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7:11~21 <다시 갇히다>
찬송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Ⅱ. 예레미야의 투옥 (렘 37:11-21)
(1) 기회가 생기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시골로 도망치려고자 한다(11,12절).
바로의 군대로 인하여 `갈대아인의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떠났을` 때 예레미야는 시골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포위망이 풀린 틈을 타서, 살 궁리를 찾아 시골로 가는 백성들 틈에 끼어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리 속에 묻혀서 오막살이에서 사는 것을 만족해 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는 아무런 유익도 끼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그러므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2) 이를 시도하는 중에 예레미야는 탈주자로 간주되어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13-15절). 그는 `베냐민 문`에 이르렀다. 그때에 아마도 그 문을 지키는 책임을 맡은 것처럼 보이는 `문지기의 두목`이 그를 발견하고는 체포하였다. 그 문지기는 하나냐의 손자이었는데,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와 논쟁을 벌였던 거짓 선지자 하나냐( 28:10 렘 28:10)의 손자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젊은 문지기 두목은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레미야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고 추가로 설명되고 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라는 죄목을 부과하였다. 이는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갈대아인들은 이제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사려 분별과 무죄에의 확신, 그리고 온유함을 지닌 예레미야는 이 죄목을 부인한다. 망령되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나는 합법적인 일신상의 문제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가 선지자이었으며 그의 말은 제사장으로서의 말이었지만 자기의 결백에 대한 그의 하의는 고려조차 되지 못하였다. 그는 사적인 방백 회의에 끌려갔고, 그들은 사실을 조사해 봄도 없이 문지기 두목의 비열한 거짓 증언을 근거로 그를 마구 취급하였다. 방백들은 노하여 그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 감옥은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있는 가장 극악한 감옥이었다. 이 감옥 안에서 `토굴` 속으로 예레미야는 내던져졌다. 그곳은 어둡고 추우며 습기차고 더러운 곳이었다. `옥` 곧 `음실`에서 그는 유폐되었다. 예레미야는 거기에서 여러 날 동안 거하였다.
(3) 시드기야가 마침내 그를 위해 사람을 보내어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아마도 갈대아 군대가 다시 쳐들어와 성을 포위한 이후에야 그러한 듯싶다. 그들의 헛된 소망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일찍이 있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혼란에 처해 있었고 크게 당황하였다. "그러면 황급히 선지자를 불러 오라. 내가 그와 상의 하리라"고 시드기야는 말했을 것이다.
1) 왕은 그를 하나님의 사자로 생각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자 불렀다. 시드기야왕이...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17절).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부끄러이 여겼다. "위로할 말씀이 있느뇨 갈대아인들이 다시 퇴각하리라는 어떤 희망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느뇨" 예레미야의 생명과 안위는 시드기야왕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나 왕은 지금 오히려 예레미야의 호의를 바라 요청을 하고 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가졌을 때 예레미야는 "있나이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백성을 위한 위로의 말은 없나이다"라고 명백하게 말한다.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 만일 예레미야가 육신의 요구대로 하였다면 듣기 좋은 대답을 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처하여 자기를 가장 최악의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는 말을 해야 할지, 아닐지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신실하게 하시는 여호와의 자비를 얻은 자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비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나 자신의 군주에게나 불충실하게 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시드기야에게 진실, 곧 온전한 진실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왕과 그의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신뢰한 사실을 책망하였다. 그들은 바벨론 왕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으며 그가 일단 퇴각하였을 때도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말하였던 것이다(19절).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왕께서 평강하리라고 예언했던 자들이 어디 있나이까"
2) 예레미야는 이 기회를 가련한 죄수로서 사적인 청원을 하는 기회로 사용한다 (18,20절). 그는 겸손히 왕에게 간구한다.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내가 무슨 율법을 파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그는 진지하게, 또한 매우 애절하게 간청한다(20절). "나를 저 더러운 감옥,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니이다."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여기에는 방백들이 자기를 부당하게 취급하였다는 한 마디의 불평도 없다. 오로지 왕에게 정중하게 간청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는 사자와 같아도 자기 자신의 일에 관하여는 양과 같아져야 한다.
① 왕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토굴에서 죽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그로 `시위대 뜰`에서 지내면서 자유로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였다.
② 왕은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공용물자 가운데서 그에게 `매일 떡 한덩이씩 주게` 하였다.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를 석방하여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한 것도 잘한 처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감금당하는 것들도 유익이 되게 하시며 감옥의 뜰로도 푸른 초장같이 되게 하신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예레미야 37장16절 / 개역개정)
** 인생의 웅덩이 속에서
* 예레미야를 붙잡으려는 구실(37:12-15)
적대자들이 예레미야를 붙잡으려는 구실은, 예레미야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고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단지 베냐민 땅에서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려 했을 뿐입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친애굽파인 왕과 그의 방백들에게 친바벨론파로 의심받아 옥에 갇혔습니다.
*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의 비밀 회담 (37:17-20)
본문은 시드기야와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멸망 선언입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 알려진 예레미야로부터 희망적인 소식을 듣고자 했으나 실패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레미야는 듣는 자의 신분이나 자신의 처지를 초월해 진실한 말,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 사람에게 듣기 좋게 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빼거나 더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