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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도시] -문정희- 폭설이 도시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시간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ree610 2025. 1. 28. 08:04

[폭설 도시]

-문정희-

폭설이 도시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시간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발밑에서 새의 깃털 소리가 났다
하얀 손을 가진 이 통치자는 누구인가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건 적도 없지만
역사상 어떤 만장일치로 세운 정부보다 빠르게
눈부신 풍요를 온 도시에 선물했다

그러나 이 꿈의 도시는
짧은 생몰 연대를 기록하고
미완의 혁명으로 곧 사라질 거라는
댓글이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기도 전에
화려한 몽상은 벌써 실체를 드러냈다

이 도시의 율법은 백지, 그러므로
누구도 법을 어길 일이 없어 좋았다고
아쉬워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보기 좋게 나자빠져도 법이 없으므로
죄도 벌도 없었다

제 길을 제가 만들어 가면 그뿐인
이 설국을 구상한 이는
정치가가 아니라
분명 시인이었을 것이다

조급증처럼 자동차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유언비어 사이를 질주하는가 싶더니
하얀 풍요의 도시를 순식간에 파괴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