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현장

가난을 도둑질하는 장면

ree610 2024. 2. 8. 19:49

[백건우 님 페북의 글 입니다]
ㅡ  가난을 도둑질하는 장면

박완서의 소설 '도둑 맞은 가난'은 진짜 가난한 주인공과 가난을 경험하러 온 부잣집 청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부모는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비관해 자살했고, 주인공은 공장에 다니며 근근히 노동자이자 빈민의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은 자취비용을 아끼려고 남자와 동거를 하는데, 그 남자는 알고보니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아버지의 명령으로 가난을 체험하러 왔다.

위에 사진 속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부지런히 살았어도 산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죄를 저지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피땀을 흘리며 살았어도 산동네 단칸방, 셋방, 낡은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타워팰리스에 사는 한동훈 같은 인간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불우이웃돕기'라는 이름으로 가난을 도둑질하고 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를 끌면서 웃을 수 있는 저 여유는,
이 행사가 끝나면 넓고 깨끗하며, 안전하고 아늑한 타워팰리스의 부유한 저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가난'은 자신이 얼마나 잘난 인간인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좋은 순간이 된다.
한동훈은 이런 가난 경험을 통해 부유하고 엘리트로 살아가는 자신이 더욱 자랑스럽고 대단해 보이겠지만, 거의 평생을 산동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더 깊은 모멸감과 수치, 참담함을 느끼며 사진 찍히는 도구,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에게 자괴감을 갖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면서, 가난을 훔쳐 권력을 차지하려는 야비하고 추악한 정치모리배들이 뻔뻔한 낯짝을 내미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망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