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1443

여행에의 소망 - 나태주 - 그곳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네가 그리운 것이다 그곳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네가.

[여행에의 소망] - 나태주 - 그곳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네가 그리운 것이다 그곳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네가 보고 싶은 것이다 너는 하나의 장소이고 시간 빛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나라 네가 있는 그곳이 아름답다 네가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모리아/시 2024.06.22

그대 떠난 빈 자리에 - 도종환 - 그대 떠난 빈 자리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리라

[그대 떠난 빈 자리에] -도종환- 그대 떠난 빈 자리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리라 천둥과 비 오는 소리 다 지나고도 이렇게 젖어 있는 마음 위로 눈부시게 환한 모시 저고리 차려 입고 희디흰 구름처럼 오리라 가을 겨울 다 가고 여름이 오면 접시꽃 한 송이 하얗게 머리에 꽂고 웃으며 웃으며 내게 오리라 그대 떠난 빈 자리 절망의 무거운 발자국 수없이 지나가고 막막하던 납빛 하늘 위로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걸음으로 꽃모자 흔들며 기다리던 당신은 오리라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 서로 살아 있다 믿으며 살아 있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그래서 영원하다 믿으며 그대 떠난 빈 자리 그토록 오래 고인 빗물 위로 파아란 하늘은 다시 떠오리라.

모리아/시 2024.06.21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김재진- 갑자기 모든 것 낯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김재진- 갑자기 모든 것 낯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 어디에도 메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만월)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모리아/시 2024.06.20

늘, 혹은 때때로 - 조병화 -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

[늘, 혹은 때때로]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 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 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모리아/시 2024.06.19

능소화 - 이원규 -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손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모리아/시 2024.06.18

마지막 사랑에게 - 김종원 - 나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주름진 술잔을 들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사랑에게] -김종원- 나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주름진 술잔을 들고 있을 것이다 훅 불면 사라질 만치 늙어 삶이 가벼워진 어느 날 비닐 막 같은 살갗을 매만지며 나는 왜 너를 간직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을까를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은 더 이상 사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 그리하여 너는 나에게 끔찍한 존재다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 할 기회가 없었음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흔적도 없이 지나가는 내 삶에 사선으로 한 줄 경쾌하게 그어준 너를 항상 웃으며 바라보았으리라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문이 없다며 항상 불평하던 너를 위해 나에게 통하는 모든 문을 열어두었으리라 누군가 나를 막아선다 하여도 죽어서도, 나는 살아있었으리라 너를 놓히지 않았으리라..

모리아/시 2024.06.17

귀천(歸天)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모리아/시 2024.06.16

바람소리 - 김진학 - 그대가 그리우면 두 눈을 감고 창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지 바람된 너의 속삭임을 듣지

[바람소리] -김진학- 그대가 그리우면 두 눈을 감고 창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지 바람된 너의 속삭임을 듣지 만나고 헤어지는 속절없는 세상이라 해도 기다림은 늘 설렘인 것을 둘이 하나된 만남은 아름다운 해후인 것을 기다림이란 짓이겨 진해진 가슴을 째내 혼자인 시간 위에 뿌리는 그리움인 것을 아파서 좋은 눈물인 것을 그대가 그리우면 두 눈을 감고 창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지 바람된 너의 속삭임을 듣지

모리아/시 2024.06.15

당신과 나의 사랑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 이채 - 당신과 나의 사랑이 바람처럼 허무한 것이라면 새소리 호젓한 숲 속 잎과 잎 사이

[당신과 나의 사랑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채- 당신과 나의 사랑이 바람처럼 허무한 것이라면 새소리 호젓한 숲 속 잎과 잎 사이 고요히 앉았다가 나무의 연인이 되어 머물게 하십시오 당신과 나의 사랑이 빗물처럼 외로운 것이라면 강으로 난 길을 따라 빗물로 흐르고 눈물로 흘러 그 강물의 고요로 잠들게 하십시오 당신과 나의 사랑이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 빛이 바래 얇아지지 않게 하고 그 향기가 말라 시들지 않게 하여 다시 없는 찬란한 꽃으로 영원하십시오 당신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만 가지 얼굴이 있듯이 만 가지 사랑이 있고 만 가지 이별이 있고 만 가지 아픔이 있습니다 비록 만 가지 아픔일지라도 강물처럼 깊고 숲처럼 고요한 한 가지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다면 바람의 멋 같고 물의 맛 같은 자유..

모리아/시 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