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영성

친구들에게 질책받는 욥

ree610 2023. 7. 1. 07:22

윌리엄 블레이크, 친구들에게 질책받는 욥, 1826년

욥기는 이스라엘이 포로를 마친 후인 BC5세기쯤 지금부터 2500년 전에 기록되었다. 당시 이스라엘 신앙 전통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 따라서 정의로운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불의한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고,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포로기 이후에는 이런 전통적인 행복과 지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오랫동안 관찰해보니, 착한 사람이 행복하고 죄지은 사람이 불행하다는 해석이 딱 맞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말 못된 사람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정말 착한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하나님이 정의롭고, 세상을 정의로운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면 그 세상은 당연히 정의로워야 하는데 악이 득세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을 신정론(神正論/Theodicy)이라고 한다. 근본적으로는 선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왜 이렇게 악이 존재하느냐는 물음이다.

욥기는 이런 신앙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문학작품이다. 주제를 선명하기 위해 욥은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고 그가 받은 재앙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이었다. 문학은 극단적 방법으로 주제를 강조해도 된다. 아들 일곱 딸 셋 열 명의 자녀가 하루아침에 죽었는데 나중에 다시 아들 일곱 딸 셋 열 명의 자녀를 주시면 다 회복된 건가? 재산은 그럴 수 있어도 자식은 그렇게 보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학이기에 이런 설정이 가능하다. 단 문학이라고 해서 그냥 허구가 아니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작품이기에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그래서 성경에 포함될 수 있었다. 삼국지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소설임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고전이듯이 성경에는 욥기‧시편‧잠언‧전도서 같은 신앙에 도움 되는 문학작품(지혜문학)이 있다.

재산과 자녀 모두를 잃고 본인마저 중병에 걸려 고통받으면서 하나님께 항의하는 욥을 향해 세 친구가 찾아온다. 그들은 전통적인 이스라엘 신앙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친구들은 욥이 이렇게 고통받는 것은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내용은 다르게 말해도 모두 욥에게 손가락질하고 있다–너의 불행은 너의 죄 때문이야! 친구들의 표정은 주저함이 없다, 단호하다.

욥의 아내조차도 욥과 공감하지 못한다. 욥을 향해 같이 다그치는 것 같다 ; 입이 있으면 뭐라 말 좀 해봐요, 그런 거 아닐까.

욥은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식도 재산도 아내도 친구도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도 잃어버렸다. 악성 피부병에 걸려 기왓장으로 피가 나도록 긁어대던 몸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며, 눈물 가득한 눈을 하늘로 향하여 항변한다. 하나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악한 세상을 보면서도 의아하지 않다. 세상은 원래 그래, 그러고 만다. 그러나 창조주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보며 정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세상이 왜 이리 조리(條理) 있지 않으냐고, 왜 이토록 부조리(不條理)하냐고! 광주 시민을 무참하게 죽인 전두환은 오래도록 호의호식하다가 죽고, 아무 잘못도 없는 청소년‧청년들은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왜 그렇게 목숨을 잃어야 했느냐고, 이것이 정의로운 하나님이 세상을 이끌어가시는 방법이냐고? 하늘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 사실은 정직한 신앙이다. ㅡ 이훈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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