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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편지글(簡札)과 제자 사랑

ree610 2017. 4. 6. 17:56
다산의 편지글(簡札)과 제자 사랑
황 경 식 (서울대 명예교수)

   막연히 다산을 알고 흠모하기 시작하고부터 다산의 편지글, 즉 간찰을 콜렉션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산이 쓴 글씨이기에 무조건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 비전문가가 봐도 글씨 자체가 단정하고 멋있어 보였다. 다산의 글씨 형태가 독특해서 위작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 듯하여 다산 간찰이라 하면 무조건 수집하다보니 어언 20여 점을 넘게 모으는 행운이 따랐다.

수집한 다산의 간찰을 감정해보니

   수집한 간찰 중에는 고미술 협회의 감정서가 첨부된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기는 하나 모든 간찰의 자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모두가 다산의 친필이겠거니 하는 게 필자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간찰의 소장자가 공부를 했는지 곳곳에 방점이 찍혀 있고 때로는 어려운 글씨에 토를 달기도 하여 이 또한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필자는 평소에 면식이 있는 데다 다산의 간찰에 밝은 한양대 정민 교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는 ‘스승 다산과 제자 황상 간의 뜨거운 사제의 정’을 중심으로 한 단행본과 더불어 다산에 대한 저술이 여러 권 있는 그야말로 다산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정 교수에게 다산 간찰의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오기로 약속을 했다.

   정민 교수는 그야말로 다산 매니아여서 다산과 관련된 자료가 있다 하면 지옥에라도 달려갈 듯한 열성을 지닌 다산 연구가였다. 그는 내가 소장한 다산 간찰들을 검토하더니 이미 이 물건들을 잘 알고 있는 듯 품평을 쏟아 놓았다. 더욱이 그는 내가 가진 20여 개의 간찰과 더불어 10여 개의 다른 간찰들로 이루어진 다산 간찰집의 복사본까지 만들어 〈茶山簡艸〉라는 제목의 초본을 내 앞에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사정은 이러했다. 지금부터 2~3년 전 이 물건 전체가 한꺼번에 인사동에 나온 적이 있었고 그때 정교수가 그 물건의 복사본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30여 장의 간찰은 사실상 실제로 다산이 누구에게 보낸 간찰이 아니고 수신인도 가명이고 그 속에 적힌 사연도 가상적인 사연일 뿐 실제로 이용한 실용 간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그 당시 소장자에게 알려주면서 간찰집을 낱개로 나누어 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소장할 한 권의 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장자는 이에 반발하면서 행여 사실 그대로가 밝혀지면 자신이 금전적인 손해를 볼까 두려워했고 정 교수가 사실 그대로를 알려 판매가 여의치 않을까 전전긍긍 했다는 사실을 나에게 전했다. 그리고 정 교수는 필자에게 자신이 이 간찰집을 앞으로 다산에 대한 책을 쓰는데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를 당부하였다.

   정 교수의 추정적 짐작에 따르면 이 간찰집은 다산이 실제로 보낸 편지들이 아니라 제자들이 간찰을 쓸 때 참고할 수 있는 간찰 모형을 정리해서 제자들의 교육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찰의 서두에 나오는 이름들은 모두가 가명 내지 차명이고 계절별로 상이한 인사말과 더불어 경조사 등 간찰을 쓰는 목적에 따라 갖가지 간찰의 이상적 모형을 제시한 것이라 한다.

제자들 교육용으로 간찰을 만들다

   이를테면 ‘梅軒’에게 보내는 간찰이 있는데 다산 주변에 이 같은 이름의 친지를 찾기가 어렵고 또한 그 속에 이야기 되는 사연들도 다산이 처한 당시의 정황들과 맞지 않다는 게 정 교수의 해명이었다. 여하튼 이 같은 사정을 통해서 필자는 교육자로서 다산이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이 책의 다른 결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수소문했으나 지금까지 소재를 파악한 것이 두어 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10여 점의 유품들은 그것을 소장한 자가 다산의 간찰로 잘못 알고서 소장하고 있는 셈이며 이를 감정하는 사람들 역시 이 같은 사정을 모른 채 그릇된 감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감정의 오해와 진실은 오직 신(神)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위작 시비 사건을 두고 필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또한 감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모든 감정가는 현재로서 부족한 지식을 기반으로 겸허하게 감정에 임해야 할 뿐 아니라 감정은 또한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어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세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하튼 나는 다산 편지글 중 하나를 표구해서 나의 서재 한 켠에 놓아두고 시간 날 때마다 시선을 마주치곤 한다. 그럴때면 다산이 무언가 응답해오는 느낌과 더불어 다산의 문자향이 나의 주위를 감도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것이 다산을 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글쓴이 / 황 경 식

·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꽃마을 한방병원 이사장
· 한국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정의론과 덕윤리〉, 아카넷, 2015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수정재판), 철학과 현실사, 2013
〈철학, 구름에서 내려와서〉, 동아일보사, 2001
〈시민공동체를 향하여〉, 민음사, 1997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 문학과 지성사, 1986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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