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일 / 고영민
나무 아래 앉아 울음을 퍼 담았지
시퍼렇게 질린 매미 울음을
몸에 담고 또 담았지
이렇게 모아두어야
한철 요긴하게 울음을 꺼내 쓰지
어제는 안부가 닿지 않은 그대 생각에
한밤중 일어나 앉아
숨죽여 울었지
앞으로 울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
꾹꾹 울음을 눌러 담았지
아껴 울어야지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 울어야지
- <햇빛 두 개 더> 고영민, 문학동네
문청시절에 머리 박박 밀고서 술집에서 나한테 한판 붙자고 덤비던 후배는 자라서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가 덤비면 고추밭 고랑으로나 가서 숨어야지요. 좋은 시 쓰는 놈이 어른입니다. 고영민 시인의 시는 여전히 치열합니다.
노벨문학상 덕분에 "출판 활황"이라고 언론이 호들갑 떨지만 개뿔! 그나마 조금씩 팔리던 책들조차 한강 특수에 밀려서 안 팔립니다. 우리나라는 뭐든 모 아니면 도입니다. 영화도 하나가 뜨면 나머진 다 죽습니다. 다들 1년치 문화비 예산이 정해져 있는지 유명한 책 한 권, 영화 한 편 보면 그걸로 한 해가 마감입니다. 곤란합니다.
이렇게 귀한 책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강원도 도계 탄광촌 출신 정지민 시인의 시집은 오랜만에 읽는 돌직구 서정시편입니다. 정직한 시는 언제나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권혁재 시인의 시집 <자리가 비었다>는 산문시가 단 한 편도 없습니다. 이 방만한 시대에 놀라운 운문정신입니다.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커피라이터 정철 선생의 <인생을 건너는 단 한 문장>은 차차 한 꼭지씩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높은 아포리즘의 향연입니다. 책 자체가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염색가 신상웅 선생의 인문에세이 <푸른 기록>, 너무나 재미져서 늘 탁자에 두고 읽는 <사카나漁와 일본> 등등, 좋은 책들과 함께 일요일 하루가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두 권만 꼭 사 주세요. 책 앵벌이는 늘 외롭습니다.
- 시인 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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