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예수》라는 세계의 탄생
= 강남순 교수
1. 오랜 시간 작업해 온 《철학자 예수》 가 <행성비>에서 5월 2일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질문 빈곤 사회 (2021)》 그리고 《데리다와의 데이트 (2022)》에 이어서, <행성B>에서 나온 세 번째 책이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예수’에 대한 책 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몇 가지 ‘사건들’이 있는데, 언젠가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낼 때마다 늘 경험하는 것이 있다.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저자는 1명이지만, 그 책이 나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언제나 여러명이 함께 하는 여정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이름을 볼 수 있는 책의 ‘판권’을 책 뒤쪽이 아니라 앞쪽으로 해 달라고 이번에는 특별히 ‘요청’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의 제목을 “책을 마치며, 새로운 시작을 향해”라고 했고, 다음과 같은 글로 매듭지었다.
2. “ . . . 책을 내면서 ‘정든다’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오랫동안 여러 나라를 옮기며 살아온 나에게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에서 ‘정듦의 경험’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데 나는 강화도의 <시인서가>에서, 어느 가을날 경희궁의 산책길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림태주 대표님과 이윤희 편집장님과 ‘함께의 시공간’을 경험했다, 그리고 셀 수조차 없이 수 많은 메시지와 이메일들로 서로 나누어 온 글의 언어를 통해, ‘정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언제나 ‘거기’에 서서 나의 글만이 아니라, ‘강남순’이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맞아줄 것 같은 관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경험한다.
나는 늘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처럼 “나는 나의 글쓰기에서 고향을 느낀다”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나의 고향 경험이 새롭게 확장되고 있다. 나의 글쓰기에서만이 아니라, 지난 3년여의 관계 안에서 ‘고향성'을 느끼고 경험하는 소중한 선물을 안겨 주신 행성B의 임태주 대표님, 그리고 이윤희 편집장님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예수”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은 이 지구 위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국적, 젠더, 인종, 종교, 나이, 생김새, 성적 지향, 장애 여부, 사회적 계층, 학력, 또는 출신 배경 등과 상관없이 서로를 ‘동료-인간’으로 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본다. 또한 “예수”라는 이름은 그 동료-인간이 제도적으로나 그 어떤 구조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존엄성을 지닌 고귀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낮꿈’을 꾸고, 실천하고, 변혁에 개입해야 하는 책임성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가 제시하는 ‘길, 진리, 생명’이란 결국 모든 생명이 서로 따스한 온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함께 살아감의 철학”이다. 나의 삶의 여정에 등장하셔서 나에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함께 살아감”의 소중한 의미를 일깨워주고, 경험하게 한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나의 미소를 전한다. 이제 이 작은 축제로서의 ‘커멘스먼트’를 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향해 ‘홀로,’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발걸음을 내디딘다.” (《철학자 예수》, 353~55쪽)
3. 자크 데리다가 상기시키듯, 우리의 “살아감이란 언제나 이미 ‘함께 살아감 (living-with)’”이다.
《철학자 예수》 라는 복합적인 세계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기대해 주시고, 의미 부여해 주시고, 그리고 축하해 주신 모든 나의 ‘동료-인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 책 표지의 배경이 되는 그림은 파울 클레 (Paul Klee)의 "Monuments at G"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철학자 예수
1장—거리의 철학자 예수 : 살아감의 지혜와 길의 제시자
2장—예수 구하기 :새롭게 만나야 할 예수
3장—사랑의 철학
4장—용서의 철학
5장—환대의 철학
6장—평등과 정의의 철학
7장—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 종교로 부터 예수 구하기
지금부터 “철학자 예수”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을 써본다
내가 다시 방향을 잃었을 때 봐야하기에 기록을 남긴다
~1장~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지연(defer)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함(non-knowing)이란 무지와 달리 의도적 비움의 의미
길들여진 예수의 장막을 걷어내고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와 환대를 가르쳐준 예수를 새롭게 만나고자 예수를 철학자라 호명
철학은 사랑(philo)과 지혜(sophia)가 합쳐진 단어다
예수는 해답자가 아닌 위대한 질문자(the Great Questioner)였다
예수의 삶은 철학의 실천에 들어간다
사유하지 않음이 죄가 되는 이유는 그 사유의 부재로 인해 다층적 차별과 혐오에 가담하고, 불의를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2장~
예수는 제도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바로 삶을 가르친 존재였다.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예수에 의한(by) 글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about) 글에서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단서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수는 해방과 개혁의 지지자
~3장~
고독이란 나 홀로 나 자신과 함께
한 존재 안에 두 존재가 있는 상태
탈낭만화와 탈자연화(교환경제)
결국 질문이나 답은 언제나 정황 특정적(context-specific) 이고 동시에 자서전 적이다
사랑은 삶의 의미를 창출하게 하는 언제나 새로운 원리
탈상투화의 과정
예수의 사랑 철학을 적용하는 범주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의도적인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어거스틴은 나는 신을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을 내가 나의 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What do I love when I love my God?) 무엇 만이 아니라, 어떻게(how) 까지 생각하는 것은 이 질문의 폭과 깊이를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한다
좋은 질문은 여러 세계로 잇는 성찰의 다리와 같은 기능을 한다
밑으로 부터의 철학
자신의 실천속에 체현된(embodied) 가르침을 전하는 것
~4장~
용서란 과거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전환점
한 인간으로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의미
본능적 분노, 파괴적 분노, 성찰적 분노
예수의 용서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데리다는 용서할 수 없는것을 용서하는것
~5장~
환대의 탈낭만화란 환대 행위는 언제나 위험의 가능성을 내포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적대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 않음의 적대, 생략에 의한 적대(hostility) 노골적 혐오를 표출하는 적대(hostility by commission)
예수의 환대의 특별점은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의 의미가 있는 것
환대의 원을 고정된 경계를 넘어서는 탈경계성의 환대, 무조건적 환대에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환대: 도래할 환대(hospitality-to-come)는 결코 도달 할수 없는 불가능한 환대다
환대는 오직 환대 넘어에서 일어날 수 있을 뿐 종교란 불가능성에의 열정
~6장~
영혼이 가난한 사람과 그냥 가난한 사람
중요한 것은 성서 기록은 인간이 했다는 것을 늘 인지하는 것이다
예수의 예화는 규범 전복하기(subverting the norm)의 전형
예수가 고도의 여성 혐오사회였던 유대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들을 온전한 인간 으로 대하고 관계했는가
살아있지만 죽은 존재로 간주되던 여성을 어떻게 온전하고 평등한 존재로 대했는가를 조명할 필요
예수는 매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식론적 사각지대가 있다
각자 지니고 있을 인식의 한계를 늘 상기하면서 예수를 조명해보자
예수의 평등과 정의 철학은 개별성의 윤리(ethics of singularity)에 근거
자케오와 자신을 초대함으로써 진정한 환대와 급진적 평등의 철학을 몸으로 보여준다
니체는 크리스천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복음도 그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모든 인간의 존중과 평등 사상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핵심임을 지속적으로 상기해야
일반화 된 정의가 아닌 매우 구체적인 정의
젠더 정의
생태 정의
성 정의
경제적 정의
정치적 정의
제도적 정의
세밀하고 복합적인 정의에의 인지가 필요
예수의 관심은 종교가 아닌 생명이며 함께-잘-살아감의 길이다
불가능성의 세계, 도래할 세계가 바로 신의 나라라고 상징 될 수 있다
신의 나라란 예수의 평등과 정의의 철학이 온전히 실현되는 세계
~7장~
존 카푸터의 말처럼 교회란 언제나 플랜B다 동시에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예수 아카이브 즉 예수의 기록 저장소다
인간이 만든 모든 종류의 제도들, 기구들은 언제나 플랜 B다
교회는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질문들에 응답하고자 함께하는 질문의 공간, 기억의 공간, 연대와 성찰의 공간이 바로 제도로서의 기독교이며 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길, 진리, 생명입니다
예수의 길은 무조건적 사랑, 환대, 용서, 책임, 평등의 삶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가 가 중요한 핵심이다
내가 신을 믿는다 고 고백할 때 그 고백은 나의 구체적인 삶에 어떠한 기능을 하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함
자크 데리다에게 신은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다
종교란 불가능성에의 열정이며 나아가 종교란 책임성이다
불가능한 사랑, 불가능한 용서, 불가능한 환대, 불가능한 평등과 정의에의 갈망과 추구가 바로 신이며 종교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존중받고 잘 살아가는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리 라고 할 수 있다
신 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와 해석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기도란 나 자신으로 부터 물러나서, 나—너머의 존재와 대화하는 의도적인 고독의 시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사유로서의 기도는 결국, 연민으로 이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러한 이들이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받는 정의와 평화의 세계다
예수의 이름으로 보다 나은 나 자신과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헌신을 확인하고 재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기도다
니체는 예수가 인류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를 실천하고 가르친 존재라고 말한다
모든 생명을 향한 사랑, 환대, 용서, 평등, 정의를 실천하고 구현하라고 가르치는 그 생명의 철학자, 함께 살아감의 철학과 가치를 가르치고 실천한 그 예수로 돌아가기를 해야한다
후기
후기가 꽤 오래 지체 된것은 나의 크리스찬 시절을 돌아보고 각 장에서 내가 뽑은 구절들이 어떤 의미에로 나를 이끌었는지 생각해 보느라 홀로만의 시간여행을 했다
“철학자 예수”
난 “탈낭만화, 탈자연화, 탈상투화” 에서 종교생활 36~7년중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뇌, 번민, 극한의 의문, 종교를 받아들인 후회, 바닥이 없는 허공에 디딘 발바닥의 오싹한 느낌, 방황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의 신앙생활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영세를 받고 약 20년은 예수에게 분노와 원망 그로 인한 냉담과 외면이었고 후반부는 예수를 찾으려고 고민하는 시기였다
구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잔혹성이 싫어서 성경공부를 해야한다는 성화에도 끌림이 없었으나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배운 뒤에 스스로 구약성경 공부를 찾아서 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하게 다가왔으니까
신약성서는 대선배 신자인 누군가가 글자 보다 비어있는 흰 여백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참 뜬금이 없네” 했었고 더구나 예수 부활, 성모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와 평생 동정녀, 몽소승천을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연결지어 설화 쯤으로 결론짓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 33세에 죽기까지 겨우 3년의 공적인 삶이 실제 사건임을 알아차리자 2000년 전에 참 훌륭한 청년이 있었고 그 사건들이 21세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와 크리스찬에게 규범으로 제시 됨이 마땅하다고는 여겼으나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무엇인가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부터 가톨릭 공부만이 아닌 타 종교와 어릴 때 접했던 불교, 그림그리며 배운 동양철학(공자, 맹자, 장자, 노자), 중국을 풍미하던 시인들의 당시(唐詩) 등을 다시 꺼내도 보고 수업도 듣고 여기저기 시민사회단체의 사회적 맥락의 강의도 들으면서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 안에 퍼즐 조각들이 어지럽게 자꾸만 얼기설기 쌓여 가는데 맞출 수 는 없어서 늘 갈급하게 지냈다
믿을교리와 실천교리가 나란히 날개를 펼쳐 날아야 완전하게 나르는 새가 된다는 이론을 알게되고 노력했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불면의 밤을 지새며 고통을 짊어진다
“철학자 예수” 는 이런 나에게 쌓여있는 퍼즐을 맞춰 하나의 그림을 완성 할 수 있는 용기와 방법을 찾아줬다
“도래 할 용서, 도래 할 환대, 도래할 사랑, 도래 할 정의, 도래 할 평화” 의 길이 열렸으니 방향이 설정 된 그 길을 한 발짝 씩 가기만 하면 된다
퍼즐조각들을 앞에 펼쳐 어느곳에 끼울지 어떤 그림을 만들 지 비록 모두 맞추지 못한다 해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예수를 구하는 것이 곧 나를 구하는 것이고 나를 구할 수 있어야 도래할 모든것에 자신감을 갖고 씨 뿌려 가꿀 수 있다
나만의 방법과 나만의 깜냥이 만나 거름도 되고 햇살과 바람, 구름과 비가 되어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난 또 어느 때 인가 불면의 밤에 괴로워 하겠지만 성장통이라 여기고 앞으로 나가리라~
내게는 태어날 때 울 함니가 지어주신 이름 영인(英仁), 스승님이 지어주신 이어당(二於堂)이 있고 세례명 루치아가 있다
세개의 이름 모두를 이제 다 좋아 할 수 있다, 루치아가 부담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제 부터 좋아해주기로 했다
예수와 함께 가는 길이 꽃길이 아닌 험난한 길이라고 막연히 생각만으로 가늠을 하면서 지냈으니 이제 “철학자 예수와” 토론도 하고 술도 한 잔 기울며 시를 읊을 시간도 갖어야겠다
흔들리는 시간의 루치아도, 절망에 넘어지는 루치아도, 짙은 안개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루치아도 되겠지만 “철학자 예수” 라는 등대의 불빛을 도래 할 희망으로 삼았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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