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고 기억하라
본문 : 신 8:1~16
찬송 : 305장
구약 신명기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긴 율법 강론이다.
그 강론의 핵심은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이다.
첫째, 광야 길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궁극적인 의도는 먼저 '너를 낮추시고' 즉 겸손 훈련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최대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의 교만이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며 누구나 마음이 교만해지면 결국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려고 무려 40년 광야 연단의 길을 걷게 하신 분이다. 또 하나가 바로 순종 훈련이다. 불순종이 죄라면 참된 믿음은 온전한 순종이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도 겸손과 순종 과목의 광야 학교며 광야 훈련소라 할 수 있다.
둘째, 네 하나님 여호와의 법도를 잊지 말라. 하나님 여호와는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과 법도와 규례의 말씀을 주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시려고 40년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이시다. 주의 법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복을 얻게 하는 복된 법이고 지켜 행할 때 사는 날이 길게 되며 가까이 함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생명의 법이다. 이 생명의 법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 아니라 그 말씀으로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할 것을 모세는 강하게 권면한다. 오늘도 주의 생명의 말씀을 청종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육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기 바란다.
셋째, 너를 속량하심을 기억하라.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출애굽 역사는 위대한 구속사다. 이것은 죄와 사탄의 종이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속하신 은총에 대한 그림자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집은 심판의 사자가 넘어갔듯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구속의 은총은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하며 매 순간 진정으로 감사 찬양해야 할 것이다.
구속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할 때 완전히 언약의 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주의 약속의 땅은 아름다운 땅이며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며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매일의 삶이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곳, 먹어 배부르게 되는 복지라 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향해 그 좋으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강권하신다.
오늘의 기도
주께서 주신 법도와 주님 베푸신 구속의 은총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 찬송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부활의 은혜
본문 : 고전 15:50~58
찬송 : 165장
과학의 3대 발견으로 지동설, 진화론, 정신분석학을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모든 역사 중에서 3대 사건은 천지창조, 십자가 그리고 부활이다. 특별히 부활이 더욱 중요한 것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와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부활이 왜 이토록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된단 말인가.
먼저, 부활은 죄에 대한 승리를 자져다 준다. 55절과 56절에는 죄와 죽음, 심판이라는 3대 불가항력이 있다. 세상 학문과 예술은 죄를 아름답게 포장해 보지만, 죄는 해석이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죄 짓는 자는 또 지을 수밖에 없다. 죽지 않고는 죄라는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주님은 이러한 인간에게 부활 후 죄 사함, 성령, 평강을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가치, 성공, 의미, 사랑, 영광의 중심 뿌리는 죄를 해결해야만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문제이기에 죄에 대한 해결은 부활을 통한 은혜라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죄를 해결해야만 평강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가져다 준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아무도 죽음을 이길 수 없다. 한평생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추워 죽겠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무의식중에 늘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을 챙기고 출세하려는 이유도 죽음에서 기인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기를 무서워 해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지만 주님은 부활을 통해 죽음의 종노릇 하는 자들을 풀어주셨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죽음에 대한 염려 대신 죽음을 이기고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목적을 가지는 은혜를 가져다 준다. 죽음은 두려움 뿐 아니라 막연한 피곤함, 공허함 그리고 삶을 서글프게 만든다. 죽음 아래 있을 땐 생의 목적이 땅강아지처럼 땅만 쳐다보고 땅에 쌓는 일만 했지만, 이제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이 해결되면서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바울은 다메섹 이후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이를 자가"라는 말씀대로 온전히 선교적인 삶을 살게 된다. 안디옥에서 소아시아 드로아, 마게도냐 인도, 에베소 터키, 두로시돈 지중해 연안까지 갔다. 마지막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생의 목적은 오로지 복음증거에 있었다. 두려움과 막연한 삶이었던 우리도 이제 목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죄인인 우리는 죄와 죽음을 해결하고 그리고 생의 목적을 갖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이러한 부활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위기가 오면
본문 : 민 14:11~19
찬송 : 327장
위기는 '믿음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확인해 준다. 진짜 믿음은 위기를 만났을 때 진가가 나타난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같은 날, 장소에 대해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들었다. 그 후 온 회중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다. 위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은 생각대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파괴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말을 듣는 다른 사람까지도 그 영향 아래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대로 말하는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믿음을 따라 말하는 길을 가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로 믿지도 못하고 상상도 못하는 병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10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더 믿고 신뢰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 없는 백성, 하나님을 멸시하는 백성,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모세를 통해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모세에게 제안하신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모세의 기도는 믿음에 선 모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세는 어떤 믿음에 서 있었는가?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이다. 모세의 기도에서 강조되고 있는 단어는 능력과 권능이다. 모세가 믿는 하나님의 능력은 비록 원망과 불평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신뢰하지 못하는 그런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능력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다.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믿는 믿음이었다. 이스라엘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자비는 광대하시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다. 모세가 믿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무한한 인자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권능과 성품을 똑같이 목격했다. 그런데 모세만이 무한한 하나님의 권능과 성품을 믿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의 권능은 무한인가? 유한인가? 모세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 하나님의 성품을, 무한한 인자하심을 믿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려진 모든 것을 거두어 주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을 온전히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십자가의 도
본문 : 고전 1:18~31
찬송 : 94장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고상한 정신적인 가치나 영적인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물질을 추구하며 권력과 힘이 될 수 있는 돈을 위해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수단화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금의 우리 한국 사회는 사도바울 당시 고린도 시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다. 고린도 시는 로마제국의 부요한 항구도시로서 그 곳의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물질의 풍요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았다. 또한 제국을 형성하는 주요 역할을 하는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기에 권력에 대한 욕구가 팽배했고, 철학적 사고에 젖어 지혜를 자랑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했다. 십자가의 도는 무엇일까?
첫째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에 역설적이다. 경주에서는 이겨야 하는 것이 순리인 듯한데, 복음은 져주라 하고 먼저 손을 내밀라 한다. 나를 괴롭게 한 사람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면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장사를 하면 이익을 보고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데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차라리 손해를 감수하라고 하신다. 진실과 정직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라 하신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바보처럼 사는 것이다.
둘째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세상에서는 부족한 것을 자랑하는 이가 거의 없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은 상처이고, 아픔이고, 부끄러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약함과 부족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그 약함은 강함이 되고, 미련함은 지혜가 되고, 없는 것은 부함이 되며, 천하고 멸시받는 것은 있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 중에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가장 작은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약함과 부족한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될 것이다.
셋째로 미련하고 약한 자들을 택하사 주님을 자랑하게 하신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 영광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미련하고 약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렇기에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다. 그러한 기적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함몰되지 않고, 십자가의 도를 따라 주안에서 자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오늘의 기도
날마다 승리하며 살 수 있도록 굳센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금-선택받은 사람들
본문 : 삿 7:1~8
찬송 : 449장
이스라엘의 사사인 기드온은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이 모여 쳐들어오는 미디안의 군대를 대적함에 따라서 군대를 징집하게 되었다. 3만 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몰려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아 미디안을 너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손이 구원하였다고 교만할 것을 분명히 아시고 정예부대를 선발할 것을 명령하셨다.
첫째,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전쟁에 있어서 군인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용맹이다. 용맹이 결여된 군인은 패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력으로 징집에 응한 이들 가운데 두려워 떠는 자가 있음을 익히 알고 계셨다. 2만 2000명이 돌아갔다. 겉으로는 용감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나약하고, 외적으로는 담대하고 잘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약하고 텅빈 사람들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십자가 군병이다.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것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사탄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예수님께서 주셨다. 삶의 현장에서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자. 반드시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둘째, 물을 먹는 사람들을 특정한 자세를 통해 구분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물을 먹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9700명을 가려냈다. 이렇게 물을 먹는 자세가 군대에서 제외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거나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준비를 다 갖춘 것은 아니다. 어떤 자세로 교회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가 아주 중요하다. 즉흥적이고 습관화된 자기만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뜻대로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봉사하고 있는지 자신의 자세를 잘 돌아보아 교정해야 한다.
셋째, 선택받은 사람들 300명이다. 그들은 손을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였다. 미리 물을 먹는 규칙을 공고하고 시행한 것은 아니었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계획을 기드온으로 하여금 갖게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자세를 취한 사람들을 선택했을까? 300명의 정예부대는 군사작전 특성상 야습을 감행해야 할 특수부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고도의 침착성과 세밀하고 들레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한 적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교회 봉사와 가정에서의 자세는 어떤가? 300명의 자세를 갖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고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게 하시고 늘 침착하고도 안정된 믿음의 자세를 갖추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 하여 귀한 일에 쓰임 받는 좋은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본문 : 사 43:18~21
찬송 : 384장
인생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이다. 우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라도 쉽게 돌아올 것 같이 가볍게 강을 건너고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서야 큰 상실감을 느끼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어리석은 우리 인생의 모습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그렇다면 이전 일, 옛날 일이란 어떤 일인가?
바벨론 포로 생활, 부모가 자식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는 뼈아픈 눈물겨운 세월이다. 우리도 돌이켜 보면 뼈아픈, 피눈물 나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갑자기 눈물이 핑돌고 힘이 축 빠지던 시절이 있다.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시절, 차라리 죽고만 싶었던 시절이 다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잊자.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 죄도 잊고, 실수도 잊고 억울한 일 당한 것도 잊고 심지어는 선행도 잊자. 슬픈 일을 잊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아픈 일을 잊지 않으면 마음이 계속 애려온다. 억울한 일을 잊지 않으면 슬프다. 서운했던 것을 잊지 않으면 못 산다. 그래서 다 잊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또한 주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이발소에 가면 아무 말없이 앉는다. 그러면 이발소 사장님은 알아서 머리를 잘라주신다. 결혼 전에는 머리를 다듬는 것이 어색해 대충 다녔는데, 아내를 만난 후 "여보 젤을 발라 머리를 넘겨요"라는 말 한마디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대팔 정자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하고 다닌다. 그러다 어느 날 머리스타일에 싫증이 느껴졌다. 우리 교회 청년들 머리스타일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저렇게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으니 사장님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정체성을 가지세요"라는 것이다. 그렇다. 다 잊더라도 다만 내가 교회를 짊어지고 가야할 하나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는 다 잊어야 산다. 쓸데 없는 것은 다 잊되 주님의 은혜, 한량없는 은헤, 갚을 길 없는 주의 은혜는 늘 잊지 말자.
오늘의 기도
지난날 동안 늘 지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지난날 아픈 상처들 다 잊되 한량없는 주님의 은헤만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의 은혜만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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