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1427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라고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라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모리아/시 2024.09.22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하지 않은 코스모스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하지 않은 코스모스 처럼 풋풋한 가을 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말없이 눈빛만 바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 처럼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향기가 녹아 들어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엔 억새처럼 출렁이는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모리아/시 2024.09.20

슬픔으로 가는 길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슬픔으로 가는 길]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모리아/시 2024.09.19

팔월 한가위 -반기룡-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팔월 한가위] -반기룡-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 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팔월 한가위이었으면 합니다

모리아/시 2024.09.18

한가위 -정선규- 엎드린 하늘 배꼽이 한가위란다 저 하늘 동쪽은 머리 서쪽은 발꿈치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까만 살결 속 가만히 오른 달

[한가위] -정선규- 엎드린 하늘 배꼽이 한가위란다 저 하늘 동쪽은 머리 서쪽은 발꿈치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까만 살결 속 가만히 오른 달 휘어자 하늘 중천에 노란 동그라미 한가위 휘영청 밝은 달이 가을빛 토실토실 살찌워 가고 있다

모리아/시 2024.09.17

준다는 것 - 안도현 - ​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빈 손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

[준다는 것] -안도현- ​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빈 손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 나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대 손등 위에 처음으로 떨리는 내 손을 포개어 얹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준다는 것 그것은 빼앗는 것보다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이 지상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 그것은 세상 전체를 소유하는 것보다 부끄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대여!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준 넉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리아/시 2024.09.15

가을 - 유안진 -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는구나 꽃내음 보다도 마른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면

[가을]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는구나 꽃내음 보다도 마른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면 눈 감은 채 고즈넉이 그려 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사람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안에 얼굴을 묻고 싶은 때 두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모리아/시 2024.09.12

가을에 - 오세영 - 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가을에] -오세영- 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너와나 함께 있는 까닭에 우리는 여름이라 한다 부벼대는 살과 살 그리고 입술 무성한 잎들이 그러하듯... 아, 그러나 시방 우리는 각각 홀로 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 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리아/시 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