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봉준 - "인격이 고결하고 식견이 고매한 이" 공주 우금치 전투가 실패로 돌아가고 전봉준은 전라도 순창의 피로리에서 관군에 체포되었다..

ree610 2024. 9. 8. 18:17

전봉준 - "인격이 고결하고 식견이 고매한 이"

공주 우금치 전투가 실패로 돌아가고 전봉준은 전라도 순창의 피로리에서 관군에 체포되었다. 일본군은 그를 넘겨 받아 한양에 있는 자기네 공사관 감옥에 가두었다.

그때 일본인 나나카 지로가 죄인으로 가장해 전봉준의 감방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였다. 다나카는 전봉준에게 일본으로 탈출하기를 권했다.

전봉준은 다나카의 의리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일본으로 망명하기를 거부했다. "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천명일 것이다. 굳이 천명을 거부하고 일본으로 탈출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만간 사형될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부디 동학당을 도와달라."

일본인 협객 다나카는 이노우에 공사를 만나 전봉준을 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노우에는 평소 동학당을 혐오하였으나, 감옥에 수용된 전봉준의 언행을 살피고는 마음이 달라졌다. 그 인격이 고결하고 식견이 고매하여, 이노우에가 보기에는 최고의 조선인이었다. 그래서 전봉준을 추중(推重)하게 되었다. 나중에 전봉준을 다시 조선 측에 넘겨주게 되었을 때 이노우에는 제발 전봉준을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다고 한다.

우리 조정에서는 이노우에가 잠시 일본에 돌아간 틈을 노려 전봉준의 사형을 집행하고 말았다.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 16, <동아선각지사기전(東亞先覺志士記傳)>,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 2024, 46쪽 참조)

다른 것은 몰라도 한 가지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인들의 눈으로 보아도, 전봉준은 인격이 깨끗하고  식견이 고매하였다. 이런 인물이라야 백만 명의 민중이 호응하고, 수천 년 역사상에 큰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는 법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도모하기에 힘쓰는 것도 좋지만, 먼저 거울에 비친 제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여야겠다.

아, 녹두여! 당신은 진정 우리의 큰 스승이셨으며, 지금도 또한 그러합니다.

- 백승종 교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