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헌신의 순교정신 곳곳서 향기
‘한국의 예루살렘’ 순천 시작된 여정, 여수 거쳐 우학리로
굵직한 선교기념관 자리잡고 신앙 유산 진면목 가르쳐
❶ 우학리교회 이기풍순교기념관에 전시된 이기풍 목사의 친필 당회록. ❷ 한국기독교사적 제6호로 지정된 애양원교회당. ❸ 100년전 이 땅의 가엾은 영혼들을 위해 생애를 바친 이들의 흔적을 간직한 애양원. | ||
서해안을 타고 전남 서부권을 순례한 우리의 걸음은 이제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줄기를 타고 전남 동부권을 거닌다.
첫 목적지는 선교 초기 대부흥의 발원지였던 평양과 함께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순천이다. 1913년 코이트와 프레스톤 선교사를 중심으로 미국남장로교 순천선교부가 개설되면서, 순천지역은 전남 동부권에 복음의 홀씨를 퍼뜨리는 진원지로 자리잡았다.
특히 순천시 매산동 일대에는 당시 선교사역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학교와 병원 등이 옛 자취들을 버리지 않은 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구의 문화와 구한말 우리의 문화가 부딪치며 빚어낸 독특한 스타일의 건축물들과 유물들을 둘러보다보면, 마치 도심 한 가운데서 갑자기 1세기 전의 세상으로 날아간듯한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2004년 12월 31일은 매산동 일대에서 사역하는 이들에게 기념이 될만한 날이다. 매산고등학교 매산관을 비롯해 코이트 선교사와 로저스 선교사의 가옥, 외국인어린이학교 등 다섯 점의 건물이 문화재청이 시행한 근대문화유산정책으로 인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등록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조지와츠기념관은 가장 눈여겨볼만한 곳이다. 프레스톤선교사가 현지사역자 양성을 위한 보통성경신학원을 운영하고자 마련한 것으로, 당시 재정후원자였던 조지 와츠의 이름을 따 명명한 3층짜리 석조건물이다. 이후 건물 1층은 오랫동안 결핵환자 등을 위한 순천기독진료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과 3층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며 옛 선교사들의 유물을 전시해왔으나 최근에는 문을 닫은 상태다.
매산뜨락을 나선 우리의 여정은 다음 목적지인 여수로 향한다. 순천에서 여수로 향하는 길목에 잊지 말고 들려야 할 곳이 여수시 율촌면에 소재한 장천교회이다. 장천교회에는 이 일대 최초의 석조건축물로 알려진 1924년형의 옛 예배당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다.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다른 예배당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디자인들이 종탑 아치 등 곳곳에서 발견되어 이 예배당은 문화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주목받는다. 게다가 이 건물 옆에는 1973년과 2003년에 각각 신축한 새 예배당이 나란히 서있어, 한국교회의 건축 변천사를 파악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장천교회에서 불과 10km만 남쪽으로 이동하면 여수공항을 지나,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애양원이 나타난다. 순천에서 시작된 사랑의 복음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거대한 나무로 장성한 총화가 바로 여수 애양원이다.
순천 매산동이 2년 전부터 기독교관광단지로 조성되고 있는 것처럼, 애양원 일대에도 조경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건물들을 신축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2012년 여수엑스포, 2013년 순천만세계정원박람회 등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들을 앞두고 다양한 관광자원들을 개발하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한 볼거리들이 앞으로 더욱 늘어나겠지만 순례객들이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애양원에 흐르는 희생과 헌신의 정신이다. 광주 제중원 원장을 맡고 있던 윌슨 선교사가 오갈데 없는 한센병 환자 10명을 돌보면서 시작된 애양원 100년의 역사는 하나님의 긍휼이 수많은 사역자와 봉사자들의 손길을 통해 표현된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반 환자들까지 돌보는 종합병원으로 변모한 애양원병원 마당에는 지난해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곳에서 청춘 혹은 일생을 바친 서양선교사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 기념물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사랑에 빚진 자들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병원에서 애양원교회 방향으로 가다보면 과거 신학교 건물로 사용하다 현재는 방문자들의 숙소로 활용되는 토플하우스, 그리고 병든 몸에 시력까지 잃은 이들이 영혼을 집중해 말씀에 매달리던 성경암송반 등 깊은 사연이 담겨있는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교회당 맞은편에 세워진 애양원역사박물관은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간직된 또 하나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애양원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들이 조목조목 정리되어 있는 것은 물론, 병원 초기에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성경이며 타자기, 각종 의료장비들이 진열되어 이 땅의 의료선교 역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2002년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32호로, 지난해에는 예장통합 총회로부터 한국기독교사적 제6호로 지정된 애양원성산교회당과 양로원인 평안사 등을 돌아보다보면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를 만난다. 바로 손양원 목사이다.
사명에 신실한 목회자로, 한센병자들의 다정한 친구로, 일제에 항거한 민족의 지도자로, 목숨을 다해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 살다간 그의 체취는 두 아들과 함께 묻힌 묘역과 순교기념관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가 남긴 편지 한 장, 설교 한 줄에도 배어 있는 용기와 사랑은 세계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값진 유산이다.
애양원을 나와 여수 시내로 들어서도 손양원 목사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린다. 바로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인 여수시 둔덕동 새중앙교회 옆에 마련된 순교자공원공원이다.
손 목사를 비롯해 조상학 목사 등 여러 기독교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여수시가 직접 조성한 공원으로, 손 목사를 잘 모르는 일반시민들이나 관광객들까지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으로서 그의 일생과 신앙의 진면목을 배울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이제 오늘의 여행도 막바지로 향한다. 감칠 맛나는 갓김치와, 비경으로 손꼽히는 일출경관으로 유명한 돌산을 지나 신기항에서 금오도로 가는 배를 타면 30분 만에 여천항에 도착해 우학리로 달려갈 수 있다.
우학리에서 우리가 만나는 또 하나의 이름은 이기풍 목사. 손양원 목사와 함께 여수의 교회들이 긍지로 여기는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마지막 사역지이자 순교지였던 우학리교회에는 7년간의 각고 끝에 마침내 지난해 이기풍순교기념관이 세워졌다.
최초의 선교사로서, 열정적인 전도자로서, 불굴의 순교자로서 그의 행적은 전시관에 진열된 사진들과 자필 당회록에서, 교회당 뒷산에 마련된 묘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 시대 우리 어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전시 코너는 보너스이다.
100년 전 바다 건너 찾아온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 거룩한 여행이, 60여 년 전 순교자들의 거룩한 행적을 거쳐, 오늘의 순례에까지 이어지며 우리의 영혼들에게 아름다운 이름들을 추억하도록 한다. 순교기념관 앞에 조성된 장미공원의 꽃 한 송이, 한 송이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오랜 세월 피워낸 향기들을 발견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❹ 손양원 목사가 숨을 거둔 여수시 둔덕동에 마련된 순교자기념공원. ❺ 여수 장천교회는 한국교회 건축 변천사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다. ❻ 순천 매산동에 소재한 조지와츠기념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은 현재 순천기독진료소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정재영 기자 jyjung@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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