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현재의 언론은 여론을 반영하는가?

ree610 2022. 2. 24. 15:33
D-13 현재의 언론은 절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 기자협회가 현직기자를 대상으로 한 언론사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연속 3년간 한겨레가 1위를 했고 2017년부터 연속 3년은 JTBC가, 2020년에는 조선일보가 신뢰도 1위를 했다. 최근 10년간 현직기자들의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조사결과다. 그러나 2020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조사한 영향력 및 신뢰도에서는 조선일보가 10위로 추락했다. 조선일보의 추락은 스마트폰의 보급과 같은 통신환경의 다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조선일보의 기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미디어 오늘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일보 신입 공채 합격자 232명을 전수 조사한 것에 따르면 109명(47%)이 서울대였고 서울대를 포함한 SKY가 무려 187명(81%)이었다. 조사당시 조선일보는 편집국장, 정치부장, 경제부장, 사회부장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 조선일보는 비서울대 출신이 편집국장을 맡은 사례가 없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1974년부터 방일영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해 왔는데 2020년에는 14명 전원이 SKY였고 21년 졸업생의 절반 가까이는 서울대 로스쿨로 진학했다. 방일영 장학생 선발에 있어 특히 서울대 정치학과의 비중이 가장 높은데 정계, 언론계, 법조계로 진출하는 이들을 기성 정치인들과 학벌로 연결시킨다. 이들에게는 등록금 전액과 매달 생활비 60만원이 제공되며 조선일보 임원들, 역대 방일영 장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스킨십을 넓힌다.

1974년 이후 763명이 이 장학금 수혜를 받았는데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SKY이며 경영, 경제, 법대 계열이다. 정재계, 법조계, 언론이라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카르텔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방일영 장학생 출신의 정치인으로는 원희룡, 여상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 서열을 내면화하며 졸업 후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기업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의 관계가 모두 선후배로 연결되는 것이다. 정치부 기자가 정치인을 만나거나 정치인의 비리를 다룰 때 선후배 관계가 맨 앞에 놓이고 경제부 기자가 학교 선배인 기업인의 비리를 보도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영화 <더 킹>에서처럼 이들은 ‘선배’ 호칭을 씀으로써 객관적·사회적 관계를 왜곡시키고 그들만의 카르텔이라는 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아는 사람'의 일에 얼마나 공정하고 냉철한 인식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행정, 입법, 사법, 언론 4부를 장악하며 한국사회 상부구조의 극소수 명문대 독과점이라는 폐해를 양산한다. 언론인들은 학벌경쟁을 긍정적으로 보고 미화 할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조선일보는 마음에 안 들어도 이것만은’ 하며 학부모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에듀 섹션을 통해 수월성 교육과 그들만의 리그를 선도해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는 출신성분이 다양할까. 2016년 방송기자연합회에서 KBS, MBC, SBS, YTN 기자 1287명의 출신학교를 전수 조사했는데 SKY가 60.1%였고 서울과 수도권이 46.5%, 영남 20%로 수도권과 영남이 무려 76.5%를 차지할 만큼 지역편중 현상이 매우 심했다. 남성 81.4%, 여성 18.6%로 성비 격차는 4.4배나 달했다. 그나마 95년 이전 입사자 3-7%에 비하면 여성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최근에는 61:39로 6:4의 성비를 보여 상대적으로 많이 평평해졌다.

자본주의를 먼저 개척한 나라들은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토대 위에 직업윤리가 매우 중요하게 자리했다. 특히 공공의 영역에서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자, 성직자, 교사들은 더욱 엄격했고 지금도 그런 전통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대선보도는 기계적으로라도 공정을 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직업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그런 원칙이 다 무너진 지금 한국의 언론은 어떤 이들이 뉴스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지만 보아도 그 이유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으로 대변되는 대학의 서열화가 고착화된 한국은 더 이상 다양한 계급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는 구조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운 지금의 대학구조에서는 삼권분립과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언론이라는 민주주의 견제장치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막강한 지원 하에 언론으로 진출하고 행정, 사법부로 진출한다. 흙 한번 만져볼 일 없고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사회의 상부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계급계층간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진 지금 밑바닥의 목소리를 전해줄 수 있는 스피커는 끊겨있으며 중간층의 목소리도 파묻히기 일쑤다. 어릴 때부터 입시에 내몰리며 최상위권만을 목표로 성장한 아이들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니 그들이 말하는 부동산과 공정은 그들 자신이 기준인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법은 불공정하고 영끌해서 부동산을 샀는데 폭락한다고 투정을 부리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노력해온 이들에게 불공정한 것이라고 분노한다.

언론이 필터링하여 보여주는 20대의 목소리는 소위 서울 상위권 대학 중심, 기득권에 편입되고자 욕망하(할 수 있)는 이들 중심으로 지나치게 과다대표되고 지방의, 중산층의 경계와 서민계층 출신의 20대의 목소리는 대변하지 못한다. 언론에서 마치 20대의 일반적인 목소리라고 반복하여 협박하는 것은 사실 극히 일부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 목소리라는 것이 고작 남초커뮤니티이거나 각대학의 대나무숲인 경우가 많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여성을 혐오하고 사사건건 불공정을 외치는 정신나간 20대들이 정작 지방에 사는 내 주변에서는 쉬 찾아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서울대를 위시한 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사회운동을 선도해왔던 시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읽기 어렵다.

어제 ‘대장동 그분’ 조재연 대법관 기자회견에 대표적인 일간지들이 쏟아내는 사설은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방증한다. 단순히 언론중재법으로는 언론지형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비이성적, 야만적 면모는 능력주의가 빚어낸 SKY라는 괴물이 만든 결과다. 그리고 그들이 필사적으로 이재명을 악마화하고 가난한 소년공 출신임을 은근히 멸시하는 이유다. 이는 소위 진보연하는 껍데기 지식인들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