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1427

가을밤 -도종환- 그리움의 물레로 잣는 그대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 장천을 돌아와 이 밤도 머리맡에 쌓인다 불을 끄고 누워도..

[가을밤] -도종환- 그리움의 물레로 잣는 그대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 장천을 돌아와 이 밤도 머리맡에 쌓인다 불을 끄고 누워도 꺼지지 않는 가을밤 등잔불같은 그대 생각 해금을 켜듯 저미는 소리를 내며 오반죽 가슴을 긋고 가는 그대의 활 하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의 활 하나 잠 못드는 가을밤 길고도 긴데 그리움 하나로 무너지는 가을밤 길기고 긴데

모리아/시 2024.09.10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 갈수록, 일월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모리아/시 2024.09.09

가을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가을]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 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모리아/시 2024.09.08

너를 두고 - 나태주 -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 주고 싶다

[너를 두고] -나태주-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모리아/시 2024.09.07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권대웅- 떨어지는 빗방울에게도 기억이 있다 당신을 적셨던 사랑 아프지만 아름답게 생포했던 눈물들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권대웅- 떨어지는 빗방울에게도 기억이 있다 당신을 적셨던 사랑 아프지만 아름답게 생포했던 눈물들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 건널목에서 비 맞고 서 있던 청춘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마다 기우뚱 하늘 한 구석이 무너지고 그 길로 젖은 불빛들이 부푼다 흐린 주점에서 찢었던 편지들이 창문에 타자기의 활자처럼 찍히는 빗방울의 사연을 듣다보면 모든 사랑의 영혼은 얼룩져 있다 비가 그치고 가슴이 젖었던 것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몸으로 젖었던 것들만이 잊힐 뿐이다 밤거리를 맨몸으로 서성거리는 빗방울들 사랑이 떠나간 정거장과 쇼윈도의 창문과 나무들의 어깨 위로 구름과 놀던 기억들이 떨어진다 국화 허리 같은 당신이 떨어진다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모리아/시 2024.09.06

가을사랑 그 깊은 곳에 -곽춘진- 이 계절 나에게 외로움이 다가오는 것은 당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가을사랑 그 깊은 곳에] -곽춘진- 이 계절 나에게 외로움이 다가오는 것은 당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기쁨이 있다는 것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내 곁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고운 미소가 이 9월의 가을바람과 함께 다시 내게로 와서 웃음 주면 참 좋겠는데 당신의 그 미소를 볼 수 없음이 슬픈 것은 지금도 내가 너무나 당신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고운 목소리가 이 가을 귀뚜리 소리와 함께 다시 내게로 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움 가득한 내 마음속이 이리도 아픔되어 다가드는 것을 당신은 느끼시나요, 알 수 있나요 당신의 모든 고운 것들이 지금도 내 그리움 속에서 고울 뿐 입니다 당신을 그리며 내가 당신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

모리아/시 2024.09.05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안도현-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빈 들판을 떠돌다 밤이면 눕는 바람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안도현-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빈 들판을 떠돌다 밤이면 눕는 바람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긴 날을 혼자 서서 울던 풀잎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집도 절도 없이 가난한 어둠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바람도 풀잎도 어둠도 그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몰라

모리아/시 2024.09.04

가을에는 - 박제형 -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데라도

[가을에는] -박제형-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데라도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가을은 침묵하여 깊은 바다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러하길 가을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볼 일이다

모리아/시 2024.09.03

9월이 오면 - 안도현 -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9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리아/시 2024.09.02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이채-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이채-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혼자만의 몸짓이고 싶네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산 너머 구름으로 살다가 들꽃 향기에 실려 오는 바람의 숨결 끝내 내 이름은 몰라도 좋겠네 ​꽃잎마다 별을 안고 피었어도 어느 산 어느 강을 건너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네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알 듯 모를 듯 피었다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혼자만의 눈물이고 싶네

모리아/시 202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