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하 14:1-16
<선택적, 부분적 순종은 패망의 시작점>
1. 남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1-7)
북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 이년에 남유다의 요아스왕의 아들 아마샤가 이어서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왕이 되어, 이십구 년을 다스렸다. 그는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긴 했지만, 다윗만큼은 못했고, 아버지 요아스만큼만 했다. 결국 그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백성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선왕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전통을 끝내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마샤는 왕권을 견고하게 정립하였고, 부왕을 살해한 자들을 모두 사형시켰다.(1-5)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아마샤는 모세의 율법서에 나오는 것처럼 무고한 자, 즉 처형한 신하들의 자녀는 죽이지 않았다. 그 율법에 의하면 아버지가 자녀 대신, 또한 자녀가 아버지 대신 처형되어서는 안 되고, 각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에 따라 처형되어야 하나는 법이 있었다. 아마샤는 이법에 의해 무고한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샤는 소금계곡이라는 곳에서 만 명의 에돔사람을 죽이고 셀라라는 곳을 취하고 그곳을 욕드엘이라 불렀다.
아마샤는 비록 산당을 없애지는 않았지만,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셀라를 점령하는 은혜를 입게 된다.(6-7)
2.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대치(8-11)
아마샤가 북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전령을 보내 서로 만나서 대면해 보자고 말한다. 서로 대면하자는 것이 적의를 가지고 만나자는 표현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북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아마샤를 레바논의 가시나무로, 자신은 레바몬의 백항목으로 예를 들며 자신이 아마샤보다 더 월등하고 강한 존재임을 말하며 적대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네가 오돔을 치더니 오만해진 것 같다며 왕궁에 머물러 현재의 영화나 누리라고 하며, 왜 너와 너의 왕국을 멸망시키려 하냐고 도발한다.
그러나 아마샤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은 벳세메스에게 대치하게 된다. 사실 아마샤가 이렇게 북 이스라엘을 도발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호아스가 말한 것처럼 에돔을 이긴 것에 대한 교만이었다. 우리가 막강한 에돔도 이겼으니 북 이스라엘도 충분히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교만이 그를 이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다.
3. 아마샤와 요아스의 전쟁(12-16)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유다 군은 이스라엘 군에게 패하여 모두 흩어졌다. 그 결과 이스라엘 여호아스 왕은 남유다 아마샤 왕을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예루살렘 성벽 일부가 허물어지기도 했다. 여호아스는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약탈했고, 사람들까지 포로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도 했지만, 우상숭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마샤는 전쟁에 패배하는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아마샤를 심판하시려고 이미 계획하고 계셨다. 이스라엘을 대면하여 만나려는 것을 방치하셨고, 결국 그 만남을 도발로 여긴 여호아스의 태도와 그 과정에서 생긴 전쟁을 통해 심판을 받게 되었다. 여호아스의 남은 행적과 그가 누린 권세, 그리고 아마샤 왕과 싸운 모든 일들은 이스라엘의 역대 지략에 기록되었다. 그가 죽으니 이스라엘 왕들이 묻힌 곳에 장사되었고 그의 아들은 여로보암이 이어 왕이 되었다. (15-16)
4. 삶 속으로...
부분적, 선택적 순종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판단한 범위, 유리한 범위, 이익이 되는 영역에서만 순종하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결과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의 작은 불순종이 결국 더 큰 죄의 문을 열고, 그로 인해 마주하게 될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신앙에서 작은 타협을 쉽게 허락하곤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지켜야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일부만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작은 타협이 결국 신앙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의 기준에 따른 완전한 순종이다.
이런 선택적 순종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약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순종은 처음에는 작은 불순종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 불순종은 큰 불순종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사탄에게 틈을 주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영적인 삶을 점점 더 어둡게 만든다. 순종하지 않은 영역이 우리의 약점이 되어 마침내 파멸을 부른다.
하나님은 온전한 헌신을 원하신다. 우리가 일부만 하나님께 드리거나, 그분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매우 불경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시니 일부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에서 타협 없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작은 영역을 남겨두지 말고, 모든 삶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순종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절반의 순종이 아닌, 전적인 헌신과 순종에서 비롯된다.
"부분적, 선택적 순종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판단한 범위, 유리한 범위, 이익이 되는 영역에서만 순종하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결과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의 작은 불순종이 결국 더 큰 죄의 문을 열고, 그로 인해 마주하게 될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신앙에서 작은 타협을 쉽게 허락하곤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지켜야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일부만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작은 타협이 결국 신앙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의 기준에 따른 완전한 순종이다.
이런 선택적 순종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약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순종은 처음에는 작은 불순종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 불순종은 큰 불순종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사탄에게 틈을 주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영적인 삶을 점점 더 어둡게 만든다. 순종하지 않은 영역이 우리의 약점이 되어 마침내 파멸을 부른다.
하나님은 온전한 헌신을 원하신다. 우리가 일부만 하나님께 드리거나, 그분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매우 불경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시니 일부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에서 타협 없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작은 영역을 남겨두지 말고, 모든 삶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순종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절반의 순종이 아닌, 전적인 헌신과 순종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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