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얼

등 - 다림질 못 한 독거중년 윗도리에 빈 들판이 구겨져 있다. 얼굴이 없어도 바람부는 사내를 알겠다..

ree610 2024. 4. 28. 18:03

< 등 >

다림질 못 한 독거중년 윗도리에
빈 들판이 구겨져 있다
얼굴이 없어도 바람부는 사내를 알겠다
눈 검은 노루가 나올 것처럼
구부정히 굽은 적막
등마루 타고 해가 내려온다
저녁을 지고 돌아앉은 어깨가
달망달망 노래를 시작한다

(눈 코 입도 없는 등을 보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유추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기억의 확장 적용이라고도 하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은 "사랑하기 때문이다"일 것이다. 사랑은 기억과 유추를 단숨에 넘어버린다. 한밤중 멀리서 다가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아차리는 것, 바람이 불 때 만 리 밖에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는 것, 기적도 신이한 일도 아니겠다. 등은 그 사람의 언어이고 말이다. 그 사람의 깊은 말을 듣고 싶다면 그 사람의 등을 가만히 쳐다볼 일이다. 말소리가 들릴 것이다. 등이 부르는 노래는 또 어떻고. 프로필사진을 등때기로 바꿀까보다.)

ㅡ 김주대 님이 올린 사진과 내용입니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