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추석과 그리움

ree610 2021. 9. 21. 14:07

1. ‘그리움’은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을 때 생겨나는 감정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생 그 감정에 묶여 사는데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로 평가합니다. ‘그리움’은 글, 그림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뾰족한 도구로 대상에 그 흔적을 새기는 행위”를 뜻하는 ‘긁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지요.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긁는 행위’와 관련하여 볼 때, 종이에 그리면 글이나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되는 셈이지요.

2. 김준태 선생은 “꽃은 죽어서 하늘로 날아가고/ 나비들은 죽어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사람은 죽어서 하늘에 자신의 그림자를 적시고/ 새들은 죽어서 땅 위에 자신의 날개를 퍼덕퍼덕 남긴다”고 노래합니다. 그렇게 ‘땅 위의 목숨은 하늘로 날아가 목숨을 이루고/ 하늘 위의 목숨은 땅 위에 내려와 목숨을 이루는’ 이유를 그는 “살아서 못다 한 그리움” 때문으로 설명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묶여 있지만 더 간절해지는게 그리움의 감정입니다. 9월, 아름다운 계절의 한 복판에 자리잡은 추석 명절, 마음 가득 차오르는 그리움의 시간을 보냅니다.

3. 문득 이때가 되면 저에겐 떠오르는 ‘가슴 저리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모친을 먼저 떠나보낸 후 저의 부친은 수년 동안 혼자서 고향 집을 지켰습니다. 자식들 성화와 같은 애원도 있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하셨습니다. 평생 살아온 고향 집을 떠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수족 움직일 수 있는데 마음 편히 살란다...’ 말씀하실 때 자식들의 서운함도 감지하셨겠지만 부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셨을 것입니다. 문제는 끼니를 해결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택배 시스템이 잘 갖춰진 때도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자식들이 반찬이라도 만들어 보내면 먹을 것이 사방에 널려 있는 시골인데 애비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시곤 했습니다.

4. 서울에서 땅끝마을 해남까지는 당시엔 막히지 않고 달려도 자동차로 7~8시간이 걸리고, 명절 때는 두 배 이상이 걸리던 가깝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그 긴 시간을 좁은 공간에 아이들을 가둔 채 달려야 했던 고향길이었지만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운 분이 계신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손자 손녀 고생이라며 괜한 걸음 하지 말라고 야단이셨지만 찾아가면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 같다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셨고, 며느리 준비한 명절 음식을 드시면서는 평소 칭찬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입술에서 ‘맛있다’라는 말이 새어 나오듯 했습니다. 멀어도 달려가던 고향길도 부친마저 세상을 떠난 후엔 달려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5. 몇 년 전, 시작된 학기에 분주하게 달리다가 모처럼 여유롭게 추석 연휴 첫날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갈 고향이 없어졌고, 달려가도 반겨줄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이 서글픔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은 벌써 고향 집을 향해 달려가 그 언덕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꺼내든 한 시인의 시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습니다.

6. “구두를 닦는다, 아버지/ 토방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레 문지른다/ 툇마루에 올려놨던 살핏줄 내음/ 박사 따온 오진 자식 그 애린 볼 부비듯이// ‘즈이 어미 살았으면 오죽 좋아하랴만’/ 쓰잘데 없는 생각/ 털어 버린다 솔질 한 번 더 한다// ‘느그들이 온께 사람 사는 집 겉다 잉? 허허’/ 남의 땅에서 태어난 손주놈 잠자리처럼/ 마당 휘젓고 다니는 모양, 눈에 꽉 차올라// 구두를 닦는다 그저 자식놈 구두만 닦는다/ 곡식 가마니 져 나르던 휘어진 등허리에/ 추석날 기우는 햇살 미어지게 실어 나른다”(고명, “추석날” 전문).

7. 마치 시인에게 들킨 느낌이었습니다. 어쩜 내 형편과 속마음까지 다 아는 시인이 내 이야기를 시에다 고스란히 담은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시인처럼 저도 유학 시절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냈고, 두 아이를 미국에서 얻었습니다. 시골길에 더러워진 구두를 부친께서는 다음 날 아침이면 깨끗이 닦아놓으시곤 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어린 손자 손녀 앞세우고 찾아와 너무 좋으시면서도 속내는 잘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마당 휘젓고 다니는 손자 손녀에게 넘어진다고 천천히 다니라고 야단하면서도, 한국놈이 한국말을 해야지 뭔 영어로 말을 한다며 못마땅해 하시면서도 자랑스러운 속내는 은근히 감추셨습니다. 먼저 떠난 모친이 명절엔 많이 그리워셨을텐데 그 마음도 드러내지도 못하시고 부친은 아들 구두만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계셨습니다.

8. 어쩜 그것은 우리 시대, 이 땅 아버지들의 공통된 모습인 모양입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신 초췌한 모습마저도 우릴 더 든든히 세우시려는 몸부림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요. 안효희 시인은 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쌀 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 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 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 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 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 “아버지의 밥그릇” 전문).

9. 추석날 아침,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하여 밀려오는 그리움으 가슴에 답습니다. 기다리시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그 먼 고향길도 행복한 길이었음을 새삼 느끼며, 꺼내든 ‘그리움’이란 단어에 붙들려 고향 집 언덕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10. 오래전 읽은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서문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그 가슴 뭉클한 이름에서마저 향기를 잊어버리고 산 것이 얼마인가. 가로등만이 초라한 골목길에서 휘청거리는 발길을 내딛는 굽은 그의 등을 본 적이 있는가?... 잠든 당신의 곁에서 지켜서 흐뭇하게 머금던 그의 미소를 잠결에서나마 보았던 적이 없었는가?...”

11. “막연한 그리움이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할 것으로 변할 때 생기는 심리적 반응”이 바로 설렘이라지요. 심리학자들은 그 설렘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일러줍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설렘이 동반할 때 행복한 시간은 활짝 열린답니다. 코로나로 묶임 가운데서 맞는 명절 아침,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고 그 충고를 새겨듣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 조금만 마음 문을 열고 사랑을 펼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이젠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는 그 이름을 다시 불러 봅니다. “아버지, 오늘은 당신이 정말 그립습니다.”

12. 모처럼 오른 지난 주말 예봉산 사진과 함께 추석 인사 전합니다. 가족들과 평온하고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소서.

ㅡ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운용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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