처럼 순전히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요 기쁨으로 완전히 의존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요 즐거운 거지인 우리는 의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상처와 흠집은 은혜가 흘러드는 틈입니다. 불완전하고 모자라고 연약하고 유한한 것이 이 땅을 사는 인간의 운명이요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중력의 힘을 벗어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12/6(수) 삼상 23:6-14 그일라 거민의 배반
파스칼의 우화에서 마음 착한 어떤 선원이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겨우 미지의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섬 주민들은 선원을 보고 행방불명되었던 추장이 돌아왔다며 기뻐했습니다. 선원의 얼굴이 그 추장과 똑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원은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 곧 양심의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권력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심의 소리를 더욱 무시하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섬 사람들을 엄청나게 학대하는 폭군이 되어 버렸습니다.
12/7(목) 삼상 23:15-23 십 사람의 밀고
1813년 인류 최초로 증기기관차가 철로 위를 달렸습니다. 영국의 발명가 스티븐슨의 ‘땀과 눈물의 작품’ 이었습니다. 아버지처럼 탄광 화부였던 그의 나이 스무살이 되도록 글자를 깨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증기기관차까지 발명하게 된 것은 첫 아이를 출산하다 죽은 아내 핸더슨의 공로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헌신적으로 글자와 산수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스티븐슨은 흰 연기를 뿜으며 가관차가 달리던 날 ‘가슴에 살아있는’ 아내에게 중얼 거렸습니다. “여보 당신의 꿈이 달리고 있다오”
12/8(금) 삼상 23:24-29 엔게디 요새로 피신하는 다윗
제31회 인촌상 수상자 영광의 얼굴들 중 한 분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님은 “중앙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을 5,6년 동안 가까이 뵈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중 중요한 게 전체를 위해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밀어주는 것과 편 가르기를 경계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아무나 잘 안되는데 왜 인촌 선생은 됐느냐, 애국심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그렇고요.”라고 회고하셨습니다. 본인 역시 연세대에서 보직을 맡아 달라는 총장의 요청에도 다른 교수를 추천하면서 자신은 사양하셨습니다. “조용히 나의 길 걸었을 뿐 별 다른 업적이 없는데 왜 나에게 상이 돌아왔는지.” 그의 겸손한 수상 소감입니다.
12/9(토) 삼상 24:1-7 다윗이 사울을 살려 주다
독약인 줄 모르고 먹었다고 해서 그 독약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고 먹어도 독약을 먹었다면 죽음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른 신과 똑같이 섬기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선지자가 외쳐도 듣지 않았고 오직 자기들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멸망이었습니다. 신앙적 나태, 도덕적 타락 등 이 모든 것이 옳지 않은 것인 줄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묵인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과 성령의 음성을 통하여 우리를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나중에 몰랐다고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2/10(일) 삼상 24:8-15 사울을 향한 다윗의 호소
땀 흘려 훈련해야하는 군대의 사병들은 지휘의 책임을 진 장교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장교들에게는 사병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지휘의 책임입니다. 장교는 자신이 맡은 여러 사람을 바르게 이끌고 낙오하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거느리는 부하의 수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아지고 특권이 많아질수록 부과되는 의무와 책임은 더욱 커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인한 사람에서의 구원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있는 특권의 소유자들입니다. 당신이 받은 특권만큼 당신이 행해야 할 의무는 크고 중대한 것입니다.
12/11(월) 삼상 24:16-22 사울의 일시적 회개
극심한 생존경쟁의 세상에서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것이 진리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한 길은 서로 남을 잘 살게끔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신 예수님 같은 분도 있지않습니까!!!
12/12(화) 삼상 25:1-8 나발에게 도움을 청함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굶는 것입니다. 선식을 하거나 채식으로 바꾸거나 혹은 다른 체질로 바꾸기 위해서 기존체질의 묵은 것을 다 벗겨내야 합니다. 시골에선 양계장의 폐계를 아주 싸게 구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모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3-4일을 꼬박 굶게 합니다. 항생제와 각종 사료, 꼼짝 달싹도 못한 상태에서 알만 생산하는 생산기계가 되었던 닭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굶기는 것입니다. 그 후에 모이도 주고 풀어놓아 스스로 먹이를 구하게 합니다. 땅을 파고 벌레와 지렁이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털이 나고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곧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양계장에서 알을 더 이상 낳지 못한다고 버린 닭이 몇 년을 거뜬히 알을 낳습니다. 굶주림은 힘든 시간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살리는 고통이 있습니다.
12/13(수) 삼상 25:9-13 나발의 모욕과 다윗의 분노
인디언부족의 추장이 후계자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청년들 가운데 최종 3명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최종 시험이 주어졌는데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 앞에 있는 아주 높은 산 정상을 다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산 정상을 다녀온 3명의 청년은 추장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그래 산에 다녀온 증거를 말해 보아라” 그러자, 첫 번째 청년은 나뭇가지를 가져왔고, 두 번째 청년은 작은 돌맹이 두 개를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청년은 아무것도 없이 잔뜩 상기된 상태로 대답하길 “저는 우리 부족의 미래를 보고 왔습니다. 저 산 너머에는 아주 넓은 땅이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 부족이 그쪽으로 이주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성한 부족이 될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12/14(목) 삼상 25:14-22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
실제 미국에서 강도가 슈퍼마켓에 들어갔을 때 ‘어떤 곳에서 더 많은 강도질을 하는가?’ 하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은 일하는 종업원이 많이 웃는 곳에서는 총과 칼을 꺼내지 않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업원이 많이 웃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속에서 나는 저 사람하고 친하다고 느낀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칼을 꺼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웃지 않고 무표정하고 무뚝뚝하게 되면 나와 아무런 관계없고, 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칼과 총을 꺼내서 훔치기도 하고 강도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태도와 모습으로 가족과 이웃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2/15(금) 삼상 25:23-31 용서를 구하는 아비가일
사람의 감정과 말의 힘을 알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봉지에 입을 대고 많이 웃고 감사하는 느낌과 마음으로 말하고 그 봉지 안에 모기를 집어넣으면 아주 오래 사는데, 화를 냈던 입김과 그 공기가 들어갔던 봉지에는 모기를 넣자마자 곧 죽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입의 말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흙이 생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의 말에도 힘이 있습니다. 자녀를 살리고, 남편과 아내를 살리며, 이웃을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어떤 말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까?
12/16(토) 삼상 25:32-38 노를 푸는 다윗
매일 새벽마다 호수에서 배를 타며 명상을 즐기는 수도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명상 중에 어떤 배가 쿵 부딪혔습니다. 수도승이 화가 나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빈 배였습니다. 아무도 타지 않았던 배가 그냥 떠내려 오면서 부딪힌 것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화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감정들 중에서 분노라는 감정은 인간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화나게 하는 그 상대가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화가 가라앉거나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화를 키우거나 만들어내는 분노는 없는지 생각해 봅니다.
12/17(일) 삼상 25:39-44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
그리스에 유명한 애꾸눈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 장군은 화가를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들이 그려낸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양쪽 눈이 모두 성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장군은 애꾸눈의 흉한 자기 초상화도, 성한 모습의 초상화도 모두 못마땅했습니다. 그때 장군에게 어리고 이름도 없는 화가가 타나나서 장군의 초상화를 그려보겠다고 했습니다. 장군은 못 미더웠지만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장군은 이 무명화가의 초상화를 보고 매우 만족스러워 해주었습니다. 그 화가는 장군의 성한 눈이 있는 옆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12/18(월) 삼상 26:1-12 다윗이 또 사울을 살려주다
12/21(목) 삼상 27:1-7 블레셋으로 도피한 다윗
12/22(금) 삼상 27:8-28:2 다윗을 신임하는 아기스
12/23(토) 삼상 28:3-14 신접한 여인을 찾는 사울
12/24(일) 삼상 28:15-25 절망에 빠진 사울
12/25(월) 삼상 29:1-5 블레셋인 들이 다윗의 출전거부
12/26(화) 삼상 29:6-11 위기를 모면하는 다윗
12/27(수) 삼상 30:1-6 시글락을 약탈한 아말렉
세상의 모든 일은 간절함의 크기만큼 이루어집니다. 간절함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최선의 자리로 안내합니다. 당신의 간절함은 무엇인가요?
12/30(토) 삼상 30:21-30 공평한 전리품 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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