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신앙거목은 오늘도 자란다
사회·민족운동 이끌어 온 118년 역사유적, 끊임없이 믿음의 유산 만들어가
▲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승동교회와 작년에 개관한 승동역사관. 승동교회는 설립 초기 사회계층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3·1운동 이후 교회의 수난기를 거쳤지만 보수적 신앙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실제적이며 건전한 교회로 성장했다. |
인사동은 언제나 사람이 넘쳐난다.
미술관, 화방, 전통음식 전문점, 찻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인사동 거리는 1960년대 미술품과 골동품 상점들이 들어선 이래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면서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를 열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골목골목마다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되고 온갖 예쁜 미술품, 공예품이 다 모여 있는 인사동 거리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은 다름 아닌 한국 장로교의 모교회인 승동교회다. 인사동이 그 이름을 갖기 이전부터, 문화의 거리로 자리 잡기 전부터 승동교회는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곧게 서 있었다.
종로 2가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초입에 승동교회를 가리키는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교회의 역사와 홍보물이 게시된 좁다란 골목을 지나면 숨겨져 있는 예배당의 모습이 드러난다. 붉은 벽돌을 쌓아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박공지붕을 인 정방형의 로마네스크 건물, 단층 건물이지만 지상층의 높이가 2층 건물에 달해 북한산을 배경으로 솟아난 기념탑 같아 설립 당시에는 웅장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현재의 예배당 모습에는 웅장함보다 겸손함이 엿보인다. 1세기를 거쳐 온 교회지만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정교하기보단 다소 엉성하게 올려 진 벽돌 사이에 소박함이 묻어나고 오래된 집처럼 친근함이 느껴졌다. 건축물도 그 곳에서 생활한 사람을 닮는다고 할까나, 선교 초기에 백정을 섬기고, 일제강점기 때는 맹인, 고아, 걸인을 섬기며 항상 낮은 곳을 바라봤던 믿음의 선진들의 오랜 향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118년 승동교회의 역사는 복음적 신앙을 기반으로 한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점철된다. 1893년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무어 목사가 지금의 롯데호텔 부근인 곤당골에서 16명의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면서 출발한 이후 홍문섯골교회, 구리개교회, 승동교회로 이어지는 동안 양반과 백정의 계속된 반목의 시간의 거쳤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시절 양반들은 백정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에 못마땅하게 여겼고, 갑오개혁 이후 백정 출신 박성춘에게 직분을 줄 때에도 거듭 반대를 외쳤다.
그때마다 승동교회는 답변은 언제나 같았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 사무엘 무어 목사가 말한 이 한마디로 대변된다.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던 지도층의 요구보다는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했던 예수님의 행함을 따랐을 뿐이다.
신분철폐의 선구자의 역할을 다진 승동교회의 정신은 일제의 압박에도 물러섬이 없었다. 3.1운동 때 교회 면려청년회장이던 김원벽은 만세 시위를 모의하고 학생 시위를 주도했으며 당시 당회장 차상진 목사 역시 일본 정부에 한국의 독립을 촉구하는 ‘십이인의 장서’를 제출하고 옥고를 치렀다. 그들의 지난날 투쟁의 잔상은 예배당 앞뜰에 3.1독립운동의 기념터라는 표석으로 고이 새겨져 있다.
이렇듯 서울시가 승동교회를 역사적 유적으로 가치를 매긴 데는 다만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보존을 잘 해서만이 된 결과는 아닐 게다. 그보다는 승동의 선배들이 실천한 무형의 역사적 가치가 교회 곳곳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01년 4월, 승동교회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130호로 지정되었다. 교회로서는 교회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게 됐기에 처음부터 반긴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받아드렸다고 한다.
당회장 박상훈 목사는 “승동교회의 문화재 지정은 한국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뿐 아니라 100년 된 오래된 건물을 서울시의 도움으로 튼튼하게 리모델링을 할 수 있었어요. 감사한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죠”라며 만족해했다.
승동교회는 2009년 6월까지 3년여의 걸친 대대적인 예배당 리모델링으로 새단장했다. 리모델링의 주안점은 원형 그대로 보전하면서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것. 현대식이라 하여 크리스탈이나 화려한 장식으로 낸 멋을 추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기존 성구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한 상태에서 원목으로 교체했을 뿐이다. 때문에 예배당에 들어서면 신앙의 고향을 찾은 듯 하고, 어머니의 품을 느끼듯 편안함이 찾아온다.
또 2010년 4월에는 승동역사관을 개관했다. 설립자 사무엘 무어 목사부터 역대 담임목사의 사진과 프로필, 고서 및 유품과 교회공보, 성가집, 점자성경 등 연대별 역사자료와 도서열람실이 갖춰져 있어 승동교회의 지난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자랑할 만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승동교회는 결코 도취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박 목사는“교회의 역사도 의미가 있지만 현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하며 과거보다 현재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또한 신앙명가의 숭고한 정신이 배어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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