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정 예배 57

1월 27일 ~ 2월 1일 가정 예배

마음 지키기본문 : 빌 4:6~7찬송 : 289장 벌써 2025년의 첫달인 1월이 거의 지나 갔다. 이맘 때면 새해 첫날 마음먹었던 것이 많이 흐트러진다."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그만큼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 지키기는 단순히 우리의 의지나 결단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우리 마음 지키기는 근본적으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지키기는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분이 우리 마음을 온전히 주장하시게 하는 것, 그것이 본질이다.바울..

1월 20일 ~25일 가정 예배

분별하여 새롭게본문 : 롬 12:1~3찬송 : 289장 생활관의 구조 변경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기존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원리다. 깨고, 부수고, 채워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쾌적한 환경을 선물했다.이미 깨끗하게 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까?첫째, 우리의 영적 현주소를 정확하게 알자.우리의 옛 거주소는 '사망동'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믿어진 사람들은 '생명동'으로 입주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요 5:24). 바로 주님께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값으로 지불하여 얻어진 생명의 삶을 살고 있다(롬 5:10).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변화, 전과 후의 삶..

1월 13일 ~ 18일 가정예배

- 존경받는 성도본문 : 마 13:53~58찬송 : 420장 요즘 기독교에 대한 사회에서의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은 사회를 향해 섬김 헌신 심지어 순교까지 당하며 신앙을 지켜온 길이었다. 오늘날 성도의 모습 역시 이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실천하자.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셔서도 회당에서 복음을 가르치셨음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시고 오히려 배척을 받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명이신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망설이지 않고 감당하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따라서 때로는 배척하는 자리에서 복음 전파에 힘쓸 때 결과적으로 존경받는..

1월 6~11일 가정예배

하나님 손에 붙들린 왕관본문 : 사 61:10~62:3찬송 : 120장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그 뒤에 반드시 구원의 과정 속에서 변화가 뒤따라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구원받은 신도라면서 반드시 따라와야 할 변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에서 구원받아 예루살렘을 돌아온 백성들의 경우 그들이 맛본 구원의 기쁨은 잠시였고 변화없는 좌절과 낙심에 빠질 위험에 있었다. 본문은 바벨론 포로민에서 귀환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바벨론 포로 이후 B.C. 520년 경이며, 예언의 말씀이 들리는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그 백성들의 입에는..

12월 30일~1월 4일 가정 예배

처음처럼본문 : 계 2:1~7찬송 : 463장 내년에 교회 비전이 '처음처럼'이라 했더니 많은 성도들이 "와~"하고 웃는다.목사지만 그들이 무엇을 연상하는지 그쯤은 잘 안다. 그러나 나의 뜻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처음 받은 은혜, 구원의 감동과 감격과 기쁨을, 그리고 그때의 결심과 헌신과 열심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초등학교 첫 입학, 새내기 대학생, 첫 직장의 출근, 첫사랑, 결혼식장의 서약, 첫 아이의 출생 등을 기억해 보자.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렘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그 처음 마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까?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과 영성과 열심이 처음처럼 주욱 이어갔으면, 혹여 잃었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돌이켜 보면, 예수님을 ..

12월 23일~28일 가정 예배

성탄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본문 : 눅 2:8~14찬송 : 117장"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그러기에 늘 새로운 뉴스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듣는 많은 소식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10절). 시공을 초월한, 인종도 남녀 노유도 빈부귀천의 차이도 없이 온 백성, 곧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다.왜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소식일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되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천..

12월 16일~21일 가정 예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본문 : 롬 1:16~17찬송 : 542장하나님의 자녀들은 복음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복음을 자랑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종교인일 뿐 그 삶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자.첫째,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구원은 여호와로부터이다.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주셨다. 구원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이자 사랑이고, 하나님 말씀으로, 하..

12월 9일~14일 가정 예배

믿음으로 살며, 사랑하며 사는본문 : 요 21:15~19찬송 : 435장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이렇게 세 번씩이나 물으셨을까?주님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거듭해서 지었던 죄를 회복시키기 전에 새로운 믿음의 고백을 이끌어 내시고자 하셨다. "네가 나를 믿느냐? 베드로 회개했느냐? 나를 고백할 준비가 되었느냐? 이제 나에게 순종하겠느냐"라고 물으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저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물음은 베드로에게도 오늘 나에게도 가장 날카롭고 의미심장한 물음이다.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단순히 세례받은 남자나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주일이면 형식적으로 교회..

12월 2~7일 가정 예배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본문 : 사 11:1~10찬송 : 488장성탄절을 앞두고 4주간의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대강절은 교회력의 시작인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기다리는 일로부터 시작됨을 암시한다.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또 그를 통해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모든 사람은 희망을 갖고 산다. 그들이 희망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약속되어진 것들이 아니다. 기대 혹은 막연한 요구, 요행들이다. 반면에 이미 약속되어진 것들은 믿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기다리지도 않는 경우를 본다. 약속이란 매우 중요한..

11월 25일~30일 가정 예배

데라와 나본문: 창 12:1~9찬송가: 150장장대영 목사/안강영락교회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있는 명령은 몇 개인가? 우리말 번역은 '떠나라'와 '가라'의 두 개 명령처럼 읽히고 있지만, 원문에서 명령어(동사)는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정황을 고려하면 '떠나라'보다는 '가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것이 이 명령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거기(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그곳)로 가려면 여기(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를 떠나야 하지만, 여기를 떠난다고 해서 다 거기로 '가는'것은 아니다. 여기를 떠난다 하더라도 거기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