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크라나흐, 수도사 루터, 1520년, 판화,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서양 중세 천년을 끝장낸 것은 사실 르네상스보다는 종교개혁이었다. 르네상스는 소수 엘리트로부터 시작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확산하였지만, 종교개혁은 상층부에서부터 바닥 민중의 사소한 삶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서양 중세는 기독교 사회였고, 기독교의 변화는 그 속에서 호흡하던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 토론 주제를 게시한 것을 종교개혁의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보지만, 사실 혁명이란 거대한 흐름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장면을 후대가 선정하는 것이다. 루터 이전에도 이미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순교한 존 위클리프나 얀 후스가 있었다. 이들은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선구자들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니어서 루터 종교개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왜 하필 루터였는가?
루터가 천년 동안 이어온 공고한 체제를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은 구체제 안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서 엄격하게 자기를 훈련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개혁/혁명은 우리가 극복하려는 대상에 철저해야 한다. 그 안에 있어야 하고, 거기서 모순을 처절하게 경험해야 하고, 구체제의 언어와 행동을 친밀하게 활용해야만 가능하다. 우리가 넘어설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소리치는 것은 효과 없는 외침일 뿐이다. 평생 루터의 친구요 동지요 선전가였더 루카스 크라나흐가 수도사로서의 루터를 그렸다. 그리고 루터 초상 아래 라틴어로 이렇게 썼다 ; 그(루터)의 정신은 영원하며, 그의 얼굴빛은 강직하다. 루터와 그의 개혁을 500년이 넘도록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그의 성찰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거의 혁명 수준으로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우리는 기존의 한국교회 정서와 어법과 문화에 철저해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데미안/헤르만 헷세)
새로운 세계는 알 밖에서가 아니라 알 안에서부터 깨고 나와야 가능하다.
-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라틴어는 윤여삼목사님이 번역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