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서
- 김영미
원산지에 따라 생육사가 다른
각양각색의
과일들
믹서에 넣는다
스위치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
격동의 한 세기가 몰려온다
굉음을 울리며
칼날의 검은 회오리 속으로 빨려든다
꿈결처럼
빨강과 초록, 극좌와 극우가 손을 잡고
주황과 연두,
중도와 보수가 섞인다
과육 속 붉게 영근 따가운 햇살이 섞이고
지중해의 염분과
아열대를 적시는 오후의 소낙비
몬순의 당도가 섞인다
기적처럼
껍질과 알맹이의 근원적 대립이 몸을 풀고
열 번의 만남과
스무 번의 헤어짐
마침내 모든 입자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꿈결같은
탁자 위, 한 잔의 코스몰리리턴!
원심분리 되지 않는
그대와 나
믹서에 넣는다
뼈와 몸뚱이
비극처럼 회오리처럼
ON OFF ON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