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동백

ree610 2024. 3. 15. 06:48

[동백]

- 박남준 -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일별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갔던 건
거기 내 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모리아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으켜 세웠다  (2) 2024.03.17
무언으로 오는 봄  (0) 2024.03.16
냉이꽃  (4) 2024.03.14
나의 꽃  (0) 2024.03.13
명자나무  (0)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