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렘브란트 작, 사도 바울, 1657년경

ree610 2024. 4. 27. 10:37

렘브란트, 사도 바울, 131*104cm, 1657년쯤, 워싱턴

사도 바울이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글자를 기록합니다. 초창기 교회에는 어떤 제도나 교리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씩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초기 개척자였습니다. 이미 누군가 닦아놓은 길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면서 가는 것은 위험하고 두렵고 상처를 많이 받는 일입니다. 바울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기독교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면서 가야 하는 어려운 사명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폭력에 시달리고 살해 협박에 두려워했고, 실제로 감옥도 갇혔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으며 마침내는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400년 전, 렘브란트가 사도 바울을 그렸습니다.
감옥에서 바울은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자유의 몸이라면 당장 달려가서 설득하고 야단치고 바른 기준을 제시해서 교회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그는 지금 갇힌 몸이기에 편지로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교회 문제는 단순하지 않아서 해결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도 안 되고 내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글을 쓸 때는 대개 그 옆에 칼이 놓여 있습니다. 화가는 말씀의 검을 수직으로 책상 옆에 세워두었습니다. 실제로 감옥에 갇힌 죄수가 칼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화가는 바울이 지금 서신을 쓰는 마음의 자세, 강직하고 분명하고 단호하고 사사로움을 넘어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강렬한 사명감에서 글을 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화가는 빛이 바울의 왼쪽 위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빛은 바울의 얼굴과 손과 책상 위에 집중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른손에 펜을 들고 묵상에 빠집니다. 쉬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심합니다. 그의 펜은 이미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화려하거나 새롭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문자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인생과 역사의 구원입니다.
책상 위에는 종이들이 놓여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그 위에 글씨가 기록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가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감추어졌던 구원의 계시가 이제 우리에게 열릴 것입니다.

바울은 고민합니다.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손을 이마에 대고 어떻게 써야 할지 속태우고 있습니다. 성경도 윤동주의 시 이상으로 쉽게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고 숙고해서 대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바울이 공부한 지식과 체험했던 경험만으로 이 서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의 뜻은 무엇일지를 바울은 지금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은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인생이 뭐냐고 물어보면 한마디로 쉽게 대답할 수 없듯이 기독교 신앙도 인생과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마에 손을 짚고 깊이 생각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신앙인의 삶 중심에는 늘 이 물음이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물인 바울의 서신들은 불후의 명작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단순히 사람의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신 거룩한 말씀이라고 공인받고 성경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결코 쉽게 쓰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어렵게 쓰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고민과 기도와 숙고를 통해서 쓰인 성경은 주님의 마음으로 읽으려고 애써야만 우리는 성경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ㅡ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