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당

김근수의 『예수운동: 역사와 신학』(논형, 2024, 517쪽)를 읽고. 글쓴이: 감신대 박충구 교수

ree610 2024. 6. 13. 09:50

김근수의 『예수운동: 역사와 신학』(논형, 2024, 517쪽)를 읽고.

        ㅡ  글쓴이: 감리교신학대학교 박충구 교수

박충구 교수님은 평생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 윤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신 분입니다. 제가 무척 존경하는 학자십니다. 박 교수님은 김근수 선생의 최신 저술을 읽고, 장문의 논평을 쓰셨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부분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크게 공감되는 점이 있기때문입니다.

외람된 일이지만 읽기에 편하도록 원문의 단락을 제가 쪼갠 곳도 있습니다. 혜량을 빕니다. 백승종 삼가.

... 저자는 예수운동은 “외부로부터는 박해를 받았고,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위기에 끊임없이 시달렸다”고(353) 언급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는 이들의 의연함이 있었기에 예수운동은 세속적 탐욕과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러한 힘에 굴복하려는 유약한 이들이 예수운동 내부에서 부단히 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도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함, 그리고 내부의 유혹을 계속 걸러낼 정화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예수운동 공동체로서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하느님 나라의 전조(前兆)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공동체가 예수운동의 근본 성격이었다면, 그 실천지평은 영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서도 전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느님은 역사의 주님인 동시에 개인의 주님이기도 하다는 고백이 담긴 예수 운동의 특징을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예수운동) 공동체에서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았고, 누구도 지도층으로 거만하게 처신하지 못했다. 특별한 임무나 은사를 부탁받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지도층 행세를 하지 못했다. 공동체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거나, 사람들을 위아래로 나누고 가르는 권력 구조가 예수운동 공동체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 이천년 역사에서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평등이 실천된 시기는 예수운동 1세기였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구절이다. 이것이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의 원형이다. 해방과 평등이 실현된 공동체다.

“예수를 바라보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성서로 돌아가자! Again!"

구호를 외치기 전에 우리는 예수운동의 원형에 대한 바른 이해부터 먼저 가져야 한다.

이 책은 혼란과 갈등이 깊은 오늘의 한국 교회 한복판에서 예수운동의 본질과 원형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독서후기 ㅡ 박충구 교수

김근수 『예수운동: 역사와 신학』(논형, 2024, 517쪽)를 읽고.

1.
해방신학 연구소 김근수 소장께서 또 하나의 역작을 냈다. 『예수 운동 역사와 신학』 (논형 출판사 2024)이다. 나는 김 소장님의 공부하는 자세는 모든 신학도들이 본 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은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새벽 4시면 잠에서 깨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하루에 원고지 10매를 쓰기 위해 책을 읽는다. 1년이면 3,650매의 글을 쓰는 셈이다. 한 해에 한 두 권의 저서가 나오는 비결이다. 참고도서 목록을 빼도 이 책 본문은 무려 477페이지에 달한다. 시간을 내서 정독하는 데 꼭 이틀이 걸렸다. 기독교 윤리학도로 살아온 나의 입장에서 성서 신학자의 학문적 저작을 일방적으로 평가하거나 비평하는 일은 주제 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작업은 성서신학자들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랜 시간 저자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낸 저서를 감사한 마음으로 귀하게 읽고 후기를 쓰는 것은 허락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가 짧고 부족해도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2.
저자는 예수운동의 역사와 신학을 다루기에 앞서 예수운동을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 보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1세대 예수운동은 주후 30년에서 66년에 이르는 기간을 이른다.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거나 함께 경험했던 이들의 증언이 예수운동의 내적 동력이 되었던 시기다. 이 기간에 저자는 예수를 직접 만났던 적이 없었던 바울의 저작들까지 포함시켰다. 그리고 유대 독립전쟁의 여파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시기를 지나 제 2기의 예수운동이 새롭게 전개된 것으로 보아 이를 2세대 예수운동이라고 명명했다. 저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중심한 예수운동이 1세기에 제 1차, 2차 운동기를 지나면서 어떻게 예수운동 그 자체를 형성해 나갔는지를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수운동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일종의 입체감을 느꼈다. 간혹 신앙 운동을 성서 텍스트를 선택적으로 택하는 문자적 이해나, 혹은 성서 이후에 형성된 교리 중심적 시각에서 이해하거나, 심할 경우 매우 단선적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조금 넓게 보아 평면적으로 이해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100년의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1세기 역사 속에서 예수 운동이 종교, 문화, 정치적인 맥락에 따라 각기 달리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1세기에 전개된 예수 운동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그 다양성이 성서에 그대로 담겨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예수운동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직설적 정의를 내리지 않고 예수운동을 해명하려 한다. 예수운동은 유대교에서 나왔고, 유대교와 결별했고, 1세기를 전후한 철학 혹은 종교 사조들 속에서 예수운동 자체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그 중심축은 물론 예수의 삶과 사상 속에 담겨있는 “하느님 나라“다.

3.
하느님을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종교마다 방법을 달리하며 해명하려 할 것이다. 유대교는 유대교 방식의 초월적인 하느님 이해가 있고, 철학자들은 철학적 논변을 통해 완전한 신 개념을 주장하기도 했다. 예수운동은 하느님이 예수 속에서 계시된 분으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예수를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 주장은 기독교 신학 초기에 무수한 논쟁거리를 불러온 주제다. 인간 예수가 하느님이라는 주장은 어떤 종교나 철학 전통에서는 신성모독적인 주장이 되어 부정되었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 예수가 하느님이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지 많은 이들이 이 지점에서 곤경을 겪었다.

예수는 로마제국이 아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주권을 선포하면서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전하는 메신저였다. 그 이유로 그는 정치범으로 몰렸고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했지만, 3일 만에 부활한 존재로 고백되었다. 성서에서 예수의 부활이 몸의 부활로 묘사되었고, 무수한 목격자들의 기록을 남겼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믿는 이들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무리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의 합리성은 사실적 진술과 상징적 진술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비합리적 사유를 통해 인간과 구별된 신격화된 예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사유를 받아들인 예수운동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희망의 샘에 더 주목한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다가 로마 제국의 폭력에 의해 고난과 죽음을 겪은 예수의 부활 사상은 사실 로마 제국의 폭력성에 지상권(地上權)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상의 열매라고 보는 까닭이다. 예수의 생명과 사상이 로마의 포악에 멸절 당할 것 같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예수 공동체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의 몸의 부활보다 예수의 삶과 사상의 부활을 더 중시한다. 이 부활 사상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성령강림 이후 예수운동 공동체를 지상의 어느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공동체로 활성화 했다.

이 부활 사건은 바울에게서도 선명하게 재현된다. 다메섹으로 향하던 바울이 만난 예수는 부활한 예수였고, 그 예수를 만남으로써 그는 예수의 삶과 사상을 전하는 소명자로 초대된 것이다. 예수를 믿는 이를 박해하던 자가 예수운동의 기수가 된 이 사건은 역사 속에서 끝없이 재현되어왔다. 사유만으로 견고한 신앙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는 것은 개인적 신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그 신앙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강화했다. 신도들이 예수의 생애와 사상에서 하느님의 행위를 고백하게 된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에 추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하느님의 행위는 하느님의 나라의 지평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 공동체는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경험했고,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뜻을 볼 수 있었다. 예수가 하느님 나라의 주님이라는 믿음을 가진 공동체의 형성이 예수운동의 중심축이 된 것이다.

4.
예수 공동체는 각기 처해진 정치 종교 사회적 특성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다양한 예수운동의 양상을 보였다. 갈릴리에서 시작했다는 증언, 예루살렘 예수운동을 중심으로 본 증언,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모두 아우르는 예수운동 등이 전개되었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일치를 이루려 노력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대전통주의자들과 그리스 철학에 우월성을 둔 이들은 예수의 인성이 걸림돌이 되었고,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가질 수 없어 예수운동과 결별하기도 했다. 제 1세대 예수 운동이 예수에 대한 회상과 기억에 의존하여 예수운동을 전개했다면, 제 2세대 예수운동은 회상과 기억이 사라져가는 후기 정황에서 문서적 기록을 남기려는 이들에 의하여 전개되었다. 복음서는 대부분 이 기간에 기록되었고, 저자들도 자신의 종교 문화적 전통 속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개별적 시각을 담아 글로 남겼다. 이 문서화 과정에서 유대교와의 선명한 결렬이 일어나 예수운동이 차별화 되었고 유대민족주의를 넘어서 모든 인류를 위한 운동으로 보편화되었다.

바울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선포했다. 반면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선포한 것은 하느님 나라라고 기록을 남겼다. 바울은 예수의 삶과 생애에 대한 증언보다는 예수의 그리스도 됨에 주안점을 두고 문서를 기록했다. 이로써 그는 기독교 신앙의 이방 선교적 과제에 큰 공헌을 남겼다. 바울이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다소 간과하고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역사적 증언을 남겼다. 바울은 하느님 나라의 증언자로서의 예수보다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더 강조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침묵시키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한 해석에 더욱 관심했다. 따라서 계명과 실천, 윤리적 실천을 다소 경시했고, 신앙의인을 강조하는 결과를 남겼다. 이런 바울에 대하여 복음서 기자들은 다소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 하여 그들은 율법의 완성자로서의 예수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야고보는 바울의 주장에 정면 대치되는 입장을 취하며 행위 없는 믿음의 무익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5.
저자는 1차 예수 운동보다 2차 예수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1차 예수 운동에서 다소 혼란스러웠던 유대교와의 연속성 문제나 신앙의인 일변도의 논리가 2차 예수 운동에서 정리되는 것으로 보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운동의 핵심을 “자유와 해방의 복음“(283)이라고 규정하고 기존의 그리스-로마 제국의 문명사 속에 내재해 있던 억압적인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된 지평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하느님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서 계신다는 것이다. 성서에는 부자에 대한 경고나 비난은 많이 담겨 있지만 예수가 가난한 이를 나무라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376). 특히 복음서의 맥락에서 본다면 더욱 그렇다. 반면 바울 서신에서는 권력에 대한 복종이나 기존 노예 질서에 순응하는 논리가 다분히 깔려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복음서 기자들이 바울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바울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한계는 어쩌면 예수의 생애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고, 박해기에 예수운동이 로마권력에 의해 더 큰 핍박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한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의 그런 타협적 태도가 글로 남아 세속 권력자들이 세속 권력의 정당성을 성서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논거로 쓰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역사적 자유와 해방의 복음이 바울에게서는 영적 자유와 해방으로 축소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

마지막으로 예수운동의 초기 양상은 오늘의 교회보다 훨씬 평등주의적인 공동체(197)였고, 차별이 없었다.  네로의 박해 이후 간헐적으로 지속된 박해기에 무수한 이들이 순교했다. 바울도, 베드로도, 야고보도 순교를 당했다.  이런 지경이니 어디 사제나 직제, 계급이 있을 수 있었겠나 싶다. 예수운동 2기 말에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가 잦아들면서 예수운동의 지속성을 위한 방안들이 제기되었고, 그 여파로 교회가 제도화되기에 이른 셈이다. 저자는 원래 희랍어, “에클레시아“는 투표권을 가진 자유모임 공동체를 의미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교회라는 의미는 예수운동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예수운동 공동체의 속성에서 거리가 먼 것들도 섞여 있다. 예수는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운동이 아닌 예수운동을 해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운동 내부에는 신분질서나 성직주의도 없었다. 죄와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하느님 백성들의 평등한 공동체, 그것이 예수운동 초기의 그림이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는 예수운동의 원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예수 공동체가 아닌 예수 공동체를 빙자한 사이비 예수 공동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6.
저자는 예수운동은 “외부로부터는 박해를 받았고,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위기에 끊임없이 시달렸다”고(353) 언급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는 이들의 의연함이 있었기에 예수운동은 세속적 탐욕과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러한 힘에 굴복하려는 유약한 이들이 예수운동 내부에서 부단히 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도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함, 그리고 내부의 유혹을 계속 걸러낼 정화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예수운동 공동체로서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하느님 나라의 전조(前兆)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공동체가 예수운동의 근본 성격이었다면 그 실천지평은 영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서도 전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느님은 역사의 주님인 동시에 개인의 주님이기도 하다는 고백이 담긴 예수 운동의 특징을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예수운동) 공동체에서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았고, 누구도 지도층으로 거만하게 처신하지 못했다. 특별한 임무나 은사를 부탁받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지도층 행세를 하지 못했다. 공동체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거나, 사람들을 위아래로 나누고 가르는 권력 구조가 예수운동 공동체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 이천년 역사에서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평등이 실천된 시기는 예수운동 1세기였다(9).”

깊은 여운을 남기는 구절이다. 이것이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의 원형이다. 해방과 평등이 실현된 공동체다. “예수를 바라보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성서로 돌아가자! Again!" 구호를 외치기 전에 우리는 예수운동의 원형에 대한 바른 이해부터 먼저 가져야 한다. 이 책은 혼란과 갈등이 깊은 오늘의 한국 교회 한복판에서 예수운동의 본질과 원형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