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50주년 기념]
- 한인섭 교수 -
거룩한 미사와 축하 행사를 했습니다.
축하말씀을 부탁하기에, 황송하게도 성당 앞에 나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눈물이 나오고 목이 콱 메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주위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문의드렸더니
'와 대단하다' 그리고 '기쁘다' '고맙다'의 반응이 즉각 왔습니다.
'축하합니다'라기보단, '기쁘고 고맙다'는게 저의 첫 느낌이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사가 하도 기복과 부침이 많아, 50년을 거리낌없이 말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개인사로 보면, 좌우로 왔다갔다 이랬다 저랬다한 행적이 너무 많아, 안타깝고 변명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단체나 기관은 더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런 가운데서도, 여기 정의구현사제단은 늘 고통의 중심에 확고히 서있고, 늘 약자 편이고, 정권의 거짓과 강압에는 정면으로 저항하고, 현장과 길거리에 함께 계시니 참으로 고맙고 든든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더 깊이 팔수록 어려운 지점에 사제단이 계셨구나 발견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반면, 이런 사제단을 향해 공격하고 비난하는 세력도 적지 않습니다. 50년동안의 도전과 공격에 맞서면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묘하게 일하시는 사제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사업의 기묘함을 느낍니다.
1980년대 초엔 특히 사제단을 해체하라는 압력에 시달렸습니다만, 사제단은 다음과 같이 맞섰습니다. '그냥 천주교를 해체하라고 하라, 그러면 사제단은 저절로 해체된다' '신학교를 폐쇄하라 그러면 사제단은 저절로 해체된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정의를 실현해라, 그러면 사제단이 할 일이 없어질게 아니냐.' 이런 반박에 즈음하여, 신군부는 '민주정의당'을 만들어 정의구현 단어를 갖고 갔습니다만, 그들의 행적은 불의와 무도함이 판치는 그것이었고, 그에 맞서 정의와 진실을 일으켜낸 사제단의 공적은 슬기롭고도 존경의 대상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엔 '사제단은 공인단체가 아니다'는 공격이 있었습니다. 사제단은 "공인단체였다면 벌써 상부기관을 압박하여 해체의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로마나 유태정권에 무슨 공인된 인물이었냐, 기독교도 다 비공인 아니었냐" 나아가 순교의 결단에 무슨 공인 따위를 언급할 수 있냐고 대응했습니다. 법상으로도 10년도 아니고 50년을 지속했으면, 교계 뿐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속에 공인된 실체가 확고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최근에는 무슨 종북이냐 빨갱이니 하며, 사제단 집회할 때 근처에서 확성기 틀어대는 공격이 일상화되기도 했습니다. 야외미사 드리기도 어려운 지경으로요. 여기서 사제단은 십자가행을 떠올립니다. 십자가행은 단지 육체고난 뿐 아니라 거기에 조롱, 멸시, 돌팔매, 외면이 동반됩니다. 그런 조롱, 멸시, 외면, 고난을 겪으면서 예수님이 겪은 고통과 상통하고, 그것이 진실로 예수님의 길임을 떠올렸던 사제단입니다. 핍박자, 조롱자들은 되려 사제단의 존재가치를 재확인시켜주었고, 어려운 시대에 알곡과 쭉정이를 판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기도 했습니다.
사제단의 힘은 특히 어려운 이웃, 그중에서도 핍박받는 이웃과 손잡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데 있습니다. 용산에서, 세월호에서, 부안에서, 강정에서, 이태원에서 사제단은 늘 아픔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함께함에 다른 종교인들과의 든든한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분파와 분열이 체화된 종교계에서, 사제단은 종교간, 종파간 벽을 허물고 서로의 존재가치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화해, 평화, 일치를 위한 노력에는 가장 앞장선 자세를 보여줍니다.
저는 얼마전 만주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따라다니면서, 봉오동에 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홍범도나 몇분 이름을 기억하는 정도이지만, 봉오동대첩은 홍범도와 무장독립운동가들의 공로일 뿐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고 희생을 무릅쓴 수백 수천 민중들이 함께 이룬 공로입니다. 아마도 사제단의 공적도, 사제단과 동행했던 수많은 신앙인들, 선열들과 후손들, 민주화와 인권을 갈망한 모든 이들과 함께 이룬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은 모든 이들이 함께 축하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며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의 인사를 교환해주시기 바랍니다.
50년 연륜을 쌓을수록 좋은 전통의 음미와 함께 늘 다시 새로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자리에 이르도록 미흡했던 점도 없었나 생각도 해가며, 새로운 다짐과 각성을 해나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과 실천으로 저희를 인도해주시고, 주님의 은총이 사제와 함께, 또 여기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