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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드리는 한 독일 선교사의 글

ree610 2016. 7. 30. 00:10

한국교회에 드리는 한 독일 선교사의 글


1990년대까지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
외국인 선교사 모임에서 최근에 인도에서 온 한 선교사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고향인 하이데라바드(Hayderabad) 시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교회가 있다면서 자랑스레 이야기했다.1) 요즘엔 대형교회를 자랑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모양이다.2)
필자가 1992년에 한국에 입국할 당시는 이와 달랐다. 순복음교회 같은 대형교회가 서울에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 그때 한국은 오늘보다 눈에 띌 정도로 더 가난했고, 군사독재 시대였고, 시내와 연세대학교 입구에 최루탄 가스 연기가 자욱한 날이 많았다. 전쟁과 고문과 억압으로 인하여 트라우마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독재 시대가 곧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1992년 가을에 김영삼이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갑자기 사회의 분위기, 정치적 분위기가 변했다. 공식적인 장소에서 정치적 이야기를 피하던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민주주의를 희망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신바람이 불었다. 독일의 모범에 따라 한반도도 곧 통일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필자는 독일에서 온 사람으로서 여러 차례 독일 통일에 대한 발표에 초청받았고3) 글을 쓸 기회도 있었다.4) 어디든지 희망이 넘쳤다. 미래가 밝다는 말이 유행했다.
개신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교회들의 교회성장에 대한 열의가 뜨거웠고, 예배 시에 교회당이 가득 찼고, 새벽기도회도 인기가 있었고, 신자들이 열심히 전도했고, 교회를 자랑스러워했다. 순복음교회를 모범으로 보았다. 비슷한 성장을 경험하기 위하여 조용기 목사를 모방하는 목사들이 수없이 많았다.
민중교회는 달랐다. 빈민촌에 사는 수많은 이웃을 돕고 고통과 어려움을 같이 나누면서 더 좋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잊지 않았다. 민중교회에서도 작은 희망의 꽃이 피었다.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그 자체로 기쁨이었고 큰 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한국 개신교회는 낯선 것이었다. 독일 사람으로서 아는 찬송이 거의 없었고 익숙한 멜로디가 들릴 경우에는 주로 독일 애국가의 곡이어서 매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필자 세대의 대다수가 20세기 초반의 독일 역사 때문에 모국에 대한 자부심보다 오히려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찬송가가 미국 전통에 따른 것임을 직접 느꼈다. 독일에 없거나 매우 작은 한국 개신교회의 교파들도 생소했다. 대림절에 여러 가지 색깔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나무도 매우 유치하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처음에 눈에 띈 것은 한국 개신교회가 받은 미국의 영향이었다. 

 
1996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출판하는 「교회와 세계」에서 한국 개신교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필자는 영미권의 영향과 에큐메니컬(ecumenical) 사상의 약함, 그리고 현실성 상실의 위험을 문제로 판단했고 교회 본질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를 지적했다.5)
그러나 경험이 더 많은 동료 선교사를 통해 낯선 것들이 다 미국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배를 해석하면서 유교와 무속의 영향을 설명했다. 도덕적 설교와 교회의 구조적 위계질서를 유교의 영향, 그리고 황홀경에 이르는 듯한 기도와 목사의 중보자 역할을 무속의 영향으로 해석했다.6) 필자는 그 해석에 대해 토론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토착화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7) 그때부터 한국 개신교회가 미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은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했지만, 토착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필자는 한국 개신교회가 이미 너무 많이 한국 문화화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8)

199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회의 위기
급속한 교회성장에 자부심을 가졌던 한국 개신교회에 1990년대부터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변화로 인하여 민중교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 영국 버밍엄 대학교 선교학과 종교학 교수인 베르너 우스토르프(Werner Ustorf) 박사는 한국교회 방문 끝에 “민중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9) 필자는 민중교회와 민중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에 우스토르프 교수의 의견에 반대하여, 민중교회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양상을 취하여 주로 농어촌교회와 이주노동자교회와 사회복지에 집중하는 교회로 변했다는 주장을 했다.10)


대중교회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IMF 사태로 금융위기가 닥쳤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금 모으기’로 빨리 극복은 되었지만 충격이 컸다. 낙관적 성장주의 사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복사상에 익숙한 한국 개신교회가 갑자기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학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죄로 인하여 금융위기가 생겨났다는 설명을 하며 기복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경제가 회복되면서 기복사상의 위기를 어느 정도 면했지만, 경제의 고성장 시대가 지났고 저성장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전과 달랐다. 교회들의 선포에 만족하지 못한 교인들의 일부가 이탈해 기복사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김영삼 정부를 배려한 대중교회들의 위기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독재 시대부터 반정부 운동에 집중하던 교회들도 마찬가지로 위기에 빠졌다. 이유는 달랐다. 1997년 12월에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극심한 금융위기 극복에 힘을 기울였다. 그동안 정부를 비판하는 데 익숙했던,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교회들이 갑자기 정부의 편에 서게 되고 정부와 협력하게 됨으로써 정체성 위기에 직면했다. 

 
그래서 2000년 이전부터 교회성장이 느려지고 한국 개신교회는 큰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 개신교회 대부분의 교회성장이 멈추고 교회 침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언론들이 발견하는 개신교의 스캔들이 지속적으로 많아지고 심각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열심히 전도하던 교인들의 대다수가 더 이상 전도를 하지 않고, 성경책을 손에 들고 교회로 갔던 교인들은 요즈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않고 성경책은 가방에 넣고 다닌다. 이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혹 믿음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비판이나 공격을 두려워하는 현상 중 하나인지 궁금하다.

한국 개신교회에 필요한 개혁
한국 개신교회는 더 이상 위기를 부인하지 않고 거의 모두가 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 개신교회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하여 거의 다 동의하는데 어떤 개혁이 바람직하고 필요한지가 논의의 대상이 된다. 입장들이 매우 다양하다.
자주 들려오는 말은 두 번째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생긴 개신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말이 정말 적합한 표현인가?
2012년에 루터대학교에서 독일 종교개혁지 탐방을 주관했다. 27명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다양한 교회들11)에 속해 있고 교회 직분12)도 다양했다. 탐방 여행이 끝나기 전에 유럽 종교개혁과 오늘의 한국교회에 대한 토론회에서 필자가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와 종교개혁 시대의 천주교회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여행 참여자들은 총 10가지 공통점을 말했다. 이 10가지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13)

1. 율법주의적 예배 이해
2. 하나님의 은혜나 복을 얻기 위해 재물로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3. 선행을 통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
4. 교회의 지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악용
5. 교회의 교권주의
6. 성직 매매
7. 많은 목사들이 지나치게 돈에 관심을 갖는 것과 잘못된 돈 사용
8. 많은 목사들이 교회를 개인적 소유로 착각하는 것
9. 많은 목사들의 도덕적·성적 타락
10. 많은 목사들의 낮은 신학적 수준


다른 공통점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교회 건물을 건축14)하는 것과 영광의 신학15)과 교회의 위계질서16) 등을 예로 들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의 결과로서의 개신교회에 속한 한국교회 16세기의 천주교회와 같다면 두 번째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기보다 16세기에 일어난 첫 종교개혁과 같은 개혁이 필요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와 16세기의 천주교회의 문제점이 비슷하더라도,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과 루터 시대의 천주교회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적 차이가 매우 크다. 사고방식이나 세계관도 서로 다르다. 종교개혁은 온 세계에 새로운 자의식을 주었고, 이 자의식은 계몽주의와 민주주의와 현대적 자본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종교개혁은 현대의 근원이 되었지만 현대가 아니었다. 우리가 종교개혁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오늘의 상황에서, 합리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과 자본주의의 영향이 강한 현 세상에서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개혁의 과제가 500년 전보다 더 복합적이고 어려울 것이다. 오늘의 교회를 개혁하려는 사람에게 개인적 위험은 루터보다 작을 것이지만, 훨씬 더 다양해진 세계관과 신앙의 다양성 때문에 500년 전보다 도전이 더 클 것이다.
두 번째 차이도 있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가 16세기의 천주교회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종교개혁 시대에 없었던 문제도 있다. 그리스도교와 문화의 관계 해석이다. 종교개혁자들도 복음과 전통의 올바른 관계에 대하여 숙고했지만 그들이 숙고한 전통은 다만 그리스도교의 전통이었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는 그리스도교와 동아시아의 문화, 종교 간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까지 숙고해야 한다.

오늘의 과제: 그리스도교와 문화 간의 올바른 관계17)
요즈음 한국 신학자들이 교회의 위기를 보면서 새로운 신학 혹은 신학의 개혁을 제안한다. 3가지 견해가 대표적일 것이다. 

 
총신대학교 등의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현 한국 개신교회의 위기를 교회가 한국 문화와 종교들의 영향을 받았고 세속화된 결과로 본다. 한국 개신교회가 잘못된 동양의 영향을 받았든, 서구에서 온 현대의 물질주의적 영향을 받았든, 문제 해결을 위해 원래의 순수한 그리스도교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그리스도교를 초기 한국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그리스도교라고 본다. 20세기 초까지 조선에 전승된 북미 개신교 형태를 순수한 그리스도교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거기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이것은 조금만 돌아가자는 의미이다.


반면에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한국 개신교회가 지닌 서구 개신교회의 형태를 문제삼는다. 서구 교회가 위기에 빠진 근본 원인을 서구 교회의 신학에서 찾으며, 서구 교회가 당하는 위기를 피하기 위하여 독립적인 한국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 개신교회가 이미 크게 한국 문화로 문화화되어 있고 또 한국종교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되돌아가자고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다.
필자는 또 다르게 주장한다. 필자가 진보적인 신학자들에게 동의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회가 북미 개신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사람으로서 진보적 신학자들과 달리 한국 개신교회가 이미 그리스도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아시아의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지나치게 많이 수용했음을 본다. 이러한 전통은 예를 들어서 심각한 유교적 위계질서와 물질적 번영에 집중하는 무속적인 기복사상이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는 교회의 과거를 검토함으로써 교회의 문제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100년 정도만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500년이나 2,000년 정도까지 되돌아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18)

한국 개신교의 과제: 그리스도교 본질의 재발견19)
한국 개신교회가 자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면 할 일이 매우 많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10가지가 아주 신속하게 변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 개신교회의 도덕적 문제가 그리스도교 윤리 회복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많은 목사들이 그리스도교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기보다 성서에 나타난 윤리적 구절을 왜곡시키거나 유교적으로 해석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개신교회의 신학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 안수 조건으로 6년이나 7년 정도 신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20)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수많은 작은 실제적인 개혁이라기보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며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유럽 교회와 미국 교회가 본질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것이다. 한국 개신교회가 본질로 이해하는 것과도 다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본질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함께 찾아야 한다. 필자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의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때 본질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눔과 교류와 토론을 통해서만 예수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교회에서 사용되는 코이노니아(koinonia) 혹은 코무니오(communio) 사상이다.21) 우리는 모든 지구의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대륙, 모든 교단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한국 개신교에게 특별히 중요한 대화의 파트너들은 천주교인들과 정교인들이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새롭게 찾는 일에 종교개혁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되찾으려고 했고 본질의 핵심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핵심은 다양하게 요약되지만, 조심스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한국 개신교회가 예수께로 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Calvary Temple, Hyderabad(http://calvarytemple.in).
2) 예를 들어서 신광은, 『메가처치를 넘어서』(서울: 정연사, 2009) 비교.
3) 예를 들어서 1992년 11월 22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초동교회 청년부 발표와 1996년 6월 13일 아태평화 재단 아카데미 발표 비교.
4) 예를 들어서 이말테,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통일,” 「기독교사상」 8 (1999): 54-65 비교.
5) 이말테, “독일인의 눈으로 본 한국교회,” 「교회와 세계」 12(1996): 39-44 비교.
6) Lutz Drescher, “Ethik und Ekstase. Beobachtungen uber den Einfluss von Konfuzianismus und Schamanismus auf die koreanischen Kirchen,” Zeitschrift fur Missionswissenschaft und Religionswissenschaft 4 (1994): 274-289 비교.
7) 말테 리노, “자유함이 없습니다. 외국인이 본 한국교회, 한국교인,” 「목회와 신학」 통권 79 (1996): 164-172, 여기에서 166-168 비교.
8) Malte Rhinow, “Die Kirchen Sudkoreas,” Korea Forum 2 (1998), Koreaverband(Ed.), 23-26 비교; 이말테(Malte Rhinow), “종교개혁 500주년의 한국 개신교회를 위한 의미,” 「神學과 信仰」 25 (2014), 루터대학교 교수논문집, 207-249 비교.
9) Ustorf 교수는 Theo Sundermeier의 제자이며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버밍엄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0) Malte Rhinow, “A Reflection on the Current Situation of the Minjung Movement,” PROK News 45 (1997) summer,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Ed.), 7-10; Malte Rhinow, “Eine Betrachtung der gegenwartigen Situation der Minjung-Bewegung,” Info-Brief Nr. 3(1998), Evangelisches Missionswerk in Sudwestdeutschland(Ed.), 4-6 비교.
11) 루터교(14명), 감리교(5명), 한국기독교장로회(4명), 대한예수교장로회(2명), 순복음교회(1명), 그리고 개혁교회(1명).
12) 목사(4명), 장로(1명), 권사(3명), 목사 사모(4명), 집사(7명), 전도사(2명), 그리고 일반 교인(5명).
13) 이말테(Malte Rhinow), “종교개혁 500주년의 한국 개신교회를 위한 의미,” 207-249 비교.
14) 대표적인 화려하고 큰 교회 건물(들)이 교단마다 필요할 것이다. 성공회도 덕수궁 옆에 있는 대성당 덕분에 에큐메니컬 예배와 행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과 땅 구입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개신교회가 허다하다.
15) ‘기복사상’ 혹은 ‘번영 신학적 복음 이해’(prosperity gospel)나 ‘교회성장주의’를 ‘영광의 신학’의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공개 학술 논쟁에서 루터는 1518년 4월 26일에 천주교회의 ‘영광의 신학’을 비판했다[논제 19부터 21까지 비교(LW 31, 40)].
16) 16세기 천주교회 사제들은 귀족이었다. 한국교회는 유교적 위계질서를 비판하기보다 순종을 가르치며 전승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 중세교회의 ‘거룩한 질서’를 비판하며 믿음을 자유로 해석했다.(LW 31, 343-358)
17) 이말테, “종교개혁 500주년의 한국개신교회를 위한 의미,” 207-249 비교.
18) 누가복음 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19) 이말테, “종교개혁 500주년의 한국개신교회를 위한 의미,” 207-249 비교.
20) 윤리와 신학교육에 대한 개혁 제안에 있어서 Malte Rhinow, “Two Suggestions for a Reform of Christian Education in South Korea,” Journal of Christian Education & Information Technology, Volume 29, 4(2016), 23-44 비교.
21) 한정애, 『교회사를 통해 본 작은 공동체 운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3, 초판 4쇄), 181-202 비교.

이말테 | 독일 뮌헨 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전국기독교연합회 재한독일어권교회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루터대학교 조교수, 기독교한국루터회 선교사, 독일 기독교 바이에른 주 루터회 선교회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