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14~26
<자신을 드리라, 자신을 지키라>
찬송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Ⅲ. 디모데가 해야 할 것에 대한 바울의 지시 (딤후 2:14-18)
〔1〕 디모데는 자신이 맡고 있는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이것이 사역자들이 하는 일이다. 즉 사람들에게 그들이 전에는 결코 알지 못하였던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즉 `그들로 말다툼을 하지 않도록 엄히 명하는 것`(14절)이다. 만일 사람들이 신앙에서의 말다툼이 거의 무익한 것임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말다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15절은 우리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가르치고 있다. 서투르거나 신실치 못 하거나 게으른 일군은 부끄러운 일군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자신들의 일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꾸준히 행하는 자들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들이다.
〔2〕디모데는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에 유의해야 했다(16절). 그는 실수에 유의해야 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사람들이 한 번 망령되고 헛된 말을 좋아하게 되면, 그들은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오류의 길은 내리막 길이다. 한 사람이 잘못에 물들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물들게 되며, 그 사람은 곧 수많은 잘못에 물들게 된다. 바울은 바로 그 당시 잘못된 가르침으로 나아갔던 어떤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그들이다. 그들은 부활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함으로써 진리의 가르침에 잘못된 해석을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앞으로 있게 될 것에 대한 가르침을 제거하는 것은 무엇이든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대단히 번식력이 강한 것이며 그러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서 잘못을 범하였을 때 항상 그것을 그럴듯한 허위로 가장하려고 애쓴다.
Ⅳ. 하나님의 견고한 터에 대한 바울의 언급 (딤후 2:19-21)
〔1〕사람들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즉 신약과 구약의 가르침들은 여전히 확고하게 서 있다. 하나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말씀을 나타내 주고 있다. 주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을 잃지 않으실 것이다. 또 다른 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는 우리의 의무에 대한 선포가 나타나 있다. 우리는 불의에서 떠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 우리를 버리실 것이다.
〔2〕믿음이 무너진 몇몇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들의 성결함을 지키고 복음을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다(20절).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나무와 질그릇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천히 쓰이는 그릇들이다. 그러나 모든 그릇이 다 천히 쓰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들의 좋지 못한 행실로 말미암아 낙담하게 될 때, 다른 이들의 선한 행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주인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성결케 되는 것이다. 모든 그릇은 다 주인의 쓰기에 합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주인을 섬기는 일에 헌신해야 하며 또 그의 쓰임에 합당해야 한다.
Ⅴ. 피할 것과 행할 것에 관한 권고 (딤후 2:22-26)
〔1〕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할 것을 권고한다 (22절). 육신의 정욕이 곧 청년의 정욕으로서 청년들은 조심스럽게 이것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청년의 정욕을 피할 수 있는 탁월한 처방을 기록해 주고 있다. 청년의 정욕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은혜들은 죄악된 것들을 소멸시켜 줄 것이다. 우리가 선한 것을 따르면 따를수록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멀리 악한 것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2〕바울은 디모데에게 다툼에 대해서 그리고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과 다툼`에 대해서 주의를 준다(23절). 그러한 것에로 나아간 자들은 자신들을 현명하고 유식한 자들로 여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자들을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간에 언쟁과 다툼을 불러 일으킨다. 신앙이란 교묘한 논쟁을 일삼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24절은 우리에게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투기를 잘하는 자들은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들이 못된다. 주의 종들은 또한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도 `온유함으로 가르쳐야 한다`(25절). 회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이다. 특별히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혹시나 함으로써 있게 되는 은사이다. 우리로 진리를 발견케 하신 그 하나님께서 또한 은혜를 베푸시사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마음은 계속해서 진리를 거역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죄인들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26절은 죄인들의 비참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들은 가장 악한 주인의 노예이다. 그들은 올무에 걸려 있는데 그것도 가장 악한 올무 가운데 걸려 있다. 이는 그 올무가 마귀의 올무이기 때문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디모데후서 2장15절 / 개역개정)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인정받는 일꾼
* 기독 청년의 삶의 자세(2:22)
그리스도의 젊은이들은 정욕을 피하고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진리를 좇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년기의 특징은 매우 진취적이고 격동적입니다. 따라서 정욕에 약하고(22절),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잠1:10-16).
그러나 청년기의 열정(잠7:7-23)과 용감성(삼상17:26-51)을 토대로 더욱 더 절제하고 근신함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시119:8).
* 그릇의 비유(2:20, 21)
그릇의 비유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가장 귀한 일꾼의 모습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귀히 쓰이는 것과 천히 쓰이는 것의 차이는 얼마만큼 잘 예비하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어느 누구에게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다툼을 피하고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 주의 부르심에 귀히 쓰임받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