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 반장 ♡
오래전 한 기독교재단에서 상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 때면 새로운 부담이 생긴다. 그 돈은 내가 먹고 마시고 하는 데 쓸 돈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돈이다. 그 돈을 보관했다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교회나 자선단체에 툭 던져버리듯 주는 것도 도리가 아니었다. 내가 맡아서 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어느 날 한가한 오후였다. 독서를 하고 있는데
나의 법률사무소로 초라한 모습의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오랫만이야. 나 기억할지 모르겠어.”
그가 쑥스러운 듯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당장 알아차렸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왕자’같았던 그의 얼굴이 중년의 사내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뜻밖이었다. 그는 중후한 대학교수나 판사쯤 되어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어린 시절 선망의 대상이 되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선거로 한 아이가 반장이 됐다. 그 아이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겼다. 다른 아이들에게 선하게 대하고 노래도 잘했다. 그가 알토로 부르는 동요는 천상의 소리 같았다.
항상 옷도 깨끗하게 입었다. 여유있는 집 아이같았다.
나는 스스로 위축이 되어 그 아이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자고 하지 못했다. 작은 편물점을 하면서 나를 키우던 엄마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세뇌시켰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을 부러워 하는 건 허영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흙수저 교육인지도 모른다.
중학 입시가 치열하던 시절 그 아이는 명문 중학교에 합격 했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재수를 해서 다음해에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그 아이는 상급생이 되어 있었다. 말을 붙이기가 더 힘들었다. 당시는 한 학년이 무서운 차이였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그 아이는 서울대학을 가고 나는 가지 못했다. 그는 그때그때 무난히 장애물을 넘었다. 반대로 나는 장애물마다 걸려 넘어지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그가 삼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갑자기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것이다. 그가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 자체가 뜻밖이었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기억해 준다는 데 대해 감사하기도 했다.
그가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랐지?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런 초라한 모습 보이기 싫어 너를 찾아왔어.”
그가 나를 선택해 신뢰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가 자신의 지난 날을 간단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학 때 갑자기 눈에 이상이 생겼어. 눈을 치료하느라고 휴학을 하고 십년간 방황을 하며 세월을 보냈지. 그때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됐어. 난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
그런데 그 여자가 나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았어. 내가 거절하면 길거리를 달리는 차바퀴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데 진짜였어. 그래서 함께 살면서 딸을 낳았어.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일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 어느날 아이 엄마가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학원 강사를 했지. 밤새 아이를 보다가 학원에 가니까 가르치다가 졸기도 했어. 그러다 외환위기가 닥치니까 학원에서 쫓겨났어. 나이 먹은 나 같은 강사는 일등으로 퇴출이지. 미안하지만 돈을 좀 꿔줄 수 있어?”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게 좋은 학벌은 되레 짐이야. 어디 가서 막노동을 하려고 해도 내 이력서를 보고는 머리를 흔들어. 게다가 이놈의 나이도 문제야. 요즈음 입시학원은 원장도 삼십대야. 사십대 중반이면 그야말로 폐차 신세지. 정말이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해.”
그를 보면서 나는 인생이란 정해진 궤도를 달려 정확한 시간에 행복역에 도착하는 기차같은 건 아닌 걸 알았다. 지뢰가 파묻혀 있기도 하고 목적지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다만 어떻게 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돈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돈이 든 봉투를 그에게 건네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이 돈은 내 것이 아니고 그분한테 받아서 보관하고 있었어. 그런데 임자가 나타나 반갑네”
그는 안심이 됐는지 내게 일자리까지 부탁하고 돌아가
다음 날 이력서를 팩스로 보냈다.
그 이력서의 끝에는 이런 간절한 말이 적혀 있었다.
‘두 딸을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제게 일자리를 주십시오.’
다섯달쯤 지난 한적한 토요일 오후였다. 그가 다시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의 모습이 전과 달라져 있었다. 말끔한 옷차림에 얼굴에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요새 동양철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어. 소설가 안정효씨는 대학 때부터 영어로 소설을 써서 미국의 출판사에 보내곤 했어. 그러다 사십대 중반에야 책을 내고 빛을 보았지.”
그에게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사실은 지난번에 빌렸던 돈을 갚으려고 온 거야. 정말 고마웠어.”
그는 돈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를 도운 게 나였을까?
욕심을 가진 인간이 남을 돕기는 힘들다. 아닌 척 해도 거기에는 또 다른 위선이나 우월감이라는 오물이 섞이기 쉽다.
그분이 돕는 마음을 주셔야 사람은 남을 도울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찾아와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다시 이십년이 넘게 흘렀다. 그는 어디선가 성장한 딸과 함께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 엄상익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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