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
ㅡ 시인 구 상
어느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하고 읊었지만
나는 마음이 하도 망측해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고 어쩌구 커녕
숫제 두렵다.
일일이 밝히기가 민망해서
애매모호하게 말할 양이면
나의 마음은 양심의 샘이
막히고 흐리고 더러워져서
마치 칠죄(七罪)의 시궁창이 되어 있다.
하지만 머리 또한 간사하여
여러 가지 가면과 대사를 바꿔하며
그래도 시인이랍시고 행세하고
천연스럽게 진, 선, 미를 입에 담는다.
그뿐인가? 어디
아침저녁 건성기도문을 외우고
주일마다 교회 예배는 빠지지 않고
때로는 신앙의 글도 쓰고 말도 하니
옛 유대의 바리사이와 무엇이 다르랴!
하기는 이따금 그 진창 속에서도
흙탕과 진흙을 말끔히 퍼내어 뚫어서
본디의 맑은 샘을 솟게 하고 싶지만
거짓으로 얽히고설킨 세상살이의
현실적 파탄과 파멸이 무서워서
숨지기 전에는 엄두를 못내지 싶은데
막상 그 죽음을 떠올리면 이건 더욱
그 내세가 불안하고 겁난다.
이 밤도 TV에서 저 시구를 접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암담 속에 잠겨 있다가
문득 벽에 걸린 십자가 상을 바라보고는
그 옆에 매달렸을 우편강도처럼 주절댄다.
주님! 저를 이 흉악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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