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다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ree610 2017. 4. 29. 17:32

다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지난해 가을부터 온 나라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들은 특별검사의 취조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으니 국회의 청문회를 통해서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대다수 국정농단 관련자들은 명명백백한 객관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억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니, 모른다는 말과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온 국민이 집단병리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기억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란 우리 뇌리에 찍힌 과거의 인상이다. 어떤 일은 ‘번쩍!’ 하는 눈부신 섬광에 노출된 것처럼 명확하게 기억나며, 또 어떤 일은 마치 화인(火印)으로 지진 것처럼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은 채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대부분은 흐르는 물처럼 과거로 흘러 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한, 이루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삶 가운데 특별히 인상적이었거나, 충격적이었거나, 좋았거나, 싫었거나, 괴로웠거나,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매우 선별적이다. 그러나 기억은 우리가 마음대로 취사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아, 이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니 평생 기억해야겠다.”라고 판단하여 그것을 기억의 창고에 넣을 수 없으며, 또 반대로 “아아, 이것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우니 기억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하여 다시는 기억나지 않게 만들 수도 없다.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 충격적인 일이 기억에 남는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른 것은 그 일이 각자에게 의미한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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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새롭게 드러나거나 재조명된 일들 가운데 제일 어이없고, 분통 터지고, 가슴 아픈 것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특검이 수사하고, 국회가 청문하고, 언론이 탐사보도 하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는 구천을 떠도는 원혼(冤魂)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죽어 이승을 떠난 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것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비유적 표현이겠지만, 세월호 참사가 원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풀지 못한 한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각종 조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 혹은 새롭게 던지게 만들었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인가? 세월호에 실려 있었다는, 정부가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화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국가 보호 선박이었던 세월호 및 그 문제의 화물과 국정원의 관계는 무엇인가? 유병언 씨와 김기춘 씨의 관계가 무엇이기에 참사 후 정부가 유 씨를 사건의 주범으로 몰자 구원파 신도들이 김 씨에게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을까? 정부는 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자료를 온전히 제공하지 않았고, 그 활동을 방해했으며, 시급히 위원회를 종료시키려 했는가? 청와대는 왜 침몰해가던 세월호에 진입하여 승객과 선원들을 구조하지 않은 해경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방해했는가? 세월호 인양을 왜 가장 기술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 중국 회사가 맡게 되었는가? 그 회사는 왜 세월호 화물칸에 수백 개의 커다란 구멍을 내며 밤에만 작업을 하는가? 정부는 왜 유족과 언론의 현장방문을 막은 채 세월호 인양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하는가? 그리고 ‘세월호 7시간’으로 불리는, 박근혜 씨의 그날 행적은 무엇이었는가?
이런 풀리지 않는 의혹들 속에서 드러나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박근혜 씨와 고위 관료들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건과 함께 거명되는 것조차 피하려 한다는 점이다. 결국 박근혜 씨의 ‘세월호 7시간’은 그가 국민의 생명권 보호라는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를 방기(放棄)했다는 증거가 되어 탄핵의 중요한 사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박근혜 씨는 변호인의 입을 통해, 분명히 다 구조하라고 지시했으니, 대통령일지라도 여성의 사생활을 더 이상 캐묻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 말이 옳다는 듯, 어떤 사람은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미용시술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논리이다. 대통령의 직무유기를 여성의 사생활 보호라는 차원에서 합리화시켜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작태는 한 여성의 사생활을 304명의 무고한 생명과 같은 값으로 놓고 보려는 반인륜적 억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박근혜 정부가 취한 일련의 언행은 한마디로 기억을 왜곡하고, 궁극적으로는 기억을 지우려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측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위원회 활동을 방해하며 더 이상 규명할 진상이 없으니 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 정부의 입김이 미치는 각종 보수적 언론사들이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여 보도한 일, 그리고 정부가 각종 관변 극우단체를 동원하여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어린 자식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던 세월호 유족들을 폄훼한 일, 이런 모든 행위는 사실 자체를 숨기거나 거짓으로 진실을 뒤덮어, 세월호 참사를 잊게 하려는 의도 속에 이루어졌다.


“증거를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떳떳하다면 숨길 것이 없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기억을 감추려는 자, 기억을 지우려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근혜 씨와 그의 측근들은 왜 그토록 서둘러 세월호 참사를 망각 속에 묻어두려 한 것일까? 목숨을 걸고 참사 희생자 시신 수습에 나섰던 잠수사 김관홍 씨는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참사와 관련한 질문에 정부 관료들이 한결같이 모른다고 답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상황이 다 생각나고 뼈에 사무칩니다. 그런데 저보다 훌륭한 고위급 공무원들은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는 이 말을 남긴 후, 처참한 모습의 어린 시신을 수습하며 얻은 심한 트라우마와 잠수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민간 잠수사는 지우고 싶은 고통스런 기억이지만 말하고 죽었고, 관료들은 기억나는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 그 직을 유지하고 승진했다. 기억을 말하면 죽으니 살기 위해서는 억지로 기억을 지워야 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 비극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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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위기에 몰린 박근혜 씨가 자청하여 기자간담회라는 것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있던 시점을 언급하며, “작년인가요, 재작년인가요?”라고 기자들에게 묻듯이 말했다. 7시간 동안 행방불명 상태에 있다가 뒤늦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 나타나서, “학생들이 구조복을 입고 바다에 둥둥 떠 있을 텐데 그걸 발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라고 질문하던 바로 그 모습의 재현이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침몰했다. 온 국민이 생업을 중단한 채,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외면하고 싶은 그 참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 일부분만 남겨놓은 채 침몰해가던 세월호의 모습은 화인으로 지진 것처럼 생생하게 내 뇌리에 낙인되어 있다. 내가 60년 가까이 살면서 경험한 가장 충격적이고, 분노가 치밀고, 어이없고, 절망적인 장면이었다. 아마 그때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보던 모든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나는 박근혜 씨가 악인이라 그 참극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참혹했던 장면을 보지 않았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집단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고, 그렇기에 그 참사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것도 명백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나는 참회록을 하나 썼다. 거기서 나는 특히 수많은 어린 생명들의 허무한 죽음 앞에 “모든 가치관이 마비되는 충격”을 느꼈으며, 이 대명천지에 어떻게 그런 참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 내 “이성과 학식과 신앙은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못한다.”라고 고백했다. 그렇다. 참사가 있고 만 3년이 흐르는 동안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내 “이성과 학식과 신앙”은 그 아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떤 답도 주지 못하고 있다. 내 신앙이 세월호 참사에 답을 주지 못한다는 말은 기독교 신학이 내가 그 참극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며, 기독교 의례가 그 참사로 인한 나의 고통을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앙은 삶을 해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강력한 장치이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고통스러운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으며, 미래에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인간사 모든 일을 해석하거나 거기에 의미부여를 해주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신앙으로도 해결되지 않고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면 날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신앙에 의지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끝끝내 이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저 세상에서라도 해결되리라 믿는 것 아니겠는가.

 
어느 종교든지 죽음 너머에 있다는 어떤 이상적 세계를 말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런 천국이나 낙원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취되지 않은 소망이 이루어지고, 불평등이 해소되며, 한과 의문이 풀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정의가 이루어진다. 기독교에서는 부활과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히브리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며, 요한복음은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선언한다. 모든 산 사람은 죽고, 모든 죽은 사람은 부활하되, 심판에 의해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운명이 갈린다는 말이다. 이런 가르침이 성서에 실린 것은 이 세상에 악이 선을 이기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 아니겠는가. 아무리 신앙심이 깊고 선하게 살더라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거나, 신앙 없이 아무리 악하게 살더라도 평생 떵떵거리며 잘사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하다. 세월호 참사나 국정농단에 연루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힘 있고 책임질 일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최소한의 죗값을 치른 후 여전히 호의호식하며 잘살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소망을 준다. 참사의 진실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고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은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더라도, 부활과 심판의 시간에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원한은 풀리며, 책임소재가 밝혀져 정의가 서릿발처럼 실현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신앙은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304명이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활할 것이라고 믿게 한다. 그러나 부활과 심판에 대한 소망이 모든 고통을 치유하지 않으며, 모든 의문에 답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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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는 2014년 7–8월에 걸쳐 단원고를 출발하여 전남 팽목항을 거친 뒤 프란체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한 대전까지 900km를 걸었다. 길이 1.5m, 무게 6kg짜리 십자가를 멘 채. 그리고 대전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그는 기독교에 귀의함으로써 부활과 심판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후 반년 만에 그는 다시 도로 위에 나섰다. 이번에는 이 군의 누나 아름 씨와 함께 팽목항에서 출발하여 광화문에 이르는 520km를 3보 1배로 가는 고행을 하였다. 이호진 씨는 “온몸으로 국민들께 30만 번 절을 하려고 한다. 절을 받으시고, 잊혀가는 세월호와 희생자를 다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신앙은 아들을 허망하게 잃은 아버지의 고통을 완화시킬지언정 없애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는 세월호 참사와 그 희생자들이 잊혀져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집단망각에 저항하고자 고행길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세월호를 망각으로부터 건지고자 처절한 고행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되지 않는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것도 자신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잡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두 번 반복해서 말했다. 그것이 제자들 모두에게 남긴 예수의 마지막 당부였으니, 곧 유언이었다. 여기서 “기념하라”로 해석되는 말(eivj avna,mnhsin)에는 ‘의도적으로 기억하라’, ‘적극적으로 기억하라’, ‘자발적으로 기억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을 다시 해석해보면, “성찬을 행할 때마다 내가 누구였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잘 환기해서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제자들이 자신을 잘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 성찬식을 제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성찬식은 지난 2,000년 동안 예수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즉 기독교인의 집단기억을 만들고 전승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예수는 지금도 기억되기에 지금도 살아 있다. 기억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오직 기억된 과거만 현존한다.

 
나는 역사를 공부한다. 역사란 한 집단이 같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박근혜 씨와 그 측근들은 온 국민이 기억하는 일을 자신들의 기억에서 지우려 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처럼 그 일을 기억하지 않도록 만들려 했다. 개인의 기억과는 달리 집단기억은 역사책, 언론보도, 대중문화 등을 통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얼마든지 취사선택할 수 있으며,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만한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기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집단기억에서 그것을 없애려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민족사에 화인으로 지져놓고 기억해야 할 대사건임을 알고 있다.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며, 기억은 현재를 지배한다. 역사가는 그 참극의 진실을 반드시 역사 속에 기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소설가는 작품 속에, 영화감독은 영화 속에, 기자는 기사 속에, 그리고 각 개인은 가슴속에 그것을 새기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구천을 떠도는 원혼처럼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침몰 원인을 비롯하여 참사의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처벌받아야 그 한이 온전히 풀릴 것이다. 그러나 악이 선을 이기고 불의가 의를 억누르는 일이 다반사니, 그 한이 언제 다 풀릴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예수의 제자라는 자들도 서슴지 않고 악의 편에 서기도 하지 않는가. 최순실 씨는 서울 강남의 한 유명한 교회의 집사라 하며, 김기춘 씨는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연인원 1,000만 명이 넘는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탄핵과 처벌을 요구할 때,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했던 망령된 짓거리를 보지 않았는가. 나는 그들이 커다란 십자가를 메고 걸으며 박근혜 씨를 두둔하고 특검 해체를 외치는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았다. 나는 십자가가 그렇게 모독되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어, 그 참람한 장면을 차라리 외면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십자가란 도대체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마음속 고통을 표현할 길 없어 십자가를 메고 수백 킬로미터를 걸을 때, 그들은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공감했을까?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 기억하는 사람들일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그 참사는 우리의 일부분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스런 일은 억지로라도 잊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니,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잊고 싶어 한다. 더구나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잊고자 하는 집단적・개인적 망각의 유혹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밝혀지지 않고 잊혀져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 앞에, 행방불명된 정의 앞에, 그리고 치유되지 않는 유족의 고통 앞에 한국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를 기억하라”던 예수의 유언은 그의 제자공동체에게 남긴 절실한 당부였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기억은 집단기억의 형태로 전승되며, 기독교인들은 그 집단기억을 공유함으로써 정체성을 유지한다. 예수께서 죽기 전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부으며 자신을 기억하라고 한 것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였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십자가를 기억하라는 뜻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 고통을 해소시켜 주기 위한 자기희생이다. “나를 기억하라.” 예수의 십자가를 ‘자발적・적극적’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십자가의 도(道)를 실천하는 것 아니겠는가. 십자가의 도는 무엇보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는 우리들, 기독교인 공동체에게 예수는 “나를 기억하라”라고 유언처럼 명하신다.

류대영 | 한동대 교수로서 역사, 문학, 그리고 기독교를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다.