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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환경주일) 설교. 사도행전 15:1~11,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ree610 2024. 6. 1. 19:25

2024년 6월 2일 (환경주일)
사도행전 15:1~11,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찬송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Ⅰ. 이방인들의 할례에 대한 논쟁 (행 15:1-5)

  하는 일들이 순풍에 돛 단듯 기분 좋게 진행된다 해도 안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혀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지상에 천국이 존재했었다면, 그곳은 분명 그 당시의 안디옥 교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조차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뛰어난 사역자들 간의 평화가 파괴되었고 분열이 초래되었음을 보게 된다.

[1 ]그들 사이에서 발생한 하나의 새로운 교리는 이방인 개종자들로 하여금 할례와 의식법에 복종할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1절).
   1) 이 교리를 강요한 자들은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안디옥을 방문한 이유는 그곳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사령부인 동시에 이방인 개종자들의 총집결지 이었기 때문이다.
   2) 그들의 기본 입장은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였던 수많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에 대하여 열심을` 품고 있었다.(21:20). 그들은 단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즉 만일 너희가 우리의 생각과 방식대로 따르지 아니한다면, 너희는 정녕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지옥에 빠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선량한 신자라도 구원을 얻지 못하면, 구원 자체가 그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거하는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없다.

[2] 바울과 바나바는 이 종파 분열적인 개념에 대해 반대했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2절). 그들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교리에 결코 승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서 그의 진리가 배척 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리스도가 의식법에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인들의 가르침이 세례를 위주로 삼았을 때,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3] 이 위험천만한 그릇된 사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치가 취하여졌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 및 그들과 함께한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다(3절). 유대인들이 이 사건을 예루살렘에 의뢰한 것은 이러한 교리를 가르친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왔으며 또한 예루살렘 사도들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문제에 관하여, 그리고 그곳 교회로부터 그러한 지시를 받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사람을 파송하는 것이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것은(24절) 사실이었으나, 그곳의 사도들로부터 그러한 지시를 받은 사실은 결코 없었다.

[4] 이러한 사명을 띠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여행했다.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3절). 이처럼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입장에 선 자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들은 그들의 여정에서도 선한 일들을 행하였다. 그들은 여행 도중에 교회들을 방문하였다. 또한 그들은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면서 모든 형제들에게 기쁨을 안겨다 준 이방인들의 개종에 관해 선포하였다. 복음의 전파는 커다란 기쁨의 사건이며, 또한 기쁨의 사건이 되어야 한다.

[5]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4절).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에게 베푼 성대한 환영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았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극진한 사랑과 우정을 표하면서 그들을 영접했다. 그들도 예루살렘의 친구들이 베푼 극진한 환대에 보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했으며 이방인 세계에서 수행한 목회활동의 성공담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오가면서 심고 물을 주었다. 그러나 이 모두에서 그들은 자라게 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꺼이 고백할 수 있었다.

[6 ]여기에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할례 주장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이 일어나 말하되(5절). 그 반대 입장에 선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복음에 대하여 지나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복음에 의해 얽매여 있는 자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생애 동안에는 통치자들과 바리새인들 중에 그를 믿었던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리새파 사람들도 그를 믿게 되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신실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가진 편견을 일순간에 완전히 제거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후에 신자가 된 바리새인들도 지난날의 타성에 어느 정도 젖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일부의 사람들이 그러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행 15:9)

* 동일한 은혜를 베푸시는 성령

유대인들의 구원관(15:1)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구원관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처음 명하셨던 이 행위는 언약 공동체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하나의 징표일 뿐인데도 유대인들은 이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할례 문제로 인한 논란 해결(15:2-11)
당시 안디옥 교회에서는 할례 문제로 많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몇 사람을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의 핵심을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할례를 행해야만 구원 얻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과 변론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변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문제는 당시 초대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베드로의 단호한 설명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과거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동일하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역설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거져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이 은혜에 동참하는 자만이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할례는 복음의 핵심을 이끌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님!
율법적인 구원론은 무거운 멍에를 메우는 것과 같아서 주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알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