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릇 경전
ㅡ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어 무심히
먼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다다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내려 가다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의 선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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