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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도종환- 된바람에 모질게 시달리다 눈발과 함께 바람이 산을 넘어간 뒤 천천히 숨 고르고 있는 나무를 올려다 보자 겨울나무는

ree610 2025. 1. 16. 07:41

[겨울나무]

-도종환-

된바람에 모질게 시달리다
눈발과 함께 바람이 산을 넘어간 뒤
천천히 숨 고르고 있는 나무를 올려다 보자
겨울나무는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바람을 이기려는 건 무모한 일이죠
바람이 사나울 땐 바람에 몸을 맡겨요
꽃피는 시절에는 허영에 들뜨지 않고
푸른 잎 무성할 땐 겉넘지 않고
열매가 찾아울 땐 자신에게 충실할 줄 알면
찬 바람 몰아칠 땐 비굴하지 않다고
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나무가 일러주었다
황홀하게 물든 잎을 허공에 날려 보낼 때나
폭설이 몰아쳐 온몸 오그라드는 날에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게 실력이라고
폭우 쏟아질 때부터 눈발 날릴 때까지
하루하루를 견딜 줄 아는 힘이 실력이라고
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
큰 나무가 되는 거라고
겨울나무는 침묵의 장엄한 언어로 말을 건넨다
웅웅 거리는 신음 소리도 멎고
산발치에서 산마루까지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