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율곡 이이의 유지사

ree610 2022. 10. 31. 07:27

율곡 이이의 '유지사(柳枝詞)'


율곡이 1574년 39세에 5, 6개월 정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582년 47세때에는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일로 황해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39세에 황해도 황주 관아에 딸린 기생 유지를 만났다. 첫 만남이었다.
문이 열렸다. 유지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며 주안상을 들고 왔다.
주안상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쳐 물러가 사뿐히 절을 했다.
날씬한 몸매에 곱게 단장한 얼굴은 막 갓 피어난 청초한 백합꽃 이었다.

“몇 살인고?”

“열두 살입니다.”

얌전한 행동거지에 말투 또한 온순했다. 조실부모해 어려서부터 기적에 든 교양있는 선비의 딸이었다.

“시침 들려고 온 것이냐?”

너무나 어린 소녀였다. 유지는 아직 갈래머리 동기였다.

“행수 기생의 명을 받들고 왔사옵니다.”

“아니다. 수종이나 들거라.”

율곡은 늘 옆에 두고 유지와 말벗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 예뻐해 주었으나 율곡은 갓 피어난 꽃봉오리를 꺾지 않았다. 얼마 후 율곡은 임기가 끝나 한양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지는 율곡의 각별한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1582년 율곡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로 평양으로 가는 길에
해주 관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날 밤 율곡의 침소로 유지가 찾아왔다.
두 번째의 만남이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율곡은 깜짝 놀랐다.

유지는 몰라볼 정도로 성숙해 있었다. 갓 피었던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대학자와 재회 하다니 유지는 가슴이 뛰었고 어쩔 줄을 몰랐다.
유지는 그날 밤 율곡을 모시고자 했으나 율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다시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해가 바뀌었다. 1583년 가을 건강이 좋지 않았던 율곡은 요양차 황주의 누님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이때에도 유지를 만났다. 세 번째의 재회였다.

여기에서 유지와 여러 날 동안 술을 마시면서 애틋한 마음을 나누었다.
율곡은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그녀는 멀리 절에까지 따라와 율곡을 전송해주었다.
저녁이 되어 재령의 어느 강마을에 투숙하게 되었다. 늦은 밤이었다.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유지가 방긋 웃으며 서 있었다.
헤어진 남자를 다시 보기 위해 수 백리 밤길을 걸어 온 것이었다.

놀란 것은 율곡이었다.

“아니, 이 밤에 무슨 이유로 찾아온 것이냐?”

“대감의 명성이야 온 국민이 모두 다 사모하는 바 이온데 하물며 명색이 기생된 계집이겠습니까? 여색을 보고도 무심하오니 더욱 감탄할 뿐이옵니다. 이제 떠나시오면 다시 만날 기약하기 어려오니 이리 굳이 멀리까지 온 것이옵니다.”

율곡은 밤늦도록 유지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별이 안타까워서일까 오늘따라 유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날 밤도 율곡은 유지를 품지 않았다.

'율곡 전서'에서 이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 기생이란 다만 뜨내기 사내들의 정이나 받고 사랑놀음하는 것이거늘, 누가 도의를 사모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게다가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감복하는 것은, 더욱이 보기 어려운 일이다.
아깝다! 여자로서 천한 몸이 되어 고달프게 살아가다니.

그래서 노래를 지어 사실을 적어 정에서 출발하여 예의에 그친 뜻을 알리는 것이니,
보는 이들은 그렇게 짐작하시라. 내일은 이별해야 한다.
율곡은 그녀에게 장시 한 편과 칠언절구 3수를 지어주었다.

1583년 9월28일 밤고지 강마을에서 썼다. 이이가 병환으로 별세하기 3개월 전이다.
이 시편이 「유지사」이며 이것이 둘 사이에 그만 영원한 영결이 되고 말았다.
원본이 현재 이화여대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처음 만났을 땐 아직 안 피어 정만 맥맥히 서로 통했고
중매를 설 이가 가고 없어 계획이 어긋나 허공에 떨어졌네,

이런저런 좋은 기약 다 놓치고서 허리띠 풀 날은 언제런가
아아! 황혼에 와서야 만나다니 그래도 모습은 옛날 그대로구나

세월 지나감이여! 그 언제런가
슬프다 인생의 녹음이더니
나는 더욱 몸이 늙어 여색을 버려야 했고
세상 정욕 재같이 식어졌다네.

저 아름다운 여인이여 사랑의 눈초리를 돌리는가
내 마음 황주 땅에 수레 달릴 때
길은 굽이굽이 멀고 더디구나
절간에서 수레가 머물고 강 뚝에서 말을 먹일 때
어찌 알았으랴 어여쁜 이 멀리 따라와
밤 들자 내 방문 두들길 줄을
아득한 들 가에 달은 어둡고
빈 숲에 호랑이 울음소리 들리는데
나를 뒤밟아 온 것 무슨 뜻이냐

옛날의 명성을 그려서라네
문을 닫는 건 인정 없는 일
같이 눕는 건 옳지 않은 일
가로막힌 병풍이야 걷어치워도
자리도 달리 이불도 달리
은정을 다 못 푸니 일은 틀어져
촛불을 밝히고 밤새우는 것
하느님이야 어이 속이리

깊숙한 방에도 내려와 보시나니
혼인할 좋은 기약 잃어버리고
몰래 하는 짓이야 차마 하리오
동창이 밝도록 잠자지 않고
나뉘자니 가슴엔 한만 가득
하늘엔 바람 불고 바다엔 물결이 치고
한 곡조 노래가 슬프기만 하구나!

아아! 내 본심 깨끗하기도 하다
가을 물 위에 찬 달이로구나
마음에 선악 싸움 구름같이 일 적에
그중에도 더러운 것 색욕이거니
사나이 탐욕이야 본시부터 그른 것
계집이 내는 탐욕 더욱 고약해
마음을 거두어 근원을 맑히고
밝은 근본으로 돌아갈지라

내생이 있단 말 빈말이 아니라면 가서
저 부용성에서 너를 만나리.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을 노래한 절절하고도 가슴 아픈 <유지사>이다.
한 치도 숨김없이 정과 이별의 아픔을 이렇게 토로한 것이다.

율곡은 몸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도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지는 율곡의 도의에 감복했고 이러한 유지의 정신세계를 아름답다고 여겼다.
율곡은 여기에 짧은 시 3수를 더 보탰다.

이쁘게도 태어났네!
선녀로구나!
10년을 서로 알아 익숙한 모습
이 몸인들 목석같기야 하겠냐만
병들고 늙었기로 사절한다네

헤어지면 정인처럼 서러워했겠지만
서로 만나 얼굴이나 친했을 따름이네

다시 태어나면 네 뜻대로 따라가련만
병이 들어 세상 정욕 이미 재 같구나

길가에 버린 꽃 아깝고 말고
운영처럼 배향처럼 언제면 만날까

둘이 같이 신선될 수 없는 일이라
떠나며 시나 써 주니 미안하구나.

율곡은 자신의 유지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문을 닫으면 仁을 상할 것이요 동침을 한다면 義를 해칠 것이다. 인간적인 고뇌가 짙게 배어 있는 시이다.
율곡이 원접사로 일하던 해 어느 가을밤, 율곡이 지었다는 시구이다.

율곡은 문을 열고 유지를 맞아들여 仁을 실천했고,
유지와 몸을 가까이하지 않아 義를 지켰다.
가운데 병풍을 치고 두 사람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율곡은 유지를 향한 숨김없는 절절한 마음을 긴 시로 읊은 것이다.

율곡은 이듬해에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유지는 3년상을 치른 후 머리를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냈다 한다.

유지사는 율곡이 죽기 전 유지에게 남긴 영원한 사랑의 고백서였다.


- '월간서예'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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